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m’<Actor's room> , <배우의 방>을 뜻합니다. (캐릭터에 빠져 사는) 배우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묻고자 하는 게 이 인터뷰 기획의 핵심입니다. 배우의 얼굴 보다 그의 공간이 더 깊이 담깁니다. 작품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양가적인 얼굴. 다양한 감정을 품은 배우를 이야기할 때 덕담처럼 사용되는 이 표현에 수식어 적합 여부를 따지는 심사가 있다면, 이제훈은 최상급일 것이다. 2011년 혜성처럼 당도해 영화계를 흔들었던 <파수꾼>에서부터 이제훈은 이러한 면모를 유령처럼 흘려왔다. 서투르게 사랑을 갈구하며 타인은 물론 스스로를 파괴했던 기태(이제훈). 미워할 구석이 있는 이 약점 많은 캐릭터가 대중에게 공감을 얻으며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기실 이제훈이 부여한 양면적인 매력 덕분이었다.

서늘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이제훈의 마스크는 이후에도 영화 안에서 흥미롭게 쓰였다. 사랑 앞에 찌질했던 순진한 승민(<건축학개론)>과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영(<고지전>)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이미지 낙차. 신념을 위해 뜨겁게 돌진했던 역사적인 인물 박열(<박열>)과 구청에 가면 진짜 있을 것 같은 가장 보통의 얼굴 박민재(<아이 캔 스피크>) 사이의 간극. 유약했다가, 악독했다가, 예민했다가, 순박했다가, 사랑스러웠다가... 이물감 없이 캐릭터를 껑충 오가며 이제훈은 대중이 오래 두고 관찰하고 싶은, 호기심을 품은 배우가 됐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과 다시 작업한 <사냥의 시간>에서는 또 어떤 얼굴 근육을 사용했을지, 그 힌트를 얻고 싶어 그를 잠시 불러세웠다.

어디로 걸어볼까~

#1. 정릉

2월의 어느 날, 오후 2. 습도가 높은 날이었고, 공기가 적당히 차가웠으며,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퍼져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제훈과 접선하기로 한 장소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이제훈)의 카메라 뷰파인더 속으로 서연(수지)이 뛰어 들어왔던 정릉. 개봉을 앞둔 <사냥의 시간>(이때까지만 해도 <사냥의 시간> 개봉이 코로나19로 인해 오랜 시간 연기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를 통한 공개를 논의 중이다.)으로 열혈 홍보를 이어가고 있던 이제훈은 이날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보이는 라디오 방송을 끝내고 정릉으로 달려온 터였다. 그를 만나러 가면서 보이는 라디오를 시청각적으로 확인했던 나는, 유산슬(유재석)이 입었던 반짝이는 재킷을 입고 잔망미를 터뜨리며 코요테의 순정리듬에 맞춰 커커커~컴온!”을 외치는 이제훈의 모습에 미소를 거둘 수 없었다. <사냥의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걸어서 전국 일주라도 할 기세인 이 배우에게서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우린 <건축학개론>의 추억이 깃든 정릉을 민첩하지 않은 걸음으로 거닐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파리한국영화제 참석 때, 우연히 손에 넣었다는 프랑스에서 출시된 <파수꾼> DVD

-올해가 ‘2020년 원더키디의 해입니다.

=그러게요. 우주선이 막 날아다니고, 외계인이 출몰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웃음) 상상력이 현실을 앞섰군요.

-<사냥의 시간>의 상상력은 조금 더 먼 미래로 가죠.

=영화 안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연도를 명확하게 명시하지는 않지만, 저희끼리는 2035∼2040년 정도로 생각하며 촬영에 임했어요.

-윤성현 감독님이 일본 만화 <아키라> <베르세르크> 등의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작품이라고요.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한정적인 예산 안에서 감독님이 그리고 싶은 세계를 구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효율적인 프로덕션 운영으로 최대한 원하는 그림을 표현하셨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사냥의 시간>이 그려내는 근미래에 이곳 정릉은 어떻게 됐을 것 같나요?

=하하. 유적지잖아요? 보호되길 바랍니다.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죠.

-출연한 작품의 개봉을 기다리는 배우의 마음엔 늘 설렘이 함께 하겠지만 <사냥의 시간><파수꾼>과 함께 호출되는 영화인지라 조금 더 남다를 것 같아요.

