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감이 느껴지는 도심 추격전이나 긴박한 총격전 없이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곧 스토리가 되는, 언어 위주로 직조된 영화들 말이다. 단어 하나만으로 극의 분위기가 단번에 코미디에서 서스펜스로 바뀌며 시한폭탄 같은 스릴감을 선사하기도! 이번 주 뒹굴뒹굴 VOD에서는 빈틈없는 대사가 매력적인 영화 다섯 편을 선정했다. 짧은 러닝타임이 아쉽게 느껴질 아래 다섯 편의 영화들에 한해 2월 1일(토)부터 2월 8일(토)까지 네이버 시리즈에서 바로 사용 가능한 즉시 할인 쿠폰이 발급, 30% 할인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감독 로만 폴란스키/ 코미디, 드라마 / 15세 관람가 / 80분
출연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 ▶바로보기
어느 오후, 컴퓨터 앞에 앉아 진술서를 쓰고 있는 페넬로피(조디 포스터)와 이를 지켜보고 있는 세 사람 마이클(존 C. 레일리), 앨런(크리스토프 왈츠), 낸시(케이트 윈슬렛).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술서를 쓰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식들의 다툼 때문이었다. 묘한 분위기 속에 진술서가 마무리되고, 페넬로피와 마이클의 집을 떠나려는 앨런-낸시 부부. 그러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교양과 선의로 무장했던 네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게 되고, 한순간에 적대감과 신랄한 비난으로 뒤바뀐 언쟁은 모두에게 인생 최악의 오후를 선사하게 되는데.. “대체 왜 아직까지 여기 있는 거야?”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네 사람의 치졸한 말싸움. 서로에게 교양 어린 웃음을 지으며 원만한 합의에 이른 듯 보이지만 영화는 네 사람을 쉽게 놓아줄 리 없다. 작은 단어 하나가 만들어낸 균열로 인해 틀어지기 시작한 관계는 2:2 두 부부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 구도가 변하게 되면서 1:다수로 변질된다. 집을 떠날 듯 말 듯 하는 상황이 액션 영화에 버금가는 긴박감을 선사하기도. 이 싸움의 승자는? 당연히 없다. 보는 이까지 너덜거리게 만드는 언쟁 끝에 펼쳐진 마지막 장면은 헛웃음을 자아내게 만들 것.
더 파티 The Party, 2017
감독 샐리 포터/ 코미디, 드라마 / 15세 관람가 / 71분
출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패트리시아 클락슨, 킬리언 머피, 티모시 스폴, 브루노 강쯔, 체리 존스, 에밀리 모티머 ▶바로보기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을 자축하고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자넷(크리스틴 스콧). 만사에 이성적인 냉소주의자 에이프릴(패트리시아 클락슨)와 결별 직전의 애인 고프리드(브루노 강쯔),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커플인 마사(체리 존스)와 지니(에밀리 모티머), 그리고 어딘지 무기력해 보이는 자넷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까지 모여 소소한 축하 파티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마지막 손님인 은행가 톰(킬리언 머피)가 도착하고, 톰은 불안한 얼굴로 화장실에 들어가 총을 숨기고 나온다.
흑백의 화면으로 이루어진 <더 파티>는 스크린을 향해 총구를 겨눈 자넷의 일그러진 얼굴로 시작된다. 영화는 왜 자넷이 총을 쥐었는지, 총구를 겨눈 이가 누구였는지 파티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사유를 밝히는데 주력한다. 예측하지도 못한 폭로로 밝혀진 관계와, 시한폭탄처럼 거실 한복판에 투하된 날카로운 에이프릴의 말들이 분위기를 엉망으로 휘저어 놓으며 스릴러 못지않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연기와 연출의 앙상블이 뛰어난 71분의 블랙코미디.
완벽한 타인 Intimate Strangers, 2018
감독 이재규/ 코미디,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15분
출연 유해진, 염정아, 조진웅, 김지수, 이서진, 송하윤, 윤경호 ▶바로보기
40년 지기 친구인 태수(유해진)와 석호(조진웅), 준모(이서진) 그리고 영배(윤경호). 네 사람은 석호와 예진(김지수) 부부의 집들이 겸 월식을 보기 위해 부부 동반 모임을 갖는다. 식사가 시작되고 예진은 파격적인 게임을 제안하는데.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식사 자리가 끝날 때까지 연락 온 모든 통화와 문자, 이메일을 공유하는 것. 쿨하게 게임을 시작한 7명의 남녀. 이들이 연 것은 단순한 휴대폰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였다.
