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더 펜스>

아오이 유우와 오다기리 죠가 지난 주말, 해운대를 찾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배우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오버 더 펜스>에 출연한 배우 아오이 유우와 오다기리 죠. 두 사람은 각자 신작 영화 촬영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부산을 찾았다. 특히 오다기리 죠는 신작 <에르네스토>의 촬영 때문에 멀리 쿠바에서 체류하다 바로 부산을 방문한 것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하나와 앨리스> <번개나무> 등의 영화를 들고 여러 차례 부산을 찾았던 아오이 유우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자신의 인생 경험 중 하나로 꼽는 배우다. 배우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의문을 품고 있던 20대 시절에 부산의 열광적인 관객 분위기를 보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는 그녀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일본 청춘 영화가 쏟아지듯 만들어지던 시기에 여러 작품을 통해 뚜렷한 개성을 알린 배우들이다. 종종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곤 했던 자극적인 헤드라인만으로 단정하기엔 너무나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어느덧 30대, 40대가 되어 돌아온 두 젊은 배우가 짧은 부산 체류 일정 속에서 보여줬던 그들 각자의 매력을 전한다. 

'오버 더 펜스'는 어떤 영화?
<오버 더 펜스>

영화 <오버 더 펜스>는 '하코다테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작가 사토 야스시의 원작 소설 가운데 3부에 해당하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연출을 맡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국내에서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린다린다린다> 등의 영화로 널리 알려졌다. '사랑을 잃은 남자'와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의 처절한 러브스토리를 다룬 <오버 더 펜스>는 주연을 맡은 아오이 유우와 오다기리 죠가 동반 출연했던 영화 <충사> 이후 십여 년 만에 재회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사건 이후로 고향인 하코다테에 내려와 직업훈련학교를 전전하며 소일하는 시라이와(오다기리 죠)가 낮에는 놀이공원,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사토시(아오이 유우)라는 이상한 성격의 여자를 만나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달콤쌉싸름한 러브스토리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인생에서 바닥까지 내려간 두 젊은이가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사는 와중에 또다시 시작된 만남을 너무나 힘겨워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정갈하고 소박한 마을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잔잔하지만 지독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연히 두 배우의 징글징글한 연기가 영화를 지배한다.


아오이 유우
관객들과 직접 만나다
아오이 유우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사진제공: 씨네21 이동훈)

아오이 유우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했다. 영화 속 캐릭터 사토시와 흡사한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난 그녀를 보니, 무조건 예쁘게 보이기보다 영화의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의지가 느껴졌다. (일본에서는 아오이 유우가 광고하거나 직접 쓴다고 알려진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한 일본 팬이 씩씩하게 손을 번쩍 들더니 립스틱이 어느 브랜드인지 묻기도 했다. 

오다기리 죠의 눈동자 때문에
길을 잃었다
<오버 더 펜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오버 더 펜스> 이전에 두 배우 모두와 각각 드라마 등의 다른 작업을 함께 한 적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두 배우의 매력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어떻게 두 사람을 캐스팅하게 됐는지 묻는 질문에 "언젠가는 꼭 두 사람을 모두 캐스팅해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아오이 유우는 "사회와 거리감을 두고 있고 사람들과도 쉽게 연을 맺지 못하는 사토시라는 여인을 연기하면서 스스로 객관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로 연기했다"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는 인물과 배우 자신의 거리감을 두기 어려울 정도로 몰입했다는 이야기. 완성된 영화를 보고는 "나도 몰랐던 내 표정을 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고 이야기했다.  

오다기리 죠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서 아오이 유우가 해준 이야기도 <오버 더 펜스>의 매력을 발견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녀는 연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아오이 유우라는 나 자신이 (오다기리 죠가 연기하는 시라이와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극중 역할인 사토시가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는 감정 상태를 느끼곤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상대인 시라이와가 사토시를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가 아오이 유우인 나 자신을 경멸하고 있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연기했을 당시의 감각을 되짚어보면, 시라이와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무서웠다"고 덧붙였다. 아오이 유우의 말은 시나리오만을 읽고 계산해서 나올 수 없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진 제공: 씨네21 이동훈)

아오이 유우에 따르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두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방치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것은 야마시타 감독의 디렉팅 스타일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오버 더 펜스>를 이루고 있는 분위기를 배우들이 표현하기 위해서는 계산된 연기로는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었으리라.

