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뉴스에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21세 가장 섹시한 영화 4위”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올해 개봉한 <아가씨>가 해외에서 주목 받는 점이 이색적이었습니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자연스레 궁금해집니다. ‘그럼 1위는 뭔데?’ 기사가 인용한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www.tasteofcinema.com)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는 영화와 관련된 각종 리스트를 선정해서 소개하는 곳입니다. 인용된 글의 제목은 “The 15 Best Sensual Movies of The 21st Century”입니다. ‘Sensual’이라는 단어에 ‘섹시한’의 뜻도 있지만 ‘관능적인’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21세기의 가장 관능적인 영화 15편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순위에 동의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에디터의 개인적인 의견도 조금 덧붙였습니다.
15위 <색, 계> 2007
이안 감독의 <색, 계>가 15위입니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의 필자는 <색, 계>를 ‘에로틱 첩보 드라마’라고 표현했습니다. 생각보다 순위가 낮은 것 같습니다. <색, 계>는 11월9일 국내에서 재개봉합니다.
14위 <모피를 입은 비너스> 2013
거장 로만 폴란스키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폴란스키 감독은 폭력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영화로 유명합니다. 그런 그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다시 영화 옮기는 건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원작을 쓴 작가의 이름을 따 ‘마조히즘’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대략 어떤 영화인지 짐작이 가시죠?
13위 <이 투 마마> 2001
<이 투 마마>는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소공녀>(1995), <위대한 유산>(1998)이 있긴 합니다. <이 투 마마>는 머릿속에 섹스만 가득한 멕시코의 10대 둘과 20대 초반의 유부녀가 떠난 여행을 담은 영화입니다. 섹스를 둘러싼 성장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12위 <아이 엠 러브> 2011
이탈리아의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아이 엠 러브>가 12위입니다. 엄격한 귀족 가문의 며느리 엠마(틸다 스윈튼)가 친구 아들인 셰프 안토니오(에도아드 가브리엘리니)와 사랑에 빠지는 일탈을 그린 영화입니다. <아이 엠 러브>는 카메라워크, 음악, 미술, 의상, 로케이션 등이 아름답고 관능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엠마가 안토니오의 요리를 먹는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새우 먹는 게 그렇게 야할 수 있다니!
11위 <클로저> 2004
<졸업>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연출한 <클로저>가 11위입니다. 첫눈에 반한 사랑에 관한 네 사람의 복잡한 관계를 다룬 영화 <클로저>는 제 기억이 맞다면 그렇게 ‘야한’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순위에 오른 걸 보면 단순히 노출이나 정사신이 이 리스트의 선정 기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10위 <매치포인트> 2005
우디 앨런 감독의 <매치포인트>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와 스칼렛 요한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입니다. 두 사람은 당시 최고의 ‘섹시 배우’들이었으니까요. 네이버 영화에서 <매치 포인트>를 검색하다가 인상적인 네티즌 리뷰를 봤습니다. 글의 제목은 “[스포일러 포함] 아빠랑 보다가 꺼버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 아빠랑 보지 마세요. 혹시 테니스 영화인 줄 알고 봤다면, <윔블던> 추천드립니다.
9위 <블랙 스완> 2011
<블랙 스완>이 이 리스트에 있는 건 좀 뜻밖입니다. <블랙 스완>이 섹슈얼리티와 관계가 있을까요. 예술과 광기, 자아분열에 관한 영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발레단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를 둘러싼 릴리(밀라 쿠니스)와 니나(나탈리 포트만)의 관계, 또 니나와 니나의 엄마(바바라 허쉬)의 관계를 잘 들여다 보면 성적 욕망이라는 주제가 보입니다.
8위 <프리 폴> 2013
<프리 폴>은 스테판 라캔트 감독의 독일 영화입니다. 동성애를 다룹니다. 독일판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표현도 가능해 보입니다. 이 리스트를 작성한 필자는 <프리 폴>이 <브로크백 마운틴>보다 더 낫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프리 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선뜻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브로크백 마운틴>이 좋은 영화라는 뜻입니다.
7위 <몽상가들> 200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연출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가 그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몽상가들> 역시 외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68혁명 당시 파리가 배경인 <몽상가들>에는 성기 노출 장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야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성기 노출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영화가 또 있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출여한 <셰임>, 송강호가 출연한 <박쥐>입니다.
6위 <세크리터리> 2002
<세크리터리>는 사도마조히즘에 관한 영화입니다. 엄청 야한 장면은 없습니다. 그들의 욕망이 야하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제임스 스페이더는 이 계통 영화에 이미 출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세크리터리>보다 더 파격적인 영화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와 <크래쉬>(1996)가 대표적입니다. <세크리터리>은 매기 질렌할을 발견한 영화입니다. 제이크 질렌할의 누나인 건 다 아시죠?
5위 <노트 온 스캔들> 2006
국내 개봉하지 않은 <노트 온 스캔들>은 주디 덴치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욕망은 서로 엇갈립니다. 은퇴를 앞둔 레즈비언 바바라(주디 덴치)는 자유로운 성격의 미술 교사 쉬바(케이트 블란쳇)에게 집착합니다. 쉬바는 어린 제자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이 리스트의 중요한 판단 기준은 금지된 사랑이 아닐까 싶네요. <노트 온 스캔들>은 네이버 N스토어에서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이 출연한 <캐롤>이 순위에 들어가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4위 <아가씨> 2016
이미 언급했듯이 <아가씨>가 4위입니다. 레즈비언 영화이면서 파격적인 정사신이 있는 영화여서 높은 순위에 랭크된 듯합니다. 1위 영화를 보면 납득이 갈 만한 순위입니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의 필자는 숙희와 히데코의 관계를 엄마(숙희)와 딸(히데코)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미술이나 의상에 관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또, 히데코가 책을 읽어주는 낭독회에 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3위 <레이디 채털리> 2006
파스칼 레랑 감독의 <레이디 채털리>가 3위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D.H 로렌스의 고전 <채럴리 부인의 사랑>이 원작입니다. 파스칼 레랑 감독은 <죽음과의 작은 협상>으로 1994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 감독에게 주는 상)을 수상했던 경력이 있는 여성 감독입니다. <레이디 채털리>는 레랑 감독이 오랜 공백을 깨고 만든 영화로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욕망을 다룬 영화입니다.
2위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2007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국내에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가 2위라는 건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의 말미에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관능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 리스트를 작성한 필자는 “냄새를 시각적으로 잘 구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1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가장 따듯한 색, 블루>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엠마(레아 세이두)와 아델(아델 에그자르로풀로스)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가 1위를 차지한 것에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이제 고작 16년 정도 지났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21세기의 말미 혹은 22세기에도 이런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순위에 올라갈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찾아본 ‘21세기 가장 관능적인 영화 15편’입니다.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라는 특정 사이트에 기고하는 필자가 선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만큼 크게 의미를 둘 만한 리스트는 아닌 듯합니다. 의미를 찾자면 이 리스트에 올라있는 영화들은 모두 훌륭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관심 있는 영화가 있으면 한번쯤 찾아봐도 좋겠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