40년 지기 친구인 만큼, 평생의 동반자인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들. 그러나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작은 공간에 자신의 비밀을 꾹꾹 눌러 담아 놓고, 정작 그 사실은 잊은 채 남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추잡한 비밀의 무게는 고작 짧은 벨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은 월식 같아서, 잠깐은 가려져도 금방 드러나게 돼 있다는 극 중 인물의 말처럼 결국 밝혀지는 폭로에 7명은 보다 완벽한 타인으로 거듭난다. 2016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바올로 제노베제 감독의 <퍼펙트 스트레인저> 리메이크 작으로, 국내에서 529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여배우들 Actresses, 2009
감독 이재용/ 드라마 / 12세 관람가 / 104분
출연 윤여정, 이미숙, 김옥빈,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바로보기
때는 200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패션지 ‘보그’ 패션 화보 촬영을 위해 청담동 915 스튜디오에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모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뽑힌 김민희(김민희), 김옥빈(김옥빈), 최지우(최지우), 고현정(고현정), 이미숙(이미숙), 윤여정(윤여정). 그러나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오고 가는 말들로 인해 기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 고현정의 비아냥을 참지 못한 최지우가 폭발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대선배임에도 스텝들에게 찬밥 신세인 윤여정과, 선배들이 부담스러운 김옥빈. 설상가상으로 소품인 보석이 도착하지 않아 촬영이 딜레이 된 상태다. 애가 타는 촬영 스텝들과 예민해지는 여배우들. 과연 패션 화보 촬영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배우가 있다"라는 문구로 포문을 여는 영화 <여배우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배우들이 직접 본인을 맡아 연기, 리얼함을 살려 실제와 영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각자의 개성과 성격을 살린 티키타카와 애드리브의 향연 속에 기가 빨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재생을 멈출 수 없을 것! 말과 눈빛으로 생성된 암투가 우정의 자양분이 되는(?)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함과 익숙함이 매력 포인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보면 더욱 좋다.
맨 프럼 어스 The Man From Earth, 2007
감독 리처드 쉔크만/ SF, 드라마 / 12세 관람가 / 87분
출연 존 빌링슬리, 엘렌 크로포드, 윌리엄 캇, 애니카 피터슨, 리차드 리엘 ▶바로보기
종신 교수직도 거절한 채 10년간 몸담았던 지방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떠날 채비 중인 존 올드만(데이빗 리 스미스). 그런 그의 집에 동료 교수였던 해리(존 빌링슬리), 에디스(엘렌 크로포드), 아트(윌리엄 캇), 댄(토니 토드) 그리고 조교 샌디(애니카 피터슨), 제자 린다(알렉시스 소프)가 찾아온다. 갑작스레 떠나는 존을 추궁하기 시작한 동료들. 마침내 존은 자신이 14,000년을 살아온 존재이며, 늙지 않기에 10년마다 신분과 주거지를 바꾼다는 폭탄 발언을 뱉는다. 황당한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동료들은 가설을 의심하며 여러 질문을 하고, 존이 논리정연하게 답변을 하자 점차 혼란에 빠지고 만다.
친했던 동료가 사실은 만년 이상을 살아온 인간? <맨 프럼 어스>의 설정은 다소 황당하다. 심지어 가구가 다 정리된 초라한 집에서 5-6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러닝타임 내내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그러나 <맨 프럼 어스>는 스토리텔링에 있어 발군의 실력이 빚어낸 이야기로 그 어떤 액션, 드라마 영화보다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인류의 역사 그 자체인 인간(혹은 존재)에게 인류학, 생물학, 심리학 교수들이 던지는 심층적인 질문과 기존 상식을 파괴하는 존의 대답은 화면 밖에 있는 우리의 상식마저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지구 역사 중심에 있는 종교의 기원에 관해 충격적인 가설을 제시, 자연스레 설득시키는 건 덤이다. 종교에 두터운 믿음을 갖고 있다면 불쾌할 수 있으나 영화는 영화일 뿐. 그런 이유로 놓쳐버리기엔 <맨 프럼 어스>는 너무도 아까운 수작이다.
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