=윤성현 감독님이 <파수꾼> 이후 처음 내놓은 작품이라 더욱 그래요. 많은 분이 그랬겠지만, 저 역시 그의 작품을 오래 기다렸어요.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사이라 감개무량함이 있죠. 영화적 세계가 정말 넓고 깊은 감독님이에요. 그중에 하나를 10년 만에 보여주는 건데, 다음번에는 조금 더 빨리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영화에서 당신이 연기한 준석은 사건의 설계자라고 들었습니다.

=. 목표가 뚜렷한 인물이에요. 주위 친구들을 꼬드기는. (웃음)

-현실에서의 이제훈은 어떤가요. 행동주의자인가요, 이상주의자인가요?

=이상을 꿈꾸면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꿈만 꾸면서 실행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당신은 감상적인 사람입니까, 이성적인 사람입니까.

=감상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소통할 때는 이성적으로 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때그때 느끼는 감상이나 기분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면 표현의 온도 차이가 심할 수 있으니까요. 받아들이는 사람이 오해 없도록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리에서는 어떤가요. <사냥의 시간>에는 킬러 한을 연기한 박해수 배우가 있긴 하지만, 위험한 작전을 함께 하는 배우(안재홍·박정민·최우식) 중에선 가장 연장자인데요.

=형 같지 않은 형이랄까. 리드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분위기에 묻혀서 따라가는 편이었죠. , 필요할 땐 주도적으로 움직이긴 했어요. 가령, 커피차? <사냥의 시간> 배우 5인과 감독님이 함께 하는 단톡방이 있어요. <사냥의 시간>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이 각자의 작품을 찍을 때, 제가 커피차를 보내자고 주도했죠. 커피차 받는 사람이 없는 방을 따로 만들어서 돈을 N 분의 1하고, 계좌 번호 보내고, 받고, “결제했다~!” 막 이러고. (일동 웃음)

-왜 다들 귀엽게 느껴지죠? (웃음)

=배우들끼리 너무 친하고 죽이 잘 맞았어요. 서로 면박도 주고 놀리기도 했는데, 누구 하나 악의가 없었기에 마냥 즐거웠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사냥의 시간>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녹인 작품이에요. 연관해서 드리는 질문인데, 당신을 절망하게 하는 사회적 현상, 혹은 사회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SNS 등의 영향으로 정보의 전파 속도가 이전과 다르게 빨라졌잖아요? 그에 따른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정확하지 않은 팩트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한 우려와 아쉬움이 있어요. 그런데 이 또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형성될 테고, 그러면서 더 성숙한 문화가 생기리라 믿어요.

-저 역시 이젠 정보를 걸러서 보고 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과도기란 생각이 들어요.

=매체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하는 것 같아요. ‘여기는 무조건 옳아, 여기는 무조건 나빠식의 맹목적인 접근이 아니라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반대로 당신을 희망적이게 하는 사회적 변화는요?

=이전에는 스태프들이 밤을 새우거나 그에 따른 합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많이 개선되고 있어요. 엄청난 변화죠. 과도기에 따르는 변화를 견디는 게 당장은 힘들 수 있어요. 제작비 상승이나 촬영 시간 제약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함이기에 소통하고 보완하면서 잘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시스템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으시군요.

=이전엔 다들 밤샘 같은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절대 당연한 게 아닌데 말입니다.

-혹시 가족이나 친지 중에 예술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아니요. 그것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갈등이 컸어요. 주변에 누구라도 예술 분야에 계셨다면 많이 물어봤을 텐데, 예술적 멘토랄까, 그럴 만한 분이 없었어요. 저 스스로 답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야 했기에 조금 외로웠죠.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니, 더 그랬고요. 그런데 영화만 보면 내 안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니,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시지 않더라고요.

-집안에서 남다른 DNA를 가지고 태어난 셈인데요, 영화엔 왜 그렇게 끌렸습니까.

