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집에서 고퀄리티 스피커와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고 싶은 로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그런 곳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요.
바로 이태원에 있는 '극장판'이라는 영화관입니다! 네이버에 영화판이 있다면 이태원에는 극장판이 있습니다! 여기 조금, 아니 많이 특이합니다. 일반적인 다른 영화관과는 전혀 다른 극장판 사용설명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길치 에디터의 험난했던 '극장판' 여정
혹시 내가 길치다, 지도를 봐도 방향 감각이 없어요...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곳을 찾는데 인내심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어딜 가든 일단 헤매고 보는 에디터에게 이곳은 찾아가기 꽤 높은 난이도였습니다. (한 시간 영화 보자고 한 시간 헤맸다는 후문이... 길치들에게 길이란 헤매면 헤맬수록 더 수렁에 빠지는 법이죠.)
이태원 골목으로 들어오니, 여기가 외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슬람 사원 근처라서 히잡을 두른 분들이 많았는데요. 이태원 앤틱 가구거리뿐 아니라 극장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예쁜 갤러리와 카페, 독특한 식당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하. 지. 만! 이 모든 유혹을 뚫고 '보광동 교회'를 찾으시면 반경 50m부터 전봇대에 요런 딱지가 붙어있습니다. 너무 골목 깊숙이 들어왔다 싶으면 백퍼센트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표지판을 따라가다 시선을 조금만 위에 두면 골목 초입에 요렇게 보이거든요! 드디어 찾으셨군요..!!
'극장판'만의 극장 예절 알려드리겠습니다-
처음 가서 당황하지 말고 이것만 기억하자!!
첫 번째, 현금만 가능. 카드 X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두 번째, 카운터의 아이패드에서 상영작을 고르면 이런 귀여운 티켓이!
세 번째, 좌석은 단 6개!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면 됩니다.
네 번째, 본인의 영화가 끝났다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문을 열고 나오세요!
여행자들도, 씨네필도 만족할 영화관
주말에 찾아간 이곳은 그다지 붐비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손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 5편 모두 보려 했으나 길을 헤매느라 시간과 체력을 루팡 해버린 에디터는 3편밖에 보지 못했는데요. 젊은 커플들이 대다수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중년 부부, 친구들과 놀러온 듯한 여고생들, 혼자 오신 분, 이렇게 다양한 조합으로 영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한 편은 혼자 보기도 했네요. (혼자 있으니까 괜히 내 집 같은 편안함이...)
극장판에는 상영 시간표가 없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고 극장에 들어가면 영화를 틀어줍니다. 중간에 다른 관객이 오면, 보고 싶은 상영작이 같으면 같이 보고, 아니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보는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간 후 극장을 나가면 주인이 들어와 다음 상영작을 틀어줍니다. 겉모습뿐 아니라 운영 방식도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팍팍 들더군요!
1. 이태원에 놀러 온 사람들을 위한 POINT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단편 영화 전문 상영관은 영화를 사랑하는 씨네필뿐만 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곳인데요. 구경할 거리가 많은 이태원 우사단길에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정집을 영화관으로 개조한 독특한 공간이라는 점! 빈티지 느낌의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는 점! 2시간이 넘는 장편 영화가 아니라 2천 원에 15~20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여행자들에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2. 단편 영화를 즐기고 싶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POINT
우리나라에서 단편 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있던 상영관이 점점 문을 닫고 그중 남은 게 바로 이 '극장판'인데요. 영화 연출을 전공한 주인장이 단편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곳을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절별로 단편영화를 공모해 매달 4~5편의 영화를 바꿔 상영하고 있는데요. 스크린 한 쪽에는 명작 DVD들이 꽂혀 있습니다. 영화 상영을 대기하는 공간에는 손때 묻은 영화 관련 서적이 꽂혀 있고, 영화와 관련된 엽서, 출판물 등의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많이 팔린 상태였는지 굿즈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어요.ㅠㅠ 다녀와서 찾아보니 매월 단편 영화 감상 모임인 '숏트필' 멤버도 모집하고 있더군요.
'극장판'의 10월의 상영작 훑어보기
지금 제가 소개하는 영화들을 보고 싶다면 10월 24일이 지나기 전에 찾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상영작들은 춘천에 있는 '일시정지 상영관'에서도 같이 상영한다고 하네요. 지금 상영하고 있는 5편 중에서 제가 직접 본 영화는 <한양빌라 410호>, <겨울꿈>, <boyhood> 입니다. 아쉽게도 <그 엄마, 딸>과 <그리고 가을이 왔다>는 간단히 소개만 해야 할 것 같아요.ㅠㅠ
한양 빌라 401호(2016)
이 영화는 부산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었군요. 이경원 감독의 필모를 살펴보니 김태용 감독 연출, 현빈, 탕웨이 주연 <만추>의 연출부 출신이었네요. 저는 아무 정보 없이 감성적인 포스터에 이끌려 제일 첫 번째로 선택했습니다. 포스터의 '조금 어설프고 서툴러도 당신이 좋았다'라는 서브 카피가 로맨스 장르를 떠올리게 하지만 로맨스라기엔 애매합니다. 그러나 이 카피의 감성을 '모든 면에서 결함이 있는 집을 보러 온 남자, 그 남자에게 집을 소개하는 여자'의 에피소드에 잘 녹여냈더군요. 세 편 중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겨울 꿈(2015)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작품입니다. 작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계약직 교사를 하고 있는 신입 교사 정미. 한때 정미를 보고 작가를 꿈꿨던 제자가 작가가 되어 자신의 책을 들고 찾아옵니다. 이 둘의 미묘한 감정을 영상 중간중간 시적으로 삽입했습니다. 20대 초반에 느낄 수 있는 감정, 20대 후반에 느끼게 되는 성장통을 잘 담아낸 작품입니다.
BOYHOOD(2015)
제13회 아시아나 단편 영화제에서 소개된 작품입니다. 저도 작년에 이 영화제에 갔었는데 이 영화가 있었었군요;; 여러 드라마에서 본 익숙한 아역 배우가 주인공입니다. 독립영화계와 드라마에서 활약 중인 서정도 배우 등 아는 얼굴이 많이 나와 반가웠습니다. 오락으로 체육복 살 돈을 날린 남자아이가 스스로 돈을 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 단막극 같은 영화였네요.
그 엄마, 딸(2016) & 그리고 가을이 왔다(2015)
<그 엄마, 딸>은 엄마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통해 엄마를 찾기 시작하는 이야기, <그리고 가을이 왔다>는 20년지기 친구인 두 남녀, 지선이 군 복무 중인 진웅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합니다. 이외의 정보도 찾아보려 했으나 좀처럼 찾기 쉽지 않네요.ㅠㅠ
에디터도 처음 독립 영화를 접할 때 어..;;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편영화를 알고 나서부터는 아무리 지루해도 10분 정도만 참으면 된다는 사실에 왠지 안심(?)이 되더군요. 그런 면에서 독립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혼자 조용히 보고 싶은 사람들, 지인들과 오붓하게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좋은 곳인 것 같네요. 저도 또 헤매지만 않는다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좋겠으면서도 나만 알고 싶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