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 영화계를 마비시킬 조짐이다. 3월에 열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중단 또는 연기 소식을 알려왔다.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박스오피스 성적이 수직 하락했고, 다른 나라의 성적도 하락세 조짐이 보인다. 감염병은 사람의 목숨만큼 나라의 경제도 흔들리게 만든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자식처럼 아끼는 영화들의 극장 개봉을 결심한 관계자 여러분들께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내겐 너무 마초적이다

- 켈리 리처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미국 독립영화계를 이끄는 켈리 리처드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마초적인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 지붕 위에 셔츠를 벗고 올라서고, 이소룡을 때려눕히고, 위기에 빠진 여성을 구하고, 히피들을 불태우는 것들…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는 게 의아했다. 지금 이 분위기에 어떻게 마초적인 남자가 여전히 사랑받는지 말이다” 리처드와 타란티노가 서로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건 오래되었다. 지난 2012년 타란티노는 리처드의 영화 <믹의 지름길>을 그해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꼽았다. 반면 리처드는 지난 칸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심사했고, 타란티노는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갔다.


지금은 새 영화 작업하기엔 너무 지쳤다

– 봉준호

봉준호 감독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기생충>이 비영어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기생충>의 시상식 캠페인도 끝났으니 모두들 봉준호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그는 여전히 지쳐 있다. 최근 켈리 리처드 감독의 <퍼스트 카우> 개봉을 기념해 스카이프로 나눈 대담에서 봉 감독은 “이제 시간이 나서 다시 작업에 돌입하려 하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다. 나도 인간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로 봉 감독은 차기작으로 영어 영화, 한국어 영화 2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원래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쓰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두 작품을 동시에 준비하진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은 “TV 드라마도 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라고.


제임스 본드도 사랑에 빠지고,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 다니엘 크레이그

다니엘 크레이크

다니엘 크레이그의 평생 업적이라면 <007> 시리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공헌한 게 아닐까? 그의 제임스 본드는 세련된 바람둥이 비밀 요원이 아니라, 몸과 마음 모두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최근 크레이그는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에서 영화사에 가장 유명한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털어놓았다. 그는 “제임스 본드를 현실적이면서 감정과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다. 특히 본드와 인연을 맺은 여성이 그저 하룻밤 인연이 아니라 그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 되길 바랐고, 제임스 본드도 사랑을 하고, 사랑에 아프고, 누군가를 밀어낸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개봉일을 4월에서 11월로 연기했다.


우리는 딜런 패로우, 성범죄 피해자와 함께 한다

- 아셰트(출판사) 직원들

(가운데) 우디 앨런 감독.

미국 출판사 아셰트가 우디 앨런 감독의 회고록을 출판하려 했다가 취소했다. 아셰트는 지난주 앨런의 회고록 <애프로포 오브 낫싱>(Apropos of Nothing)이 4월 7일 출간된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안팎으로 비판과 빗발쳤다. 앨런의 성추행 혐의를 제기한 딜런 패로우는 아셰트를 공개 비난했고, 자신의 책 <캐치 앤 킬>(Catch and Kil)을 아셰트에서 출간한 로넌 패로우는 출판사와 관계를 끊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고집을 꺾지 않던 아셰트 측은 직원들의 항의에 백기를 들었다. 3월 5일 아셰트의 직원 70여 명은 “우리는 로넌 패로우, 딜런 패로우, 성범죄 피해자와 연대한다”라고 성명을 발표하고, 업무를 거부하고 사무실을 비웠다.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임원진은 결국 “출간을 취소하고 권리를 앨런에게 돌려준다”라고 발표했다.


영화 작업을 마친 날 SXSW가 취소됐어요. 이제 어쩌죠?

- 제이슨 서스버그 & 데이빗 알바라도 (영화감독)

<위 아 애즈 갓즈>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매년 3월 개최되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The South by Southwest Conference & Festivals, SXSW)는 영화, 인터랙티브, 테크,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축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올해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염려로 취소됐다. 감염 확산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지만, SXSW에서 영화를 공개하려던 필름메이커들에겐 결정 자체가 큰 타격이다. 이들의 심정은 다큐멘터리 <위 아 애즈 갓즈>(We Are As Gods)를 공개하려 한 제이슨 서스버그, 데이빗 알바라도 감독의 칼럼에 잘 드러난다. “우리가 영화의 음향 믹싱 작업을 마쳤던 날, SXSW가 취소됐다는 발표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대형 스튜디오나 넷플릭스는 SXSW에서 공개하지 않아도 되지만 작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SXSW가 큰 기회다”라며, 다들 “이제 어떻게 하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그테일 에디터 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