=어릴 때, 집 맞은편에 비디오 가게가 있었어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요. 마침 VHS 플레이어가 브라운관에 붙어있는 일체형 TV를 아버지가 제 방에 놓아 주셨어요. (웃음) 그런 환경이 조성되니까, 중학교 때 하루에 한 편 씩 비디오를 빌려다 봤어요. 비디오 가게가 망하면서 점포정리를 했는데, 그때 엄청 많은 비디오를 샀어요. 그걸 계기로 점포 정리하는 비디오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비디오를 모으곤 했죠.

-즐겨보는 장르가 있었나요?

=외화가 인기였던 시기에도 저는 한국 영화를 즐겨봤어요. 박신양 선배님의 <유리>나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들. 이창동 감독님 <초록물고기>를 보면서는 , 이런 게 영화인가?’ 했어요.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할 언어는 찾지 못하겠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가 <쉬리>를 만났죠. 저는 한국 영화가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쉬리>가 나왔을 당시 한석규 송강호 선배님 나이가 <사냥의 시간>에 출연하는 저희와 비슷해요. 선배님들이 그러셨듯, 저희도 또래들이 모여서 <사냥의 시간>을 만든 거죠.

-이미 또래 배우들이 뭉쳐서 큰일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파수꾼>으로 말이죠. <파수꾼>은 독립영화의 지형을 많이 흔든 작품이에요. 독립영화를 통해 발견된 배우를 호출할 때, 당신은 거의 시조새 격으로 꼽히기도 하고요. (웃음)

=(눈을 개구지게 반짝이며) 제 입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파수꾼>이 말이죠~! (웃음) 이번 <사냥의 시간>이 다른 의미에서 또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청춘을 그린 영화가 의외로 많지 않아요. <사냥의 시간>이 기폭제가 돼서 젊은 에너지가 분출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좋지 않나 싶고요.

-조금 짓궂은 질문인데, 여동생이 있다면 <사냥의 시간> 배우 중에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아우~ 이거, 잘못 대답하면 배우들에게 지탄받는데. 하하. 지금 당장 생각하는 건 안재홍 배우? 모두가 다 자상한데 안재홍 배우만이 지닌 특유의 포근함이 있어요. 위트도 출중해서, 제 여동생이 있다면 끊임없이 웃게 해 줄 것 같아요. 그래서 선택은 안재홍 배우.

-이 배우의 이런 점은 사냥해서 내 것으로 하고 싶다 싶은 건요?

=정민이가 작가잖아요? 글을 정~말 잘 써요. 어쩜 그렇게 맛깔나게 쓰나 싶어요. 글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너무 부럽습니다. 해수 형은 출연 작품들이 카리스마 넘쳐서 실제로도 강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순박할 수 없어요. 제가 만난 배우 중에 가~장 선해요. 그런 형을 좋아하게 됐죠. <사냥의 시간>에서는 실제와 달리 무시무시하게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톤앤매너를 지배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보시면 그렇게 느끼실 겁니다. 제게 남동생이 있다면 우식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형님, 형님~”하면서 안기는데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사냥의 시간> 배우들을 언급하며 호감의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제훈에게서 발견되는 건 단순한 동료애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보다 몰개성화된 한국 영화 산업에서 자기만의 창작 욕구를 모색하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향한 든든함, 그리고 연대 의식에 가까워 보였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자, 우린 발

길을 돌려 정릉 입구 쪽으로 다시 이동했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조용한 카페가 목적지였다.

과거의 흔적을 뒤적이고 있는 이제훈

#2. 정릉 근처, 커피숍

-그나저나, 정릉엔 얼마 만인가요?

=사실 <건축학개론> 촬영 때 오고 처음이에요. (웃음) 나만의 공간을 여쭤오셔서 고민을 많이했어요. 가족들과 사니까 집으로 초대하기도 그렇고. 자주 가는 극장은 인터뷰하기에 조금 애매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로. <건축학개론> 생각도 나고, 걸으며 이야기하기에도 좋겠다 싶었어요.

-승민의 뷰파인더 속으로 서연이 뛰어 들어온 게, 이 어디쯤이죠?

=하하. 승민은 그렇게 믿고 싶은 거죠. 그녀가 내 카메라로 뛰어 들어왔다고.

=영화 개봉 후 많은 청춘 남녀들이 내가 잡은 앵글에도 누군가 들어왔으면…이란 상상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웃음) 영화에서 소심하고 비겁했던 승민은 서연을 놓치는데, 이제훈이었다면 달랐을까요?