아오이 유우가 말하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사토시'라는 여자는 정적인 것과 동적인 상태 양쪽 균형을 잡기 상당히 어려운 인물이다. 너무 과해도 안 좋고 또 덜어내자니 방법을 모르겠어서 감독님한테 물어볼 때마다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셨다. 결국 배우 스스로 생각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결과적으로 나를 궁지로 몰게 되더라. 그래서 도저히 완성된 영화를 볼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이 그제야, "나는 배우들이 스스로 끝내놓고 맘 편히 보고 싶어 하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기에 완전히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촬영 중에는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고 궁지에 몰리는 기분이 들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내가 졌다"고 항복하게 되는 감독님이다. - 아오이 유우

오다기리 죠가
아오이 유우의 눈빛 발언에
대답하다
오가기리 죠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사진 제공: 씨네21 이동훈)

오다기리 죠는 지난 15일(금) 부산영화제 <오버 더 펜스> 마지막  상영 GV 행사로 부산 일정을 시작했다. SNS상에서 "왜 이렇게 초췌한 모습이냐"며 그의 외모에 대한 지적이 있었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오다기리 죠는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신작 <에르네스토> 촬영 때문에 쿠바에서 몇 달간 체류하다가 바로 한국으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새까맣게 탄 채로 한국 관객을 찾은 것. 팬들과의 짧은 만남을 이어간 뒤 바로 다음날 오후, 기자회견장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건 나의
진짜 눈빛이다
<오버 더 펜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소설에서는 20대로 설정된 시라이와라는 인물을 오다기리 죠에게 부탁하면서 배우 자신, 그리고 감독 본인의 나이대인 40대 초반으로 설정을 바꿨다. 그 이유는 "그동안 젊은 청춘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영화보다 더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의 두 사람은 여러모로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편한 관계였다고 전한다. 

직업훈련학교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시라이와라는 인물은 영화에서는 조금 무기력해 보이고, 아무런 욕심이 없는 사람 같아 보인다. 오다기리 죠가 여러 영화에서 보여줬던 '방랑자' 같은 캐릭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는 하루 일과를 보내고 도시락과 캔맥주만으로 피곤을 씻어내는 무기력한 남자 시라이와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했을까.

"시라이와는 언제나 주변에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 사람을 평범하게 연기할수록 사토시에게 끌리는 모습이 더 잘 전달될 거라 생각했다. 사토시는 겉은 독특하지만 내면이 시라이와와 비슷한 사람이다. 결국 비슷한 두 사람이 끌리게 되는 감정을 연기한 것"이라고 한다.

아오이 유우 기자회견장 분위기와는 달리, 대부분 여기자들이 참석해 마치 팬미팅 현장 같은 분위기였던 오다기리 죠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극중 시라이와의 눈빛 연기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영화에서 사토시가 시라이와에게 "그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지 말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했는지, 아오이 유우가 당신의 눈빛을 보고 '텅 빈 눈빛'이라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오다기리 죠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뗀 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듣는다. 그래서 <오버 더 펜스> 시나리오를 읽는데 사토시가 시라이와에게 그와 똑같은 대사를 하는 대목이 나와 깜짝 놀랐다. 그 대목에서 내가 시라이와를 연기해야 할 인물이란 숙명을 느꼈을 정도다.(웃음) 이 영화에 이 대사가 있어서 출연 결정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대답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 어쩌면 이 눈빛이야말로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의 매력을 정리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말하는 오다기리 죠
나는 그 장면에서 오다기리 죠의 눈빛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까지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아무런 설정 없이 그냥 퇴근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장면에서 텅 빈 느낌을 받았다. 그저 자전거를 탈 뿐인데 묘한 외로움과 씁쓸함을 느꼈다. 아마도 그 장면을 연기하는 오다기리 죠의 심정도 그랬으리라. 사실, 우리는 영화 출연을 앞두고 처음 만났을 때 그 장면의 눈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말도 안 꺼냈는데 먼저 눈빛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시라이와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기뻤다. 촬영 때도 그 장면과 오다기리 죠의 눈빛은 영화의 중심으로 작용했다. -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GV 행사에 참여한 아오이 유우와 오다기리 죠 (사진 제공: 씨네21 이동훈)
언제까지나 부산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을 포함해 두 배우 모두 최근 부산국제영화제가 처한 어려움에 유감을 전하기도 했다. 언제든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다기리 죠는 "부산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다. 어떻게든 열심히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제에 도움이 될 일이 있을 것 같아 찾아왔다.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영화제가 예전의 활기를 되찾길 바란다"는 인사를 끝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오버 더 펜스>가 개봉하면 두 배우 모두 꼭 다시 한국을 찾아주길.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