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 모두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이 작가들의 나라이자 애니메이션의 성지라고 불리는 일본은 유독 책을 영화화한 작품이 많다. 소설, 만화 원작의 다양한 일본 영화들을 장르 별로 만나보자.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 특유의 감성을 책으로 또 영화로 두 번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책을 펴기만 해도 졸음이 쏟아진다는 이들에게는 글자가 아닌 영상으로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중 대부분은 OTT 서비스를 통해 집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고, 곧 개봉을 앞둔 작품도 있다.
공포/ 오컬트 <온다>
출연 오카다 준이치, 쿠로키 하루, 고마츠 나나, 마츠 다카코, 츠마부키 사토시
코로나 19가 휩쓸고 간 극장가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기대작들은 줄줄이 개봉을 연기했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대부분 재개봉작들이다. 이런 극장가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신작이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등으로 일본 국내외에서 상을 휩쓸었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 <온다>가 그 주인공이다. <온다>의 원작은 소설 <보기왕이 온다>인데, 작가 사와무라 이치는 이 작품으로 데뷔와 동시에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에서 만장일치 대상을 거머쥐었다.
<온다>는 미스터리한 한 통의 전화로 초현실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남자 히데키(츠마부키 사토시)의 이야기를 그린다. 평범한 현실 속 뒤틀린 인간의 심리를 잘 담아냈다는 극찬을 받은 원작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풀어냈다. 화려한 캐스팅 역시 눈길을 끈다. 국내에서도 인기도가 높은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고마츠 나나, 오카다 준이치 등이 출연했다. 지난 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된 이 작품은 3월 26일 개봉한다.
스릴러 <고백>
출연 마츠 다카코, 오카다 마사키, 기무라 요시노, 아시다 마나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한 교사의 충격적인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 <고백>은 치밀한 복선과 구성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소설의 저자 미나토 가나에는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각종 미스터리 랭킹과 서점대상을 휩쓸었다. 이 후에 발표한 <왕복 서간> <N을 위하여> <백설공주 살인사건> 등의 작품들 역시 연극,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며 많은 이들의 인생작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영화 <고백>은 <온다>와 같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작품이다. 탄탄한 원작의 스토리와 감각적인 영상이 어우러져 제작비 10배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트로피를 휩쓸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영화제에도 초청된 이 작품에는 세계적인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곡이 삽입돼 음악 역시 화제가 됐다. VOD뿐 아니라 영화 <온다> 개봉 기념으로 진행되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특별전을 통해 영화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미스터리 <검찰측의 죄인>
출연 기무라 타쿠야, 니노미야 카즈나리, 요시타카 유리코
정의란 무엇일까? <검찰측의 죄인>은 두 검사의 대립을 통해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베테랑 검사 모가미(기무라 타쿠야)와 모가미를 존경해 검사를 지망한 신입 검사 오키노(니노미야 카즈나리). 두 사람은 70대 노부부 살해 사건에 함께 배속된다. 사건을 조사하던 중, 모가미는 용의자 목록에서 대학 시절에 살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유키 살해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마쓰쿠라의 이름을 발견한다. 모가미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유키 살해 사건의 죄를 묻기 위해 마쓰쿠라를 노부부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가지만, 수사과정에서 의문을 품게 된 오키노는 모가미와 대립하게 된다.
일본의 대표 배우 기무라 타쿠야와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공동 출연해 더욱 화제가 됐던 <검찰측의 죄인>은 소설 <검찰 측 죄인>이 원작이다. 두 배우가 원작 소설 속 캐릭터의 감정선을 리얼하게 그려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영화의 취조신에서는 보는 사람마저 숨죽이게 만드는 밀도감 높은 연기를 보여줘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이에 오키노를 연기한 니노미야 카즈나리는 일본 호치영화상에서 조연남우상을 수상했다.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현재 씨네Q에서 특별 상영 중이다.
로맨스 <양지의 그녀>
출연 마츠모토 준, 우에노 주리
로맨스 영화를 찾게 되는 계절, 흔한 로맨스가 지겨운 이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양지의 그녀>는 로맨스에 판타지를 한 스푼 추가한 일본 특유의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중학생 시절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마오(우에노 주리)를 도와준 코스케(마츠모토 준). 두 사람은 서로의 첫사랑이 됐지만, 코스케의 전학으로 이별을 맞게 된다. 10년 후 업무 미팅 자리에서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은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스케는 마오에게 큰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지의 그녀>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감독 미키 타카히로 특유의 따뜻한 색감과 뛰어난 영상미가 돋보인다. 이 아름다운 장면들을 완성하는 데에는 배우들의 비주얼 역시 한몫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팬덤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 <고쿠센> <꽃보다 남자>의 마츠모토 준과 <노다메 칸타빌레>의 우에노 주리가 주연을 맡아 엄청난 비주얼을 자랑한다. <양지의 그녀>라는 제목과 딱 맞게 영화를 보고 나면 쏟아지는 햇살 속 두 사람의 모습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왓챠플레이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과학 스릴러 <라플라스의 마녀>
출연 사쿠라이 쇼, 히로세 스즈, 후쿠시 소우타
'일본 작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그 이름,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영화 혹은 드라마화가 되지 않은 작품을 찾는 것이 빠를 정도로 거의 모든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 중 하나가 <라플라스의 마녀>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과 감성(?)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제창한 '라플라스의 악마' 가설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자연과학과 뇌과학을 기반으로 한 신선한 사건 전개가 몰입도를 높인다. 진실을 좇는 아오에 교수(사쿠라이 쇼)와 미스터리한 소녀 마도카(히로세 스즈)의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알렌 워커의 노래 'Faded'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책에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캐릭터와 숨겨진 이야기도 담겨 있어 책과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는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청춘 서스펜스 <우주를 누비는 쏙독새>
출연 시게오카 다이키, 카미야마 토모히로, 키요하라 카야, 토미타 미우
일본 학원물이 모두 순정 만화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을 꼭 보길 바란다. <우주를 누비는 쏙독새>는 상대적으로 일본 작품이 적은 넷플릭스의 몇 안 되는 일본 오리지널 드라마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독특한 소재의 청춘 드라마로, 1회를 보기 시작하면 완결까지 멈출 수가 없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6회 완결에 회 당 짧은 러닝 타임덕분에 하루만에 정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큰 장점이다.
암울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우미네 젠코(토미타 미우)는 학교에서도 늘 소외 당하는 학생이다. 우미네는 가정환경도, 학교에서의 위치도, 겉모습도 자신과는 정반대인 코히나타 아유미(키요하라 카야)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그녀와 몸을 바꾸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유미의 친구 카가 슌페이(시게오카 다이키)와 미즈모토 코시로(카미야마 토모히로)의 관계 역시 크게 변하게 된다. '몸이 바뀐다'는 소재는 이미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다뤄졌지만, 배경이 학교라는 점과 왕따 문제, 외모지상주의 등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어린 네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 몰입도가 높다.
아유미를 좋아하는 두 친구 카가와 코시로의 서로 다른 사랑 방식, 그리고 엇갈린 네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추측해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재미 중 하나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흘러나오는 일본의 유명 작곡가 켄 아라이(Ken Arai)의 사운드 트랙까지 더해지니 앉은 자리에서 완결을 보게 된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청춘물임에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라는 점인데, 투신 자살 장면이 조금 사실적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그다지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씨네플레이 이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