=저 역시 20대 초반에는 승민처럼 어리숙한 면모가 많았어요. (웃음) 어릴 때요? 어릴 땐 심하게 활달했어요. 장난도 많이 치고 극성맞고 시끄럽다 보니 명절 때 모이는 친척들도 제가 오는 걸 반기지 않을 정도였죠. 그러다가 남녀공학인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 얌전해졌어요. 남중을 다니다가 성비가 반반인 혼성반에 들어가다 보니

-타인/이성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군요.

=그랬던 거죠. (웃음) 그런데 오래 가지 못했어요. 2 올라가면서 1년 동안 참았던 게 올라오더라고요. 다시 막 장난치고 떠들고~ 그래도 성장하면서 많이 차분해지긴 했어요.

-공학도의 길을 걷다가 자퇴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처음부터 연기라는 길을 선택해서 달리거나, 다른 전공을 공부하면서 연기를 겸한 것과는 분명 다른 경우죠. 인생을 바꾸는 과정은 당신에게 시행착오로 남아있나요? 아니면 운명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운명도, 시행착오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공대를 휴학한 후 몸담았던 곳이 러시아 유학파 출신 선생님들이 모여서 만든 극단 동()’이었어요. 배역과 완벽하게 동일화돼야 한다는 스타니슬랍스키식 연극론에 기반을 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의 저는 무대에 서는 배우는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이면 어느 정도 완성이 되는구나라는 이미지에 대한 인식만 했었어요. 그런데 극단 선생님께서 배우는 평소에도 극 중 인물처럼 옷을 입고, 극 중 인물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셨어요.

-캐릭터와 일상이 밀착된 연기 말이죠.

=. 그런데 저는 그 과정을 간과했어요. 당시 장기 공연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는데, 공연 2달 정도 됐을 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공연 도중에 너랑은 함께 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런 태도와 자세로는 무대에 설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길 듣고 말았죠.

-저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큰 절망에 빠졌고요. 그런데 물러설 수 없더라고요. 선생님이 잠깐씩 올라와서 대사 한마디치고 들어가는 노인 역할이 하나 있는데, 그거라도 할래?” 하시길래 하겠습니다!” 했어요. 그때부터 70∼80대 노인 역할로 무대에 섰죠.

-이후 극단 가는 길이…

=천근만근이었죠. 하…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친구들에게 부끄럽고, 부모님에게 죄송하고. 뒤늦게 연극한다고 나서서 주인공까지 됐으니, 얼마나 자랑하고 다녔겠어요. 그런데 주인공에서 하루아침에 단역이 됐으니. (웃음) 하지만 어떤 끈기가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두고 보자. 해 보이겠다!’ 하는.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

=. 내가 연기에 대해서 얼마나 열정이 있고, 원하는지에 대해서.

-당시에는 너무나 아팠을 텐데, 어떻게 보면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을 빨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맞아요. 저의 토양이 된 엄청 중요한 순간이었죠. 무언가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되고 나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아까 시행착오였는가 운명이었냐 물어보셨는데, 저에겐 긴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어요. 내가 연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연기 그 자체를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인지… 연극을 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까지 결부되니까 거기에서 오는 혼란이 또 있었죠. 저는 고민의 순간에 끊임없이 질문하는 스타일인데, 그때 그랬어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부모님에게 효도도 하고 싶고, 나중에 와이프랑 자식이 생기면 호강도 시켜주고 싶은데, 연기해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꿈이라는 이유로 내가 불확실한 미래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이걸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였군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더라라고요.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결단을 내린 거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를 다 내던지고, 다시 시작하자.’ 그래서 학교를 생각한 거예요. 그때 딱 한 군데만 시험을 봤어요. ‘안 되면 군대 가자라는 마음으로. 운 좋게 붙은 거죠. (의문의 서류 가방을 가슴에 끌어안으며) 학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쯤에서 보여드려야겠네요.

이제훈이 챙겨온 과거의 기록물들. 인터뷰 전날, 고심하며 골랐다고 한다.

