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청춘들이 성장통을 겪는 <시동>에서, 경주는 유일하게 매 순간 전력을 다하는 소녀다. 상대가 누구든 있는 힘껏 주먹을 날리고 아무리 맞아도 주저앉지 않고 어떻게든 반격한다. 새빨간 염색머리 때문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남다른 ‘깡다구’를 가진 이 인물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인배우가 연기해 신선함을 더한다. 실제로 <시동>은 학교에서의 단편영화 작업 외에 이렇다 할 필모그래피가 없는 배우 최성은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발탁한 건지 극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관객을 궁금하게 만드는 신인을 만났다.


<시동> 오디션 과정이 궁금하다.

1차는 다른 영화 오디션과 비슷했고, 2차 오디션 때 감독님과 단둘이 미팅을 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셔서 그에 대한 말을 많이 했다. 그다음에 만났을 때는 내가 얼마나 몸을 잘 쓸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하시더라. 그래서 제작사 외유내강 옥상도 뛰어다니고 거기서 줄넘기도 했다. (웃음)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복싱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고, 2주 시간을 줄 테니 연습을 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복싱 테스트를 받은 후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원래 몸을 잘 썼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기하는 사람 중에 무용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난 아니었으니까. 또 춤추는 영상을 찍어서 보냈더니 감독님이 처음에는 내가 몸을 못 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깡을 보여주겠다며 한겨울에 옥상에서 반팔 입고 맨발로 되도 않는 춤을 춰서 보냈다. (웃음) 그런데 나중에 복싱 가르쳐주시던 관장님에게 연기쪽으로 잘 안 풀리면 이쪽으로 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내가 몸을 못 쓰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무용과 운동은 다른 것 같다.

<시동>이 관객에게 가장 잘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폭력’에 관한 거다. 경주가 모텔 방에서 성인 남자들에게 얻어맞는다든지 택일(박정민)을 코믹하게 때리는 장면 등이 있는데, 자칫 폭력을 전시한다거나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게끔 선을 잘 타는 게 신인배우에게 큰 과제였을 것 같다.

영화를 찍을 때는 하나하나 계산하지 않았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상대에게 맞서고 열심히 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아버지와 싸우는 장면이 남아 있었다면 경주가 폭력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됐을 것 같은데, 그게 편집되면서 경주의 폭력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 있을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촬영하고 편집한 분들에게 감사했던 게, 만화적인 설정을 너무 잘 살려줘서 경주의 폭력이 거북하게 보이지 않더라. 그런 포인트를 스탭들이 잘 살려줬다.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사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확실한 모먼트가 있었던 게 아니다. 막연하게 TV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노래하고 연기하는 걸 좋아하긴 했다. 아직도 내가 왜 그랬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조승우 선배님이 계원예고를 나왔으니 나도 계원예고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웃음) 그러다가 예고를 다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15학번으로 입학했다.

신인배우로서 연기를 좀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쨌든 연기는 내가 하는 거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나의 본모습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경험과 감정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내가 할 법하지 않은 선택을 해보려고 의식적으로 시도한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새롭고 생경한 감각이 좋더라.

지난해 촬영했던 독립영화 <10개월>에서 결혼하지 않은 연인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연기했다. 연극 <피와 씨앗>에서는 엄마를 죽인 죄로 수감됐던 아빠가 출소한 후 그로부터 신장이식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소녀로 나온다. <시동>도 그렇고 강한 설정이 있는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는데.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 요즘엔 망가져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끌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천우희 선배님이 맡은 역할이 너무 좋았다. 감정의 폭이 깊은 인물도 연기해보고 싶다.

영화

2019 <시동>


씨네21 www.cine21.com

임수연·사진 최성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