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남자 주인공이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어 30일 정도 살 수 있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은 후 살기 위하여 보건당국과 제약회사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전기기술자로 술을 즐기고 로데오 경기 도박도 하며 때로는 불건전한 생활을 하곤 합니다. 유난히 삐쩍 마른 몸에 집에서도 갑자기 픽 쓰러지죠. 어느 날 작업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론은 기계의 전원을 끄다가 기계의 불꽃이 눈에 튀면서 병원에 실려가게 돼요. 기절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 론은 의사 세바드(데니스 오헤어)와 이브(제니퍼 가너)로부터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추가 혈액검사를 했더니 론이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과 앞으로 길어야 30일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게 됩니다.

처음에 론은 자신이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에이즈 감염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는데, 에이즈 감염은 혈관을 통한 약물주입, 콘돔 미착용 관계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읽고 자신이 관계했던 상대방 중에 팔에 주사바늘자국(추측컨대 약물주입자국)이 많았던 여성이 떠오르면서 비로소 자신이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절망합니다. 즉, 론은 상대가 HIV바이러스에 감염된 줄 모르고 관계를 맺었다가 감염이 된 것이죠. 영화처럼 관계를 통해 감염이 가능한 HIV바이러스나 기타 전염성 질환을 숨긴 채 상대에게 전염시키면 처벌을 받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형사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HIV바이러스나 성병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숨긴채 관계를 맺고 상대방이 성병 등에 걸렸다면 상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요. 물론 상해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입증이 쉽지 않은데, 상대방한테 성병이 있었고 관계 전에 피해자는 성병이 없었으며 관계를 통해서 피해자가 성병에 감염됐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합니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파트너가 있었다면 더욱 입증이 어렵겠죠. 판례도 성병에 걸린 사실을 알면서도 관계를 통해 상대 여성한테 성병을 전염시킨 경우 상해죄를 인정한 사례가 있어요. 그리고 치료가 가능한 성병을 전염시켰다면 상해죄(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법에 단기가 따로 없으면 징역형의 단기는 1월 이상입니다)이나, 영화처럼 HIV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면 불치나 난치의 질병으로 보아 중상해죄로 가중처벌도 가능해요(중상해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단기가 1년 이상이고 벌금형이 없기 때문에 상해죄보다 처벌이 무겁습니다).

만약, 자신도 성병 등에 감염된 사실을 몰랐다면 처벌될까요. 이 경우는 먼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하는데, 만약 내가 성병 등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상대방한테 감염될 줄 모르고 관계를 했다면 과실치상죄(500만 원 이하의 벌금, 즉 징역형이 없으므로 고의가 있는 상해죄보다 처벌이 가볍습니다)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감염성 여부만 몰랐던 경우에는 처벌이 된다는데 크게 이견이 없어요. 그러나 나한테 성병 등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과실을 인정하기 어려워 처벌이 어렵다고 볼 수 있어요. 이 경우에도 과실치상죄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이 병에 걸린 사실조차 몰랐다면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겠죠. 현실에서는 증상이 전혀 없어서 본인이 어떠한 증상도 인지하지 못하고 성관계를 한 것이 아니라면, 과실이 전혀 없다고 인정받는 건 어려울 거예요. 영화에서 론한테 관계를 통해 HIV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여성의 팔에 약물을 투입한 주사바늘자국이 많았던 것을 보면, 그 여성은 자신이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아직 검사를 통해 진단받지 않았어도 감염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어느 경우든 현실에서는 상해죄 또는 과실치상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고 무죄는 힘들다고 보여요. 적어도 그 여성은 론한테 관계 전에 HIV바이러스 감염사실을 알리거나 론과 전염을 막을 기구를 사용했어야 형사처벌을 면할 여지가 있는 것이죠.

론의 직업은 전기기술자로 근로형태가 불분명하지만, 영화 초반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면 임금이 5배라면서 같이 가자고 동료끼리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론은 어느 한 사업주에 고용된 근로자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법(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의하면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HIV바이러스 검진결과서를 요구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외국인에 대해서도 동일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거에 외국인 원어민 교사를 채용할 때 에이즈 검진결과를 받아 왔는데, 뉴질랜드 국적의 외국인 원어민 교사가 2009년경 외국인에 대하여 에이즈 검진결과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평등권, 근로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면서 검진결과 제출을 거부한 사례가 있어요. 결국 그 뉴질랜드 원어민 교사는 검진결과 제출 거부 때문에 계약갱신이 거절되어 대한민국을 상대로 위자료청구소송을 했는데, 법원은 에이즈 검진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에이즈 검진결과 제출요구는 위법하다고 보았고 대한민국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현재는 사업주가 외국인을 불문하고 근로자한테 에이즈 검진결과를 요구할 수 없어요. 그러나 현실은 취업 후 건강검진을 받을 때 HIV항목이 포함되어 있고 HIV검사시 본인 동의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HIV검진결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사업주한테 일괄통보되는 실정입니다. 참고로 우리 법은 정기검진이 필요한 업종(이를테면 유흥업소 접객원, 안마시술소 직원 등)은 HIV바이러스 감염인의 취업을 제한하고 있는데, 만약 론이 전기기술자가 아니라 정기검진이 필요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다면 감염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어요.

영화에서 론은 단순한 성병이 아닌 HIV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데, 몰래 성관계시 처벌여부는 동일한 법리가 적용되지만 일반 성병 등의 감염병과 HIV바이러스는 적용법률이 다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론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운영하고 의사 이브와 포옹을 하며 변호사와 함께 소송도 진행하는 등 일상 생활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데, 우리 법도 HIV감염인에 대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특별한 제한을 하지 않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