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의 주인공이야 당연히 영화지만, 그래도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을 빼놓으면 섭하다.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 또한 마찬가지.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영화인들의 참석은 전보다 적은 시기지만, 작품으로 영화제를 빛낸 영화인들의 면모는 올해도 만만치 않다. 이번 BIFAN에서 주목하면 좋을 영화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음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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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앤 퍼스트 맨>의 요한 요한슨
너무 빨리 떠났다. 2019년 2월 영화음악 작곡가 요한 요한슨의 타계 소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그는 트렌트 레즈너 등과 함께 동시대 영화음악을 끌고 갈 기수였다. 감성 위주의 멜로디 대신 파편화된 사운드를 응집시켜 새로운 감각을 창출한 그의 스타일은 스스로의 죽음조차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제목처럼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출한 영화 <라스트 앤 퍼스트 맨>이 이번 BIFAN에서 상영된다. 역시 평범한 극영화는 아니고, 다큐멘터리에 내레이션을 더해 특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우화에 가깝다. 올라프 스태플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틸다 스윈튼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요한 요한슨처럼 엠비언트를 사용하는 야이르 엘라자르 글롯만이 공동 작곡을 맡아 역대급 OST를 구성했다.
부천의 '자비에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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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텔라>의 백승기
칸에는 자비에 돌란이, 아카데미엔 크리스토퍼 놀란이 있다면 부천에는 '자비에 놀란'이 있다. <인천스텔라>를 연출한 백승기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작 <인천스텔라>가 BIFAN 한국 경쟁부문으로 선정됐다고 알리며 '부천의 자비에 놀란 백승기 감독'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코미디 장인다운 유려한 언어유희. 과연 백승기 감독이다. 백승기 감독의 데뷔작 <숫호구>부터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운> 모두 BIFAN에서 공개했다. 이번 <인천스텔라>까지 경쟁 부문에 오르면서 그의 전작이 BIFAN의 선택을 받았다. 부천의 총아, 부천의 자비에 놀란이란 별명이 100% 농담은 아닌 셈. <인천스텔라>는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인터스텔라>의 영향을 받았다. 우주 영화이며, 그 영화처럼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긴 영화다. ('캠'코더로 '급'하게 찍는) C급 영화의 창시자 백승기 감독이 이번 BIFAN에서 A급 성적을 거둘지 궁금해진다.
이 화려하고도 강력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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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리부트: 모교>의 김서형, 김현수, 최리
영화제 개막작의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번 24회 BIFAN은 여러모로 완벽한 개막작을 선택했다.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는 1998년 <여고괴담>부터 2009년 <여고괴담 5>까지 이어진 <여고괴담>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이 될 예정이다. 매 신작마다 '유망주의 등용문'으로 불린 것처럼 이번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 또한 전도유망한 여성 배우들이 포진했다. <굿바이 싱글>과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으로 이미 연기력을 입증한 김현수와 <귀향>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 드라마 <도깨비>,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등에서 활약한 최리가 여고생 하영과 소연을 연기한다. <SKY 캐슬>과 <아무도 모른다>로 드라마 2연속 안타를 날린 김서형이 교감 은희 역을 맡아 영화의 진정한 견인차 역할을 한다.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가 한국 공포영화의 부활을 알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오 레아, 맥키, 도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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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머시!>의 레아 세이두
<싱크로닉>의 앤소니 맥키, 제이미 도넌
장르 영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BIFAN 특성상, 슈퍼스타급 해외 배우들의 신작은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올해는 이 세 배우의 신작을 BIFAN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먼저 <오 머시!>라는 범죄 영화에 출연한 레아 세이두. 레아 세이두는 할리우드와 프랑스, 예술영화와 블록버스터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작품 소화력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 <오 머시!>에서 노부인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클로디 역으로 출연한다.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루베에서 미혼모로 인생을 이어가는 클로디의 심리적 변화를 열정적으로 연기했다.
'팔콘', 이제는 '캡틴 아메리카'라고 해야 하나? 앤소니 매키는 <싱크로닉>으로 BIFAN 관객들을 만난다. 아, 그는 혼자 오지 않았다.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제이미 도넌이 그의 파트너로 함께 한다. <싱크로닉>은 도시에 갑자기 퍼진 치명적인 약물 '싱크로닉'의 진상을 쫓는 두 구급요원의 이야기. 일종의 버디 스릴러 무비지만, BIFAN에 따르면 SF와 히어로 코드가 섞여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재밌는 걸 다 섞은 훌륭한 퓨전 영화라고.
국민 배우가 넘본 감독의 왕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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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의 왕>의 울리히 톰센
덴마크 배우 울리히 톰센은 BIFAN과 인연이 깊다. 2006년 <아담스 애플>로 BIFAN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 그 인연 때문인지 연출작 <소시지의 왕> 아시아 최초 공개 현장을 BIFAN으로 삼았다. <셀레브레이션>을 시작으로 <마사의 부엌>, <킹덤 오브 헤븐>, <인터내셔널>, <인 어 베러 월드>, <센츄리온>, <더 씽> 등 영화계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덴마크 국민 배우' 울리히 톰센은 2016년 <인 엠브리오>의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아 감독 명함까지 달았다. 이번 신작 <소시지의 왕>은 다소 묵직한 멜로였던 전편과 달리 완벽한 코미디 영화. 몰락한 관광도시를 배경으로 소시지 레스토랑을 사업을 시작한 독일인 에드워드와 전과자 마크, 이들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카바레의 주인장 지미의 대립을 그린다. 듣기엔 삭막한 범죄 영화를 연상시키지만 지나치게 전원적인 풍경과 졸렬하기까지 한 인물들의 행동이 미묘하게 엇나가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당신을 흔들 메탈의 여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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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투의 여전사> Ms. 45
멤버 전원이 여성인 밴드 Ms. 45. 그러나 패기는 남다르다. 곡 장르부터 메탈인 건 둘째치고, 남성 관객이 무대에 올라와 '깽판'치자 지지 않고 주먹을 날린다. 이처럼 강렬한, 강력한 밴드라니, 당장 라이브 영상이라도 찾아보고 싶어진다…만 아쉽게도 Ms. 45는 영화 <혈투의 여전사>에만 존재하는 밴드다. 그러나 원래 가상의 존재가 더 매력적인 건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의 스파이널 탭이 증명하지 않았던가. 특히 <혈투의 여전사> 속 고생길을 보면 Ms. 45를 더 응원하고 싶어질 것이다. 웬 사이코 광신도 집단에게 납치돼 강제로 신체 개조 강화 수술을 받고 결투장에 내던져지기 때문. 디스토피아적 풍경에서 Ms. 45는 검투사가 돼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비록 <혈투의 여전사>에서만 만날 수 있지만 미쉘 아르기리스, 에밀리 알라탈로, 키리아나 스탠튼, 첼시 무허헤드 네 여성의 카리스마 뿜뿜하는 밴드 Ms. 45를 올해 BIFAN의 슈퍼스타로 뽑아본다. 앗, 참고로 Ms. 45는 강간당한 여성의 복수극을 그린 1981년 영화 <복수의 립스틱>의 원제다. 이 영화의 기원을 둔 밴드라니, 이들의 이야기도 복수로 완결되지 않을까.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