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게일>은 5월 7일(목) 올레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극장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그들은 성벽 안에서 산다. 성 밖 세상에는 전염병이 돌고 있고, 성내에는 '검시관'들이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빌미로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앗, 설마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본 매너인 요즘 시국을 편승한 영화인가! 이런 의구심에 찰 수도 있지만, 이게 웬걸. 검시관들이 통제하려는 것이 성 밖이 아니라, 성벽 안의 마법사들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 밝혀진다. 애비게일은 검시관에게 잡힌 아버지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성 밖의 세상으로 나갈 준비 중인 베일은 애비게일의 철없는 희망에 계획이 망가질까 노심초사한다. 이제 이해가 되려나. <애비게일>은 그저 그런 스릴러나 우화가 아니다. 러시아식 스팀펑크 다크 판타지다.
독창성 대신 익숙한 독특함을
<애비게일>은 독창적인 판타지가 아니다. 영화 속 설정마다 어떤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았는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성 안의 고립된 세계는 만화 <진격의 거인>을, 알게 모르게 통제된 사회는 <브이 포 벤데타>를, 이 성 안에 몰래 정착해있는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해리 포터>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현대보다 근대에 가까운 풍경에서 마법을 쓰는 장면은 런던 어딘가에 위치한 다이애건 앨리를 러시아에 옮겨온 느낌까지 들고, 도시라는 배경과 주인공이 여성이란 점에서 문득 <모털 엔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애비게일>은 유명한 작품에서 이런저런 설정을 따온 걸로 끝일까? 그렇지 않다. 주인공 애비게일이 마법사들의 존재를 알아채는 과정으로 영화 속 세계를 묘사하고, 갈등 또한 서서히 첨예해진다. 여기에 능력을 사용하는 도구 '엔진'이란 독자적인 요소를 첨가하며 <애비게일>은 각 레퍼런스를 유기적인 세계로 봉합한다. 판타지가 늘 독창적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대신 훌륭한 작품들의 잔상을 뒤섞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애비게일>의 방식은 이렇게 현명하다.
설명 대신 시각적 표현을
표면적인 스토리를 거둬내면 <애비게일>은 양립하는 가치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통제와 자유, 개성과 획일화, 집단과 개인. 이러한 대립은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자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이다. <애비게일>은 이 대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무채색과 총천연색, 현재와 플래시백 등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런 접근은 러시아 영화 CG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이 더욱 강조돼 판타지를 강화시키고, 후반부에서 복선을 회수해 전체적인 구조를 탄탄하게 한다.
폭약 없는 폭발(?)의 유별한 질감을
재미없는 설명이 좀 길었다. 앞의 내용을 알든 모르든 <애비게일>은 쏠쏠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마법을 쓰는 장면들은 의외로 깔끔하다. 특히 마법사 집단의 핵심 일원 베일이 등장하는 모든 액션 장면은 기억할 만하다. 그중 마법사 일행의 성문을 부수는 작전 장면은 폭약은 없지만 폭발이 난무하는, 여느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질감을 담는다.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과장된 캐릭터 디자인도 은근히 인상적이다.
적당히 통제된 사회와 각종 세력의 갈등, 익숙하듯 새로운 능력이 뒤섞인 판타지는 현대 러시아 영화, 더 나아가 러시아 문화의 방향성 중 하나. 2000년대 초반에 정식 발간한 <나이트 워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애비게일>은 이같은 흐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결말과 현란한 세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영화다. 이런 장르를 접해본 적 없다면 <애비게일>의 전개와 묘사 방식이 낯설어서, 반대로 이런 장르에 익숙하다면 <애비게일>만의 차별점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