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소울 뮤지션 빌 위더스(Bill Withers)가 지난 3월 30일, 8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위더스를 기리며, 그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Lean On Me"

<고독한 스승> (1989)

두 번째 앨범 <Still Bill>의 첫 싱글 'Lean on Me'는 빌 위더스가 발표한 노래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나에게 기대요" 라는 노래 이름부터 흡사 찬송가 같은 경건한 정서가 물씬한 노래는 빌보드 싱글 차트와 소울 차트를 석권한 유일한 위더스의 노래로 남았다. 이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가 있다. 모건 프리먼 주연의 <고독한 스승>(원제 'Lean on Me')이다. 클라크(모건 프리먼)는 교사로 처음 부임해 열정적으로 일하다 쫓겨났던 학교가 20년이 지나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리고 난 뒤 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낙제생이 넘쳐나고, 학생이 교사를 괴롭히고, 교내에서 마약이 거래되는 상황. 전교생의 20%에 달하는 문제아를 단번에 퇴학시키는 등 확신에 차다 못해 독재에 가까운 태도로 학교를 뜯어고치는 클라크의 방식에 학부모는 물론 동료 교사까지 등돌리게 된다. 자신의 지독한 훈육을 반성한 클라크가 기초학력고사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말을 전하고, 파워스 여사가 부르는 'Lean on Me'는 강당의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킨다. 클라크 교장이 학생들 하나하나 손을 맞잡는 엔딩 크레딧에 셀마 휴스턴(Thelma Houston)과 가스펠 그룹 와이넌스(The Winans)가 함께 부른 'Lean on Me' 커버 버전이 흐른다.


"Who Is He (And What Is He to You?)"

<재키 브라운> (1997)

두 번째 영화 <펄프 픽션>(1994)으로 지구의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쿠엔틴 타란티노는 3년 만에 블랙스플로테이션(70년대 유행한 흑인 위주의 액션영화)의 최고 스타였던 팸 그리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재키 브라운>을 발표했다. 그리어는 물론 블랙스플로테이션 자체에 존경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재키 브라운>엔 6~70년대 소울/훵크 고전들이 그득그득 사용됐다. 빌 위더스의 'Who Is He (and What Is He to You)?'는 오델(새뮤얼 L. 잭슨)과 루이스(로버트 드 니로)가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는, 간판 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술집에서 흘러나온다. 오델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애인인 멜라니(브리짓 폰다)의 유혹에 넘어간 루이스는 그녀에 대해 묻는다. 찰랑찰랑 가벼운 리듬 위를 휘젓는 위더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루이스가 실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아가면서 우물쭈물 "그럼 멜라니는 자네한테 뭐야?"라고 묻는 광경은 뻘한 웃음을 터트린다. 이 노래의 제목이 "그는 누구(고 그는 너한테 뭐)야?"라는 걸 아는 이들이라면 더 웃기다. 그 다음 이어지는 여혐으로 가득한 대화는 너무 추잡하니 설명은 이제 그만.


"Ain't No Sunshine"

<노팅 힐> (1999)

<노팅 힐>의 두 주인공 안나(줄리아 로버츠)와 윌리엄(휴 그랜츠)은 두 번의 이별을 경험한다. 영화는 그들이 헤어지게 된 다음, 안나가 곁에 없는 윌리엄이 홀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소울 음악과 함께 보여준다. 첫 번째 이별 후엔 알 그린(Al Green)의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집 앞에 몰려든 취재진 때문에 헤어진 다음엔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이 흐른다. 노팅힐의 포르토벨로 마켓을 가로질러 서점으로 출근하러 가는 길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되는 풍경 아래 전달된다. 두 알콜 중독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술과 장미의 나날>(1962)에 영감을 얻고, 프로듀서 부커 T. 존스(Booker T. Jones)가 담당한 현악 편곡 덕분에 윌리엄의 마음이 보다 황량하게 느껴진다. 1971년 5월 발표된 위더스의 데뷔 앨범 <Just As I Am>의 데뷔 싱글이었던 'Ain't No Sunshine'는 곧장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2006)과 로버트 저메키스의 <플라이트>(2012) 역시 'Ain't No Sunshine'을 사용했다.


