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사진작가였던 이사벨(이자벨 위페르)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3년. 마음 한편에 상실감이 고여있는 그녀의 남편 진(가브리엘 번)과 아들 조나(제시 아이젠버그), 콘래드(데빈 드루이드)는 그녀의 3주기 회고전을 위한 전시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전시를 앞둔 어느날 어머니와 가깝게 지냈던 기자 리처드(데이빗 스트라탄)가 어머니의 사고에 대한 비밀을 기사화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라우더 댄 밤즈>는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사벨을 잃은 세 남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3년 동안 담담히 삶을 이어온 이들의 표정은 자신이 몰랐던 이사벨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면서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노르웨이 출신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제8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사벨을 기억하는 세 가지 방식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에 대한 기억, 그 기억은 과연 정확할까? 같은 시간을 함께 겪어왔을지라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기억은 다르게 생성된다. <라우더 댄 밤즈>는 직선적인 구조의 영화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등장인물 각자의 시점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누군가에겐 복잡하게 느껴졌을 이 구조의 효과를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부터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가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었다.
(중략)
나는 더불어 개별 등장인물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각자의 사연이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함께 이끌어갔으면 했다.
- <씨네21> 1008호
요아킴 트리에 감독 인터뷰 중
젊은 나이에 교수직을 얻고 갓 아버지가 된 조나, 사춘기의 반항심에 마음을 닫아버린 콘래드,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크지만 소통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는 아버지 진까지. 이들의 시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존재감을 지닌 이사벨과 함께 흘러간다.
각자의 경험과 위치에 따라 다른 슬픔을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라우더 댄 밤즈>는 '상실'을 다루는 방법이 보다 입체적이다. 인물들은 자신들이 놓쳤던 사소한 기억들을 하나씩 퍼즐처럼 맞춰가며 이사벨을 떠올린다. 절망과 희망이 함께 버무려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이사벨은 점점 선명해진다.
작지만 큰 얼굴, 이자벨 위페르
주로 인물들의 회상이나 환상 속에서 등장하는 이사벨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비중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극의 중심에 선 역할이니만큼, 그녀가 짊어진 슬픔의 무게는 남다르다. 남겨진 이들의 기억에 따라 그녀의 모습은 각기 다른 풍경으로 묘사된다. 삼부자의 기억 속에서 재현된 그녀는 늘 곧 깨질 듯이 연약하다.
고인이 되기 전에도 그녀는 가족들에게 있어 단편적인 기억으로만 이뤄졌던 인물이다. 종군 사진기자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막중한 의무감과 열정을 지녔던 이사벨. 예상치 못한 폭격이 몇 번씩 떨어지는 현장에서보다 더 큰 비극은 그녀를 품는 공간인 집에서 몰려온다.
전장에서 고군분투한 후 그토록 그리워했던 집에 돌아온 그녀. 제 공간으로 돌아온 이사벨은 가정 속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은 그녀에게 불안함과 덜걱거림을 안기는 공간으로 변주해간다. 남편과 아들의 일상 속 방해자, 침입자가 된 것 같은 낯선 감정은 그녀를 계속 문밖으로 나서게 만든다. 영화는 남겨진 세 남자가 전하는 상실의 표정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폭탄보다 더 거대한 슬픔은 이사벨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이는 예고편 속 그녀의 얼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침묵이 부른 균열
이사벨이 떠난 후 남겨진 이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일어난다. 자신이 몰랐던 어머니의 비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조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사춘기의 반항심으로 풀어내는 콘래드, 자신의 생활은 오픈하지 않으면서 아들들의 사소한 점 하나하나까지 다 파악하려는 아버지 진. 건조한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은 가족이란 공동체 아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결국엔 서로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각자의 고민과 슬픔을 서로에게 진실되게 고백하지 못하는 그들. 이는 서로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단 제스처임과 동시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이사벨이 마주했던 소통 방식이기도 하다. 배려를 가장한 침묵 속에서 그들의 표정이 드러내는 상실의 굉음은 스크린을 꽉 메울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눈으로 모든 걸 말하는 이 영화의 극대화된 미니멀리즘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라우더 댄 밤즈>는 인물들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의 이중성을 조명한다. 지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간이지만, 막상 들어오면 헛헛함을 감출 수 없는 곳.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지만 속박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벗어나고 싶고, 벗어남과 동시에 더욱 뚜렷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가족이라는 틀. 그 안의 균열을 메우고자 애쓰는 인물들의 뭉근한 아픔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생히 전달된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기존의 발랄함을 벗고 겉으론 흠잡을 곳 없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연약한 조나 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매사에 내성적이지만 그 안에서 조용한 힘을 발하는 콘래드를 연기한 데빈 드루이드의 강단 있는 얼굴 또한 주목할 만하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