안 그래도 궁금한 터였다. 커피숍으로 옮기면서 그는 차에서 서류 가방을 가지고 왔는데, 인터뷰 도중 이유 없이 꺼내 들지는 않았을 터.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가방의 비밀을 밝혀달라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나에게 그가 웃으며 말한다. “학교 다닐 때 끄적인 기록물과 <파수꾼> 흔적들을 가지고 왔어요.” 아니, 이런 귀한 자료를! 가방을 오픈하며 그는 부끄러운 듯 연신 크크크크. 제가 이걸 보여드릴 줄이야~”하고 수줍게 웃었다.

시간 순서로 편집해서 정리한 '파수꾼' 시나리오, 여백에 적힌 이제훈의 주석과 낙서

가방을 여니 평소 그가 몸에 껌딱지처럼 지니고 다닌다는 아이패드, <파수꾼> 시나리오 콘티북과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진행되는 <파수꾼>(신 별이 아닌) 시간순으로 편집해 정리한 대본, 3년 전 파리한국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우연히 구했다는 프랑스에서 출시된 <파수꾼> DVD, 2008년 이제훈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관찰일기’, “선생님의 말씀들을 적은수업 노트가 쏟아져 나왔다.

2008년 이제훈 ‘관찰일기’, 관찰일기 가장 앞장에 도종환 시인의 시를 적어뒀다

-‘관찰 일기가장 앞에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적어뒀군요.

=꽃은 아름다운 존재지만 흔들리지 않는 줄기가 있어야 한다는 시의 의미들이 배우의 어떤 결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도 그래야 한다는 걸, 새기면서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역경에 처해야만 사람의 가치가 드러난다. 어려움에 닥쳐봐야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쓴 글도 보이는군요.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혹독한 경험이 성장하는 데 좋은 토양이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여러 감정을 저글링 해야 하는 배우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수업 노트를 넘기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 이건 송강호 선배님이 해주신 말씀을 적은 거예요. 학교 다닐 때 특강으로 선배님이 오신 적이 있거든요.

-(노트 들여다 보며) 송강호 배우가 누구나 하는 선택을 하지 말라라고 했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당신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 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아마 대중이 이제훈이란 배우에게 지니는 신뢰이지 않을까 싶고요.

=그렇게 봐주시면 너무 감사한 일이죠.

예의상 던진 빈말이 아니었다. 규모가 큰 상업영화 뿐 아니라 <박열> 같은 저예산 영화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면모를 비롯해 그의 작품 선택에서의 우선순위는 산술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마지막까지 달뜨지 않고 나문희 선생님의 조력자 임무를 수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 비중에 연연하지 않고 의미 있는 영화라면 뒤로 물러서서 선택할 줄 아는 이제훈의 됨됨이를 관객들은 기민하게 눈치챈 터였다.

=시나리오를 볼 때 이 역할을 하면 빛나 보일 것 같은데라고 해서 선택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가령 <사냥의 시간>에서 감독님이 어떤 역할을 주셨든 상관없이 출연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윤성현이라는 감독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뭐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좋은 작품이라면 제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어요. 작품 안에서 올바르게 쓰이고 싶을 뿐. 누군가가 빛나야 하는 순간이라면, 기꺼이 반사판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송강호 배우 강의 시간에 필기한 노트에는 좋은 연기→작품이 원하는 연기라는 글도 적혀있었는데, 문장 앞에 강조를 위해 쳐 둔 () 모양기호에서 이제훈이 방금 언급한 연기 방향성의 기원이 읽혔다. “송강호 선배님이 오셔서 해 주신 말씀이 저에게 자연스럽게 내재되지 않았나 싶어요.” 흡사 스무 살 청년처럼, 이제훈이 웃었다.

-한예종의 정규 연기교육이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어떤 것들을 제공했나요.

=일단 신체를 어떻게 써야 하는 가에 대해 배웠어요. “나를 제대로 알아야 연기도 제대로 할 수 있다라는 교수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를 찾아가고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어땠습니까. 그때 발견한 이제훈은?

