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그곳은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다. 무작정 직진만 해도 하루종일 갈 수 있는 광활한 평원이 있는 그곳에는 21세기에도 카우보이 모자를 일상적으로 쓰고 다니는 남자들이 있다. 말 대신 자동차를 탈 뿐 예전의 카우보이처럼 늘 총을 가지고 다닌다.
서부 텍사스 시골 농장. 형제가 발코니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 잔에 따라 마시지 않는다. 여섯개로 포장된 병맥주가 그들의 주식처럼 보인다. 그들은 다음날 또 은행을 털 작정이다.
지평선을 바라보는 형제. 둘은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형 태너(벤 포스터)는 39년 중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는 이혼했다. 아이 양육비를 보내지 못할 만큼 가난하다. 형제에겐 돈이 필요하다. 특히 어머니가 빌린 2만5천 달러의 대출을 갚지 못해 저당 잡힌 가족 농장마저 잃을지 모른다. 비쩍 마른 소가 살아가던 농장에선 석유가 발견됐다. 착실하게 살아온 토비는 개망나니로 살아온 태너에게 도움을 청한다. ‘농장도 지키고 아이들도 만나고 싶다. 전염병 같은 가난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싫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은행을 털게 됐다.
형제를 쫓는 두 명의 레인저. 한 명은 은퇴를 앞둔 늙은 백인 마커스(제프 브리지스)다. 다른 한명은 좀 덜 늙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멕시코인의 피를 물려 받은 알베르토(길 버밍햄)다. 마커스는 쉬지 않고 알베르토에게 인종차별적 농담을 건넨다. 보수적인 마초로, 전형적인 텍사스 남자인 마커스는 “내가 죽으면 그 농담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알베르토에게 말한다. 인종차별주의자 마커스에게는 가족도 없어 보인다. 오직 알베르토만이 그의 곁에 있다. 목사의 설교 방송을 보던 알베르토는 “(마커스가) 당장 내일 죽었으면 좋겠다”고 받아친다. 마커스는 “그 농담은 괜찮았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결코 웃는 법이 없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의심할 여지 없는 서부극이다. 범죄자는 은행을 털고, 보안관(레인저)은 범죄자를 쫓는다. 단, 19세기 개척기가 배경이 아니라 21세기 텍사스가 배경이다. 달라진 시대가 범죄자를 순수한 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레인저의 영웅담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곳에는 더 큰 악이 존재한다. 자본이다.
어머니가 빌린 대출금 때문에 한달에 5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석유가 매장된 농장을 은행에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은행은 그 농장에 석유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았을 것이다. 형제는 어머니에게 대출을 해준 은행을 노린다. 밀린 대출금과 세금을 낼 돈만 마련하면 된다. 다 쓰러져가는 텍사스 시골 도시의 은행에는 CCTV가 없다. 형제는 FBI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큼의 돈만 은행에서 가져갔다.
형제를 뒤쫓는 늙은 레인저들은 형제가 노릴 만한 시골 은행 앞에 죽치고 않는다. 하루종일 기다려도 형제는 오지 않았다. ‘인디언’이라고 놀림을 받던 알베르토는 말한다. “15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우리 조상들 땅이었어요. 지금 보이는 모든 게. 어제 본 모든 게. 저들(백인)의 증조부들이 빼앗기 전까진. 이젠 후손 놈들이 착취하고 있죠. 이번엔 군대가 아니라 (은행을 가리키며) 저 개자식들 손으로.” 이 영화의 제목은 처음에 ‘코만체리아’(Comancheria, 코만치의 땅)였다.
형제를 돕는 변호사가 있다. 태너가 왜 우리를 돕느냐고 물었다. 변호사는 대답한다. “고작 2만5천 달러 때문에 땅을 꿀꺽하려는 사정을 듣고 치가 떨려서요.” 은행의 돈을 털어서 그 돈으로 은행 빚을 갚는다? 변호사는 형제의 계획에 동의했다. “텍사스 사내라면 그렇게 되갚아줘야한다”고 말한다. 변호사는 토비에게 충고한다. 농장의 저당을 풀고 돈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싶다면, 농장을 당신들이 털었던 은행에 신탁하라고.
21세기에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총을 가지고 다니고, 말 대신 픽업 트럭을 타는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로스트 인 더스트>는 묵직한 하이스트 무비이자 진화한 서부극이다. 이 진화는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 덕분에 가능했다. 그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각본을 썼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쉐리던이 3부작으로 구상 중인 범죄 스릴러 연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처럼 쉐리던은 공간의 이면을 포착해냈다. <퍼펙트 센스> <할람 포> <스타드 업>을 연출한 감독 데이빗 맥킨지 역시 <로스트 인 더스트>의 진화에 큰 지분이 있다. 그는 쓸쓸한 컨트리송을 배경으로 광할한 대지와 석양이 지는 지평선의 풍경을 석유펌프와 대출 입간판이 보이는 풍경과 나란히 보여준다. 이 미장센으로 <로스트 인 더스트>는 서부극의 본질과 맞닿을 수 있다. 크리스 파인, 벤 포스터, 길 버밍햄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제프 브리지스는 텍사스의 초라하고 외로운 늙은 레인저를 완벽히 소화했다. 텍사스 배경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토미 리 존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총과 자본주의로 태어난 미국의 현재를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로스트 인 더스트>는 쓸쓸하고 황량하고 비극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영화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