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1일, 오늘은 슬픈 날입니다. 짧은 생을 살다 간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993년 10월31일, 할로윈 데이에 23살의 젊은 배우 리버 피닉스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사인은 약물과다복용입니다. 그가 쓰러지고 동생인 호아킨 피닉스(<글래디에이터> <마스터> <그녀>에 출연한 배우)가 911에 전화를 걸었고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목숨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난다는 할로윈입니다. 리버 피닉스를 비롯해 요절한 배우들을 함께 기억해봅시다.

리버 피닉스
1970년 8월23일~1993년 10월31일(23세)
주요 작품
<스탠 바이 미>(1986)
<허공에의 질주>(1988)
<아이다호>(1991)

리버 피닉스는 제임스 딘과 비교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잘생긴 배우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걸까요. 리퍼 피닉스는 결국 제임스 딘과 비슷한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스물셋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리버 피닉스는 제임스 딘을 이어 요절한 배우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일 겁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도 커서 밴드 활동도 했고, 채식주의자이면서 환경운동가로 목소리를 높였던 그였습니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다니엘 멜로이(크리스천 슬레이터), 2010년에 완성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밀크> 속 클라이브 존스(에밀 허쉬),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짐 캐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에 출연했을 겁니다. 형이 못다 이룬 배우의 삶은, 동생 호아킨 피닉스가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임스 딘
1931년 2월8일~1955년 9월30일(24세)
주요 작품
<에덴의 동쪽>(1955)
<이유 없는 반항>(1955)
<자이언트>(1956)

제임스 딘은 단 3편의 장편 극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럼에도 제임스 딘의 반항아 이미지는 반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한 세기가 더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는 배우로서 날개를 펴기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런 죽음은 교통사고로 찾아왔습니다. 당시 제임스 딘의 죽음은 대중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막 스타의 반열에 들어섰고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절한 배우를 떠올릴 때 제임스 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리버 피닉스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제임스 딘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다음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오늘따라 유독 보고픈 남자, 제임스 딘

샤론 테이트
1943년 1월24일~1969년 8월9일(26세)
주요 작품
<에밀리를 미국 사람으로 만들기>(1964)
<박쥐성의 무도회>(1967)

여기 소개하는 배우들의 모든 죽음이 비극이지만 샤론 테이트의 죽음은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1961년 데뷔한 그녀는 모델이자 배우로 활동하다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결혼했습니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 일당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임신 8개월이었죠. 더 놀라운 사실은 살인마 일당은 샤론 테이트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겁니다. 나중에야 유명인인 걸 알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원래 죽이려고 했던 사람은 폴란스키 가족이 이사 오기 전에 그 집에 살던 음반 제작자입니다. 찰스 맨슨은 이 제작자가 자신의 데모 음반을 듣고 혹평했다는 이유로 살인을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안톤 옐친
1989년 3월11일~2016년 6월19일(27세)
주요 작품
<스타 트렉> 시리즈(2009~2016)
<라이크 크레이지>(2011)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이런 허망한 죽음 앞에선 말문이 턱 막힙니다. 어이 없는 자동차 사고로 젊고 재능 있는 배우를 잃고 말았습니다. <스타 트렉> 시리즈의 체코프로 유명한 안톤 옐친은 자신의 집 앞 고갯길에 주차돼 있던 자신의 차가 후진해서 내려오는 것을 피하지 못하고 담벼락 사이에 깔려 죽음을 맞았습니다. <스타 트렉> 시리즈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안톤 옐친은 여러 색깔의 영화에 고루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로 성장하던 중이었습니다. 안톤 옐친의 허망한 죽음과 그의 영화에 대해 더 궁금하면 다음 포스트를 참고하고 되겠습니다. In memory of ANTON YELCHIN

히스 레저
1979년 4월4일~2008년 1월22일(28세)
주요 작품
<몬스터 볼>(2001)
<브로크백 마운틴>(2005)
<다크 나이트>(2008)

2000년 이후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배우의 죽음은 히스 레저였습니다. 30대 영화팬들은 그가 출연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본 충격과 곧이어 찾아온 그의 죽음의 충격을 고스란히 기억할 겁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을 소재로 한 <아임 낫 데어>를 촬영하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연기하는 동안에는 수면장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결국 그를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죽음으로 몰았다고 생각합니다. 왜 또 갑자기 <브로크백 마운틴>의 엔딩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브랜든 리
1965년 2월1일~1993년 3월31일(28세)
주요 작품
<리틀 도쿄>(1991)
<크로우>(1994)

브랜든 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브루스 리, 이소룡의 아들입니다. 그의 짧은 인생은 어쩌면 아버지와 꼭 닮았습니다. 브랜든 리는 <크로우> 촬영 도중 총기 오발 사고로 숨졌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영화는 미완성으로 남을 뻔했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브랜든 리 출연 분량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반이라 컴퓨터그래픽이 완성한 <크로우> 또한 화제가 됐습니다. 브랜든 리는 전설로 남은 아버지 이소룡을 넘어서지는 못해도 배우로서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유해는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버지 묘소 옆에 안장됐습니다.