=유연하지 못하구나, 자유롭지 못하구나, 조금 더 나를 깨야겠구나. 동시에 내가 이런 표현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도 발견했고요. 학교에서 보낸 1년은 정말이지 치열하고 행복했어요. 연기에 대한 갈증은 어마어마한데, 동기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고, 군대도 안 간 상태였으니, 절박한 심정으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학교를 1년 다니고 군대에 갈 계획이었는데, 그해 여름 지금의 매니지먼트 (이소영) 대표님을 만났어요. 대표님이 연기 활동을 조금 더 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제안 주셨는데, 저는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몇 달은 고민했어요. 보통 매니지먼트 하는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명 배우가 이러면 얘 뭐야, 됐어! 다른 신인도 많은데할 텐데, 대표님은 그런 제가 오히려 좋아 보였대요. (웃음) 이상하게 대표님과는 서로 끌리는 게 있었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이 시작됐고, 그의 인생에 <파수꾼>이 나타났다. <파수꾼> 콘티북과 시나리오 여백에 적힌 이제훈의 주석과 낙서에는 촬영 당시 그가 느끼고 해석한 감정의 흔적이 가득했다. ‘기태(뒤집어진 모양)∥제훈이라고, 콘티북 앞에 적어 둔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 의미하는 건 mirror, 즉 거울. 이에 대해 이제훈은 기태와 동일시되고 싶었던 바람을 적어둔 것이라고 부연해 주었다. 그가 <파수꾼>에서 보여줬던 날것의 생생함, 선악이 혼재된 양면성, 그리고 그 세심한 감정선이 스크린을 뚫고 나와 가슴에 박혔던 이유가 설명되는 기분이었다.

=시나리오 첫 장에 큼지막하게 쓴 창조적, 끓어오르는 진심’.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이번에 다시 꺼내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그때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싶어서. 지금도 연기에 대한 제 모토는 창조적인 것진심이에요. 이건 윤성현 감독님 영향이 큰데, 그때 저에게 끊임없이 물어왔던 지점이에요. 준비된 대사가 있긴 하지만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때 느낀 감정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 표현되길 원하셨죠.

-‘진심이란 단어가 나와서 이와는 조금 다른 진실에 대해 드리는 질문인데, 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보셨나요?

=굉장히 흥미롭게 본 영화에요. 배우에 대한 이야기니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 영화에서 까뜨린느 드뇌브가 연기한 파비안느가 자신이 쓴 회고록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하죠.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진실은 전혀 재미없거든이라고.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진심을 보여주고 싶은 게 연기에 대한 제 모토이지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진실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 있죠.

맞다. 특히나 배우는, 허구(가짜 이야기)로 진심을 전달하려는 사람.

=그리고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여러 관계의 가짓수들이 있잖아요? 저 역시 어떨 땐 배우 이제훈의 모습을, 어떨 땐 인간 이제훈의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잘 정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10년 정도 연기하면서 느낀 건, 내 생각을 솔직하게 오픈해서 이야기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상대방의 말을 그냥 수용하고 저를 덜 표현했어요. 그런데 서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서운하더라도 진심을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게 또 소통이잖아요. 그러면서 이전보다 저를 이야기하는 데 더 적극적인 됐죠.

-안 그래도 이전 인터뷰를 보면 영화나 연기 외의 것들은 오픈하길 꺼린 시기가 있었어요.

=맞아요. 그랬던 적이 있어요. 작품의 캐릭터로만 존재하기 위해 저를 좀 가둬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이젠 많이 유연해졌어요. 사람이 혼자 살아갈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살면 재미가 없겠더라고요. 공유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저를 더 열게 된 거죠. 매체를 수용하는 자세 역시 이전과는 달라졌어요. 비디오테이프에서 DVD로 넘어가고, 그게 또 OTT로 변하는 흐름들. 이전의 저라면 ‘(목소리 높여)이게, 말이 돼?’ 했을 거예요. (웃음) 이젠 그러지 않아요. 수용해요. 수용하고 오히려 발전의 계기로 생각하려 해요.

-말씀처럼, 다양한 플랫폼이 밀려오는 시대죠.

=매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시네마가 주는 클래식한 힘과 스피릿이 있다고 믿어요. 영화관이라는 공간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이라는 게 있고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극장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그런 극장에 당신의 얼굴이 크게 걸리는 건 더욱더 행복한 일이겠군요.

