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났습니다. 픽사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는 참입니다. 픽사는 1986년 2월에 창립됐습니다. 1995년 첫 100% CG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공개된 이래 픽사는 최근에 개봉한 <도리를 찾아서>까지 총 17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들이 거둬들인 수익은 무려 1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1조 정도 됩니다.
이런 픽사의 눈부신 성공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습니다. 픽사의 팬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픽사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앞에 항상 단편을 선보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리지널 단편만 18편이 있습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DVD 등에 수록된 번외 단편도 꽤 있습니다. <마이크의 새 차>나 <번·E>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주제는 픽사의 숨은 재미, 단편 애니메이션입니다. 픽사의 단편들은 인터넷에 검색하시면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픽사 단편 영화명은 네이버영화 기준입니다.
룩소 2세
픽사의 상징과도 같은 존 라세터가 연출한 <룩소 2세>는 초창기 픽사의 정체성을 담은 단편입니다. 초창기 픽사는 존 라세터의 놀이터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물론 그 놀이터는 매우 창의적인 곳입니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 램프 익숙하시죠? 픽사의 마스코트가 된 램프입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로고 타이틀 영상에서 알파벳 ‘I’를 짓밟고 서는 그 램프 말입니다. <룩소 2세>는 <토이 스토리2> 상영 전에 볼 수 있었습니다.
틴 토이
<틴 토이>는 픽사의 첫 극장용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두 작품 모두 존 라세터가 연출했습니다. 천진난만한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장난감의 입장에서는 거대한 괴수가 자신을 위협하는 것과 같습니다. <틴 토이>는 이 단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만든 <토이 스토리>의 VHS테이프, DVD 등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틴 토이>가 더 의미있는 것은 픽사의 첫 아카데미 수상작이기 때문입니다. 1989년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아카데미 역사상 첫 풀 CG영화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게리의 게임
아카데미에서 수상한 작품은 또 있습니다. <게리의 게임>과 <새들의 이야기>입니다. <벅스 라이프>와 함께 공개한 <게리의 게임>은 혼자 공원에서 체스 게임을 즐기는 노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번은 게임을 잘하는 사람으로 한번은 게임을 못하는 사람을 혼자 연기하는 이 노인, 시골에 부임한 후 심심해서 혼자 화투를 치는 <선생 김봉두>의 김봉두(차승원)가 생각납니다. <게리의 게임>은 단편 특유의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작품입니다. 연출을 맡은 잔 핑카바는 이후 <라따뚜이>의 원안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새들의 이야기
<몬스터 주식회사>와 함께 공개한 <새들의 이야기>는 전선 위에 앉아 있던 작은 새들이 큰 새 한 마리를 괴롭히다 오히려 자신의 꾀에 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교훈적인 메시지도 한번쯤 생각하게 만듭니다. <새들의 이야기>를 연출한 랠프 에글레스톤은 <월·E> <업> <인사이드 아웃> 등에 미술과 아트디렉터로 참여했습니다.
구름 조금
한국계 피터 손 감독의 <구름 조금>은 뭉클한 감동이 있습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수많은 황새 가운데 털이 듬성듬성한 황새와 먹구름이 파트너입니다. 이들은 예쁜 아기나 강아지가 아니라 어딘지 무서운 악어 새끼, 뾰족한 가시가 있는 고슴도치 새끼 등을 만들고 배달합니다. 황새는 점점 몰골이 엉망이 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황새는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합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만 있을 수 없겠죠. 다양성이라는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단편입니다. 피터 손 감독은 2016년 국내 개봉한 장편 <굿 다이노>로 장편 연출 데뷔를 했습니다.
낮과 밤
<낮과 밤> 역시 픽사의 단편 가운데 재밌는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검은 화면을 배경으로 사람 모양의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낮과 밤입니다. 이들의 몸속에 낮과 밤의 풍경이 보입니다. 우연히 만난 낮과 밤은 자신들의 모습, 즉 낮과 밤의 풍경을 자랑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결국엔 부러워하죠. 특히 낮의 풍경 속 해변의 여인을 좋아하던 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음악, 연출 등 픽사 특유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낮과 밤>은 <토이 스토리 3>의 앞부분에 상영됐습니다. 연출은 테디 뉴턴이 맡았습니다. 뉴턴은 <토이 스토리 3>에서 채터 텔리폰 목소리 출연도 했네요.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함께 공개한 오리지널 단편 이외에 <월·E>의 번외편인 <번·E>도 재밌습니다. 번·E는 수리 로봇입니다. 우주선 바깥 쪽에 있는 항공등(우주선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달아놓은 표지등)을 수리하러 갑니다. 그런데 실수! 다시 부품을 가지러 갔다 옵니다.앗, 또 실수! 월·E 덕분에 생명이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지구에 우주선이 착륙해서야 드디어 수리를 완료하는데 또 항공등이 파손되고 맙니다. <월·E>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마음 같아서 모든 단편을 소개하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 다른 작품들도 시간 나면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픽사의 단편을 소개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픽사의 두 애니메이터가 틈틈이 만든 단편 <빌린 시간>(Borrowed Time)이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픽사·디즈니의 공식 단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앤드류 코츠, 루 하모-라지 감독은 자신들의 직장, 픽사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느낌입니다.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확인해보세요.
이 단편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음악은 구스타보 산타올랄라가 맡았습니다. 그는 <브로크백 마운틴> <바벨>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에디터가 정말 재밌게 플레이했던 콘솔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의 음악으로도 유명합니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픽사 단편 특별 상영’이 있었습니다. 총 16편의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소개했습니다. 티켓 구하기가 ‘태평양에서 니모 찾기’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픽사의 단편 애니매이션들의 러닝타임은 고작해야 5분, 길어야 7분 안팎입니다. 대사가 없는 것도 많습니다. 영어를 몰라도 됩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누구나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픽사의 단편이 없이는 결코! 우리가 울고 웃었던 장편이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픽사의 오리지널 단편들
1984년 <안드레와 월리 꿀벌의 모험> 감독 존 라세터
1986년 <룩소 2세> 감독 존 라세터
1987년 <레드의 꿈> 감독 존 라세터
1988년 <틴 토이> 감독 존 라세터
1989년 <장식품> 감독 존 라세터
1997년 <게리의 게임> 감독 잔 핑카바
2000년 <새들의 이야기> 감독 랠프 에글레스톤
2003년 <점프> 감독 버드 럭키, 로저 굴드
2005년 <원 맨 밴드> 감독 마크 앤드류스, 앤드류 지메네즈
2006년 <리프티드> 감독 게리 라이스트롬
2008년 <프레스토> 감독 더그 스윗랜드
2009년 <구름 조금> 감독 피터 손
2010년 <낮과 밤> 감독 테디 뉴턴
2011년 <라 루나> 감독 에린코 카사로사
2013년 <파란 우산> 감독 사스치카 운셀드
2014년 <라바> 감독 제임스 포드 머피
2015년 <샌제이의 슈퍼 팀> 감독 샌제이 파텔
2016년 <파이퍼> 감독 앨런 바릴라로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