이소룡
1940년 11월27일~1973년 7월20일(32세)
주요 작품
<당산대형>(1971)
<정무문>(1972)
<맹룡과강>(1972)
<용쟁호투>(1973)
<사망유희>(1978)

전설은 갑자기 떠났습니다. 절권도의 창시자이자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 있는 무술가이자 배우였던 이소룡은 짧은 생을 살았습니다. 사실 그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됐습니다. 죽음을 맞기 3년 전 한번 쓰러진 적이 있었던 거죠. 이소룡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건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갑자기 쓰러진 이소룡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부검의마다 사인을 다르게 밝혔기 때문입니다. 대마 성분에 의한 것인지 이쿠아제식이라는 진통제 성분이 원인인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홍콩 범죄 조직 삼합회가 살해했다, 가족이 저주를 받았다는 소문도 생겨났습니다. 이 저주론은 아들 브랜든 리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브리트니 머피
1977년 11월10일~2009년 12월20일(32세)
주요 작품
<클루리스>(1995)
<처음 만나는 자유>(1999)
<8 마일>(2002)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2003)

브리트니 머피는 크게 눈에 띄는 배우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루리스>로 데뷔했고 대중적인 상업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는데, 당시 브리트니 머피의 경쟁자로 리즈 위더스푼, 커스틴 던스트, 린제이 로한 등이 있었습니다. 경쟁자들에 비해 이름값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연기는 훌륭했습니다. 그녀는 <처음 만나는 자유>, <8 마일> 등에 조연으로 출연해 좋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에서 애쉬튼 커처와 함께 주연을 맡았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으나 곧 헤어지고 맙니다. 이후 브리트니 머피는 2009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편 사이먼 몬잭은 그녀의 죽음 이듬해 자살했습니다. 청춘 스타의 이미지를 벗은 브리트니 머피의 영화를 더 보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마릴린 먼로
1926년 6월1일~1962년 8월5일(36세)
주요 작품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
<7년 만의 외출>(1955)
<뜨거운 것이 좋아>(1959)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워낙 유명한 스타였기에 또 그녀를 둘러싼 케네디가와의 추문 등으로 인해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어쩌면 그녀의 영화보다 더 많이 알려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시신은 자택에서 발견됐습니다. 차갑게 식은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죽음을 맞았습니다. 공식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이었지만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 때문에 마피아, CIA 개입설이 나왔습니다. 마릴린 먼로는 그저 섹시하고 멍청한 금발 미녀로 인식되곤 하는데 만약 그 미스터리한 죽음이 없었다면, 계속해서 연기를 해나갔다면,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릅니다. 대중의 인식과 달리 마릴린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이 도움이 됩니다. ▶8월5일, 마릴린 먼로 사망 54주기, 그녀를 기리며

폴 워커
1973년 9월12일~2013년 11월30일(40세)
주요 작품
<분노의 질주> 시리즈(2001~2015)

다소 나이가 많지만 폴 워커의 죽음을 요절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팬들은 그의 마지막 모습(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보고 많이 울었을 테죠. 그는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생전에 폴 워커는 “내가 속도로 인해 죽는다 해도, 슬퍼하지 마라. 나는 행복했을 테니까”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고 합니다. 폴 워커다운 죽음이라고 해도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은주
1980년 12월22일~2005년 2월22일(24세)
주요 작품
<오! 수정>(2000)
<번지 점프를 하다>(2000)
<주홍글씨>(2004)

이은주는 자살했습니다. 자살의 원인은 처음엔 가족 문제로 알려졌으나 우울증에 의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합니다. 유작이 된 <주홍글씨> 촬영 당시 이은주는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개봉 직후에는 불면증과 거식증 등을 호소했습니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이은주는 거부하고 다음 진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한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은주가 여전히 배우로 활동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녀가 출연했을,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영화가 보고 싶습니다.

정다빈
1980년 3월4일~2007년 2월10일(26세)
주요 작품
드라마 <논스톱> 시리즈(2000~2002)
<그놈은 멋있었다>(2004)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의 정다빈은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남자친구 집에서 목을 매 숨졌습니다. 자살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당시에는 타살이라는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즈음 가수 유니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언
1981년 2월5일~2008년 8월21일(27세)
주요 작품
<천하장사 마돈나>(2006)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2007)

씨름선수, 모델 출신의 이언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천하장사 마돈나> 이후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뒤 배우로서 본격 활동을 하려던 차에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장진영
1972년 6월14일~2009년 9월1일(37세)
주요 작품
<반칙왕>(2000)
<소름>(2001)
<싱글즈>(2003)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

장진영이라는 배우를 더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픈 일입니다. 그녀는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지만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죽음과 관련해 남편 김영균씨의 사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진영과의 만남부터 투병 생활을 함께 한 김씨는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장진영의 유해는 전북 임실군에는 위치한 장진영기념관에 안치돼 있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