=그럼요. 고민은 있어요. 나는 연기를 너무 사랑하고 평생 배우로 살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게 원한다고 지속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가 나를 써 줘야 하고, 대중의 사랑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누군가가 찾아주길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이야기를 먼저 찾아서 발전시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제작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정릉에서의 이제훈

이제훈은 불안을 숨기지 않는 사람, 그러나 불안 속에서 창작의 동력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지난해 그가 설립한 제작사 하드컷은 그런 행보의 일환인 듯했다.

=그런데 혼자 제작을 하려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더라고요. 제 아이덴티티는 또 배우잖아요. 제작이 주된 업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때는 특히 강했어요.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그런 사람들이 제 곁에 있었던 거죠.

-‘하드컷공동 설립자 양경모 감독과 김유경 PD말이군요.

=. 제 인생 첫 영화가 20대 초반에 찍은 <진실 리트머스>라는 단편이에요. 그 영화 연출이 양경모 감독, 프로듀서가 김유경 PD에요. 만날 때마다 우리 영화 계속하자하다가, “그러지 말고 우리 평생 같이하자가 된 거죠. 굉장히 오래된 사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동업이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선. 첫 영화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나리오 캐릭터 분석하듯, 이제훈이란 사람을 분석해 보면 어떨 것 같아요?

=음…이 새끼, 뭐지?” (일동 웃음)

-하하하. 종잡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까요?

=정의 내리기 참 어렵네요.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과의 관계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른 면모의 내가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건 저뿐 아니라, 사람이 보편적으로 지닌 속성이 아닐까 싶고요. 그럼에도 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상향시키는 사람이라는 것? 적어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저를 방어하지는 않아요. 걱정이 되더라도 한번 해 보자, 쪽입니다.

-가족 빼고 누가 가장 당신을 잘 이해해 주길 바랍니까.

=(살짝 당황하며) 아…그런 생각은 차마 못 해 봤네요. 오히려 반대였어요. 내가 더 해야 하는 일은 없는지, 내가 혹시 실수한 건 없는지, 뭔가 더 할 수 있는데 주변 분들이 주저해서 나에게 요구를 못 하는 건 아닌지, 그런 것들에 더 신경 써 왔던 것 같아요.

-이타적인 인간이시군요. 그럼에도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있겠죠?

=그럼요. 사랑받아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언제 스스로가 가장 밉고 가장 좋아요?

=그건 명확하게 있어요. 연기할 때 제가 가장 밉고, 연기할 때 제가 가장 좋습니다.

-당신 인생의 시네마적인 순간은 언제인가요.

=<파수꾼>으로 부산국제영화제 갔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관객이 꽉 들어선 상영관을 볼 때의 그 감흥이란. 완성본을 그때 처음 봤는데 정신을 못 차렸어요. 머리가 백지가 됐다가, 이게 현실인가 싶다가. 그때가 저에겐 시네마적인 순간입니다.

-그때의 당신과 <시그널>의 박해영(이제훈)-이재한(조진웅) 형사처럼 무전기로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겠습니까.

=어떤 순간에서든 흔들리지 말아라.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오겠지만, 여러 유혹이 있겠지만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해라.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십니까.

=시행착오는 조금 있었지만, 내가 꿈꿨었던 배우라는 이상향을 향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서는 저를 조금 칭찬해 주고 싶네요. 그런데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했을 때, 그건 또 모르겠어요. 무언가가 계속 바뀌고 있으니까요. ‘이게 맞는 건가?’ ‘저렇게 가지 않으면 나는 뒤처지는 사람인가?’라는 혼란과 갈등이 계속 오겠죠.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품는 건, 그 베이스가 영화이기 때문이에요. 부침이 있을 때마다 저를 다시 들끓게 해 준 건 결국 영화였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못하면 혼나야죠.

-묻지 않을 수 없군요. 당신에게 영화는 도대체 뭔가요?

=제 시작이자 끝이요.

돌이켜 보면, <파수꾼>은 이제훈에게 운명인 동시에 일종의 예언이었다. ‘파수꾼의 사전적 의미 중엔 어떤 일을 한눈팔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뜻도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제훈은 충무로의 파수꾼이다. 관심사도 특기도, 자신의 시작도 끝도 영화라고 말하는 일명 영화 바보인 이제훈은 영화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연기라는 깊고 넓은 우물을 집요하고 성실하게 길어 올리고 있으니.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