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라이프> 촬영장의 폴 다노(왼쪽), 제이크 질렌할

배우 폴 다노가 이번엔 카메라를 잡았다. 12월 25일 개봉한 <와일드라이프>는 산불 진화를 하러 떠난 제리, 그리고 새로 이사온 몬태나에 남겨진 자넷과 아들 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폴 다노는 이 작품으로 “아름다운 데뷔작”이란 극찬을 받으며 감독으로서의 역량마저 인정받았다. 스크린 안팎에서 늘 뜻밖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폴 다노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12년째 연애중

<루비 스팍스>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이 꼭 초식남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순정남인 폴 다노. 그는 2007년부터 조 카잔과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 20대 초에 만나 벌써 10년이 넘게 사랑을 키워온 셈. 두 사람은 2012년 조 카잔이 각본을 쓴 영화 <루비 스팍스>에 함께 출연했다. 폴 다노의 연출작 <와일드라이프>의 시나리오도 함께 집필하며 다재다능한 커플임을 자랑했다.

<루비 스팍스>에 함께 출연한 폴 다노, 조 카잔

이렇게 오랜 시간 만났고, 2018년 태어난 딸 알바 베이 다노를 슬하에 두었지만 아직 혼인 신고를 올리지 않았다. 할리우드에선 종종 있는 일이지만. 최근 북미에 <기생충>이 개봉했을 때 조 카잔은 “폴 다노가 나만 빼고 <기생충>을 먼저 봤다”며 “이혼하기 위해 결혼할 것이다”라며 농담을 남겼다. 조 카잔의 설명으론 봉준호 감독의 전작 <옥자>에 출연한 폴 다노만 시사회에 초청 받았다고.


브로드웨이 엘리트 코스

레아 미셀(왼쪽)과 폴 다노

폴 다노가 처음 영화에 모습을 보인 건 2000년에 개봉한 <풋내기>라는 작품.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전,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폴 다노는 10살 때 이미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고. 그 작품이 정확히 어떤 작품인지 알 수 없으나, 12살에 출연한 작품은 잘 알려졌다. <침묵의 소리>(Inherit The Wind). 이 연극엔 (패튼 장군으로 유명한) 조지 C. 스콧과 (<뜨거운 오후>의 유진 모레티) 찰스 더닝이 출연했다. 이정도 전적이 있었으니 <풋내기>(2000)와 <L.I.E.>(2001)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

<L.I.E.>


아카데미 3관왕이 보증합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일라이 선데이

폴 선데이

폴 다노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건 <데어 윌 비 블러드> 촬영일 것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과 메소드 연기로 유명한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만난 작품. 폴 다노가 처음 캐스팅된 역은 폴 선데이. 영화의 초반부에만 잠깐 나오는 인물이지만, 폴 다노의 연기가 폴 토마스 앤더슨을 매료시키기엔 충분했다. 해당 장면 촬영이 끝난 직후 앤더슨 감독은 다노에게 직접 일라이 선데이 역을 제안했다. 원래 시나리오엔 없는 일란성 쌍둥이 설정까지 덧붙이면서.

그렇게 일라이 선데이 역도 폴 다노에게 돌아갔다. 폴 다노는 제안을 받은 목요일부터 나흘 후인 월요일에 바로 일라이 선데이로 촬영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우리가 본 영화 속의 그 연기를 펼쳤다. <발라드 오브 잭 앤 로즈>에서 호흡을 맞춰봤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추천했다, 원래 배정된 배우가 도망갔다 등 여러 얘기가 있지만 폴 다노가 밝힌 캐스팅 경위는 이렇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훗날 인터뷰에서 “신께 맹세컨대 폴 다노는 그날 세트에서 이미 캐릭터로 변해있었다. 스스로는 조금 불안한 듯 말했지만, 이미 일라이 선데이가 그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관왕의 배우가 극찬한 것이다.

폴 다노(왼쪽), 다니엘 데이 루이스


오랜만에 TV 드라마로

폴 다노는 데뷔 이후 거의 영화에만 주력해왔다. 데뷔 초 <스마트 가이>, <소프라노스> 출연 이후 10년 넘게 드라마에선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최근 갑작스럽게 드라마의 주역으로 나섰는데, 하나는 <전쟁과 평화>고 다른 건 <이스케이프 앳 댄모라>다. <전쟁과 평화>에선 프랑스 유학 후 돌아온 피에르 역을 맡았고, <이스케이프 앳 댄모라>에선 살인으로 종신형을 받은 데이빗 스웻을 연기했다.

<전쟁과 평화>

<이스케이프 앳 댄모라>

그중 데이빗 스웻은 살인을 저지른 실제 범죄자였기 때문에 폴 다노가 그동안 맡았던 역과 조금 달랐다. 그래서 그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근육을 9kg 가량 증량하고 헤어스타일도 바꿨다. 그리고 실제 데이빗 스웻을 만나 당시 그의 심리나 성격 등을 배역에 녹였다. 베니시오 델 토로와 공연한 이 드라마로 그는 스스로의 스펙트럼을 진일보시켰다.

베니시오 델 토로(왼쪽), 폴 다노


음악조차 잘알

이 다재다능한 배우의 또다른 특기는 음악. 고등학교 절친들과 함께 무크(Mook)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그의 포지션은 보컬 겸 리드 기타. 데뷔 앨범까지 녹음했다는데, 아쉽게도 정식 발매는 하지 못했고 대신 4곡이 수록된 프리뷰는 마이스페이스에서 들을 수 있다. 다행히 라이브 공연 영상도 남아있고.

음악을 듣고 그의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면 영화 <러브 앤 머시>를 보거나 OST를 듣자. 이 영화에 폴 다노는 존 쿠삭과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을 연기했다. 폴 다노는 살을 찌워서 브라이언 윌슨의 청년 시절 이미지에 충실한 것은 물론이고 그가 그시절 불렀던 음악도 노래했다. 영화에선 비치 보이스와 함께 하는 곡 말고도 ‘갓 온리 노(God Only Knows)’, ‘유 스틸 빌리브 인 미(You Still Believe In Me)’, ’캐롤라인, 노(Caroline, No)’까지 세 곡을 소화했으며 그중 ‘갓 온리 노’는 OST에도 수록됐다.

<러브 앤 머시>


3년만의 출연작, 이번엔 빌런?

보스 로직에서 공개한 폴 다노 리들러 팬포스터

<와일드라이프>를 마치고, 배우로 돌아올 폴 다노의 차기작은 <더 배트맨>. 맷 리브스 감독이 진두지휘하고 로버트 패틴슨이 브루스 웨인/배트맨으로 출연할 영화다. 그동안 DC 실사 영화가 오락가락했던 탓에 <더 배트맨> 또한 오랜 시간 표류했었다. 그러다 맷 리브스가 내정되고, 로버트 패틴슨이 출연을 확정지어 아예 새로운 단독 영화로 방향성을 잡으며 급물살을 탔다. 지금 확정된 캐스트만 해도 조 크래비츠, 앤디 서키스, 제프리 라이트 등.

폴 다노가 맡을 역할은 에드워드 내쉬튼, 그 유명한 리들러다. 기존 실사 영화로는 <배트맨 포에버>에 출연한 짐 캐리 이후 최초의 리들러. <더 배트맨>에서 리들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는 팬들에게 폴 다노가 첫 히어로 영화 출연으로 어떤 선물을 안겨줄지 기대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