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거의 모두 청소년관람불가인 관계로 이 포스팅에서 19금 장면을 언급합니다.
“왜? 내 말은 믿지 않는 거죠?”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주인공 민정(이유영)은 애인 영수(김주혁)와 다투다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영수는 후회하고 민정을 찾아다니고 혼자 술을 마신다. 영수가 찾지 못한 민정은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 민정은 남자들에게 말한다. “저는요, 한번도 괜찮은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요. 남자들은 다 늑대 아니면 애기예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찌질한’ 남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로 영화감독이거나 평론가이거나 교수인 지식인들이다. 민정에게 저 이야기를 듣는 지식인 남자들, 재영(권해효)과 상원(유준상)도 늑대 아니면 애기일 확률이 높다. 이 포스팅은 술자리에서 “예뻐요. 정말 예뻐요”를 연신 입에 달고 있는 홍상수의 ‘찌질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이 만든 18편의 장편영화 가운데 눈에 띄는 ‘찌질함’을 장착한 5명을 소개한다.
5위 <옥희의 영화> 남진구(이선균)
이선균이 연기한 남진구는 4편의 단편(주문을 외울 날/키스왕/폭설 후/옥희의 영화)이 연결되는 <옥희의 영화>에서 영화감독 겸 교수로 등장했다가 나중에 대학생이 된다. 홍상수 영화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진짜 그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학생 진구는 교정에서 혼자 팩소주에 빨대를 꽂아서 쪽쪽 빨아먹는다. 진구를 본 학생들은 “또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옥희(정유미)에게 끈질지게 구애한다. 결국 두 사람은 키스를 하게 된다. 진구는 옥희의 집 앞에서 그녀를 밤새 기다린다. 두 사람은 섹스를 한다. 옥희는 “난 네가 착해서 좋다”고 말한다. 진구는 ”착할게”라고 대답한다. 진구는 옥희가 송교수(문성근)와 사귀거나 사귄 적이 있다고 의심한다.
진구와 옥희의 대화
진구/ “널 너무 그냥 꽉 안고 싶어.”
옥희/ “아! 아파. 이 또라이.”
진구/ “너, 너무 예뻐”
옥희 “니가 또라이라서 내가 예뻐 보이는 거야!”
4위 <오! 수정> 재훈(정보석)
<옥희의 영화>의 진구는 <오! 수정>의 재훈과 닮았다. 두 영화에서 문성근은 진구와 재훈보다 나이든 남자로 출연한다. 그는 진구와 재훈이 좋아하는 여자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오! 수정>에서 정보석이 연기하는 재훈은 선배 영수(문성근)가 소개해준 수정(이은주)에게 반한다. 수정도 재훈에게 “술 마실 때만 애인 해드릴까요?”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럴수록 재훈은 수정이 영수(문성근)와 깊은 관계임을 의심하게 된다. 이때부터 재훈은 수정에게 집착하게 된다. 재훈은 수정에게 말한다. “내가 결혼을 마음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수정이 대답한다. “그렇게 힘든데 뭣하러 만나요, 우리 그만 만나요.”
재훈의 명대사
(수정이 처녀임을 알고) “정말이야? 정말이야?”
3위 <해변의 여인> 김중래(김승우)
김승우가 연기하는 중래는 영화감독이다. 시나리오를 핑계로 후배 창욱(김태우)과 신두리 해변으로 여행을 계획한다. 창욱은 애인이라면서 독일에서 유학한 음악가 문숙(고현정)을 데려온다. 문숙은 술자리에서 “(잠을 같이) 자야, 애인”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직 창욱과는 자지 않았다. 중래는 문숙을 꼬드겨 하룻밤을 보낸다. 얼마 뒤 중래는 다시 신두리를 찾는다. 중래는 선희(송선미)를 만난다. 이번에도 중래는 선희의 친구를 따돌리고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마침 문숙이 다시 신두리로 돌아왔다가 선회와 함께 있는 중래를 발견한다. 중래는 자신의 말에 따르면 “나쁜 이미지와 싸우는 중”이다.
중래의 명대사
(문숙이 외국 남자와 섹스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너 너무 너무 좋아하는데. 왜 외국 남자랑 잤니? 바보야. 너무 힘든 이미지잖아.”
(문숙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좀더 클리어해지면 연락할게요.”
2위 <생활의 발견> 경수(김상경)
경수(김상경)는 연극계에서 제법 알려진 배우다.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흥행은 시원치 않았다. 그는 부득부득 우겨 런닝 개런티 100만원을 받아내 선배가 있는 춘천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경수는 무용가 명숙(예지원)을 만난다. 명숙과 섹스를 한 경수는 선배가 좋아한 여자가 명숙임을 알게 된다. 경수는 충동적으로 경주로 향한다. 그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선영(추상미)을 무작정 쫓아간다. 선영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경수는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깨끗한 여관으로 가달라”고 한다. 옆에 탄 선영은 “코모도 호텔로 가주세요”라고 말한다. 선영은 경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한다. 선영을 다시 만나고 싶어한 경수는 그녀의 집 앞에서 얼쩡거린다. 그러다 선영의 남편을 딱 마주치고 만다.
경수의 명대사
(선영의 남편과 마주치자) “Can you speak English?”
1위 <극장전> 김동수(또 김상경)
감독 데뷔를 준비중인 동수는 영화 속 영화 <극장전>을 보고 나온다. 선배가 만든 이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는 그는 극장 앞에서 영화에 출연한 배우 영실(엄지원)을 만난다. 동수는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믿는다. 그는 영실에게 연락처를 묻고, 이상형이라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하루종일 그녀를 따라다닌다. 끝내 두 사람은 함께 여관에 들어간다. 경수는 홍상수의 남자 가운데 가장 찌질한 캐릭터다. 더불어 김상경은 홍상수의 찌질한 남자를 가장 찌질하게 연기했다.
경수의 명대사
(영실이 여관에서 먼저 나가려고 하자) “저 미안한데요, 그럼 뭐 놓고 가시죠.”
동수/ (술에 취해 소주잔을 씹어서 깨트리며) “미안합니다, 사랑해요.”
영실/ “정말로요? 사랑하긴 뭘 사랑합니까, 당신이.”
(선배가 입원한 병원 앞)
동수/ “피곤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실래요?”
영실/ “저 너무 피곤해요, 한잠도 못 잤어요. 자긴 이제 재미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