"Use Me"

<애니 기븐 선데이> (2000)

빌 위더스가 70년대 당시 활동하던 소울 뮤지션들과 확연히 달랐던 건 그의 음악이 차분하다는 점이다. 완만한 목소리에서 대번에 느껴지듯, 들뜬 흥분에 휩싸이는 법이 없다. 한때 전국 챔피언십을 연달아 차지했지만 지금은 3연속 패배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마이애미 샥스와 팀을 이끄는 디마토 코치(알 파치노)를 따라가는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도 위더스의 노래가 사용됐다. 경기 장면, 그것도 대망의 마지막 경기에서다. 알 파치노의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디마토 코치의 일장연설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촐싹맞은 유로댄스, 2 언리티미드(2 Unlimited)의 'Twilight Zone'과 함께 이어지는 초반부터 샥스는 고전한다. 분위기가 뒤집히는 건 오랜 경력의 주장(데니스 퀘이드)을 다시 쿼터백에 배치하면서부터다. 바로 이때 위더스의 'Use Me'가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낸다. 풋볼 선수들이 격하게 몸을 부딪히는 소리가 'Use Me'의 슬렁슬렁 나풀대는 리듬에 끼어드는 불협화음에 힘입어(?) 샥스의 경기력은 슬슬 회복하기 시작한다.


"Just the Two of Us"

<밴디츠> (2002)

교도소에서 만난 테리(빌리 밥 손튼)와 조(브루스 윌리스)는 레미콘 차를 타고 탈옥해 독특한 방식의 은행털이로 승승장구하고, 따분한 결혼생활이 신물이 난 변호사 부인 케이트(케이트 블란쳇)까지 합류한다. 조가 자기를 속였다는 걸 깨달은 테리는 한밤 중에 케이트를 찾아와 저기 아래 바에 가서 얘기 좀 하자고 떼를 쓴다. 처음엔 내켜하지 않던 케이트는 테리가 주크박스로 'Just the Two of Us'를 틀자 금세 만면에 미소를 띄운다. 빌 위더스의 목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정확히는 색소포니스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의 연주에 위더스가 멜로디와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한 노래다. (시이나 이스턴의 'Morning Train'에 밀려) 3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차지했고,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R&B송 부문에서 수상했다. 케이트가 "이 노래 너무 좋아..." 하며 헤죽대는데, 정신머리 없는 테리는 "사실 한번도 이 노래 들어본 적 없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그냥 1번 트랙을 눌렀어. 6번이나 틀었지" 말하곤 자기랑 같이 도망가자고 설득한다. 케이트는 도무지 대책 없는 말에 학을 떼고, 갑자기 조가 바에 나타난다. '우리 단 둘이서만'이라는 노래 제목이 깨지는 순간. 당황한 테리는 이때부터 더욱 정신을 못 차리고, 6번이나 틀었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정말 'Just the Two of Us'는 또 한번 플레이 되고 한밤 중의 무드는 산산조각난다.


"Lovely Day"

<127 시간> (2011)

<127시간>은 홀로 블루 존 캐년 등반 중에 암벽에 팔이 낀 채로 생존한 아론 랄스턴의 실화를 영화화 한 작품이다. 아론(제임스 프랭코)은 가지고 있는 나이프로 바위를 긁어보기도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자 결국 포기한 채 정상이었던 삶의 환상에 빠져든다.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월요일의 날이 밝고, 아론은 다시 열심히 탈출을 시도한다. 빌 위더스의 'Lovely Day'는 비록 아론의 처지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제목이지만, 그저 찬란하기만 한 노래는 로프를 이리저리 조작해 빠져나갈 길을 궁리하는 아론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이 전체 러닝타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걸 몰랐다면 어쩌면 그의 시도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을 법도 하다. 허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암만 해도 돌은 끄떡도 않고 차 안에 두고 온 이온음료까지 떠오르자 아론은 절망한다. 위더스의 커리어 후기에 해당하는 1977년에 발표된 'Lovely Day'는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어도 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10년이 흐른 뒤 DJ들에게 리믹스 되면서 90년대 초 라디오를 중심으로 다시금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90년대 중후반엔 차(茶)와 의류 광고에 사용되면서 오랜 시간 사랑 받아왔다.


"Lonely Town, Lonely Street"

<히트> (2013)

동료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는 만능 FBI요원 사라(산드라 블록)는 마약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스턴에서 막무가내 다혈질 형사 섀넌(멜리사 맥카시)과 파트너가 된다. 전혀 다른 스타일 때문에 투닥투닥 하지만 어느새 최강의 콤비가 되는데, 섀넌의 남동생 제이슨이 FBI를 돕다가 총에 맞아 혼수상태 되면서 섀넌은 사라를 매몰차게 밀어낸다. 빌 위더스의 'Lonely Town, Lonely Street'는 두 사람이 각자 홀로 수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퀀스를 수식한다. 발라드가 아니더라도 적적함이 묻어나는 위더스의 목소리에 힘입어, 갑자기 웃음기를 싹 거두고서는 그들을 더욱 쓸쓸하고 무력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유효하게 하는 인용이다. 'Lonely Town, Lonely Street'는 앞서 소개한 'Lean on Me', 'Who Is He (and What Is He to You)?', 'Use Me'가 수록된 빌 위더스의 걸작 <Still Bill>를 시작하는 트랙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