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왓 더 ㅍ...'
영화 제목이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이게 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불펌 같은 제목인가. 그런데 당신이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라면 알아들을 것이다. 의미없어 보이는 저 단어의 알파벳 첫 글자가 힌트라는 것을.
군대에서는 무선 통신 시에 A, B, C, D 등의 알파벳을 잘못 알아듣는 일이 없도록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 등의 포네틱 코드로 읽는다.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은 알파벳 'W', 'T', 'F'을 지칭하는 뜻없이 사용되는 단어다. 제목의 의미가 이제 이해되시는가? (그러니까 'WTF'을 잘못 알아듣는 일이 없도록 지은...)
'WTF', 비명 내지르는 절규를 뜻하는 듯한 특이한 제목의 이 영화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까.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이하 <위탱폭>)은 아프가니스탄 전장터로 파견나간 방송국 PD의 종군기자 도전기다. (벌써부터 하품하는 소리가 들려오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깨닫게 될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제목의 코믹한 센스처럼 직장 여성의 도전기를 진지하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는 영화다. 혹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블루스틸>이나 <제로 다크 서티>처럼 액션이나 스릴러 장르로 접근하는 영화도 아니다.
40대 싱글 여성 직장인이기도 한 주인공 '킴'은 자기 삶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줄 종군기자 파견을 결정한다. 때문에 그녀는 영화 내내 목숨 위협을 받는 파병 상황에서 남자 군인들에 둘러싸여 여성으로서의 존엄도 지켜야 하고 또 직장인으로서 성과인 특종도 잡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주인공은 현장에서 어떤 고충을 겪게 될까.
이러려고 종군기자 됐나 자괴감 들어...
모래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취재수첩과 볼펜을 쥐고 있는 주인공 킴(티나 페이)의 포스터 속 모습이 영화의 대표 이미지. 본토에서 조용하게 취재하고 방송 만들고 살던 여성 PD가 미군 파병 상황에 대해서 무얼 얼마나 알고 있었겠는가. 모래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상황에서 머리카락이 취재에 방해될 정도로 흩날릴 줄 누가 알았겠나.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는 무슨 옷을 입어야 하며 무슨 음식을 먹게 될지, 숙소에 샤워실은 있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당연하게도, 전혀 상상도 못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 남자들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야 하는지도 전혀 감이 없는 상황.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먼저 파견나가 있던 동료 기자 타냐(마고 로비)가 여러 가지 현장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이곳에 온 여기자들은 저절로 동료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진다는 것을.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 킴의 표정은 대략 20여 분 뒤부터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그녀의 현장 적응기, 그리고 특종 쥐어잡기, 맘에 드는 동료 사로잡기 등이 시작된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이제 킴과 타냐는 동료로서 경쟁자로서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종군기자 베이스 캠프에서는 유일한 두 명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둘러싼 모두가 남자인 상황에서 킴은 취재를 가도 인터뷰를 해도 남자 동료와 남자 군인과 남자 반정부단체 인사와 친해져야 한다. 당연히 직장 내 성차별 이슈는 사방에서 적군의 총알처럼 쏟아지고 킴은 그것을 모두 견뎌내야 한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포기할 수 없는 기자 정신. 그리고 다시 본사로 송환되면 내 책상이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특종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뛰는 직업 의식인지, 밥그릇을 위한 생존 싸움인지 종종 헷갈리기도 하는,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때론 구분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킴의 에피소드는 <미생>의 한석율도 울고 돌아갈 무시무시한 '현장' 그 자체다. 그것이 종군 기자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성공, 그것이 무엇이냐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사랑하라. 아프가니스탄 파견 근무 지원 당시에는 3개월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점점 취재력도 탄력을 받고 현지 적응도 되는 상황에서 킴은 쉽게 자리를 일어서지 못한다. 이대로 돌아가면 본사 책상이 위태로운데 성과를 더 내고 돌아가면 승진을 내다볼 수 있다면? 당연히 직장에서의 성공 여부가 어떤 선택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물론 남자친구는 그 사이에 바람을 필지도 모르고, 몸이 멀어져 있으니 마음도 멀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킴의 주변에는 괜찮은 남자도 많다.
그렇다고 남자 문제에 한눈 팔고 있다가는 언제 어디에서 누가 배신할지 모른다. <위탱폭>이 보여주려 하는 건 일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인물이 아니다. 킴과 타냐가 취재하는 곳은 진짜 전쟁터다. 그리고 직장 역시 온갖 암투가 난무하는 다른 의미에서의 전쟁터다. 내가 승진하기 위해서는,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 킴과 타냐는 그렇게 서로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군인들은 본국으로 돌아와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살게 된다. 그곳에서의 삶이 어찌 됐든 참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위탱폭>은 킴의 특종이, 그 이면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의 노력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묻는다. 세상에 홀로 우뚝 서기 위한 직장인의 노력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라도.
<위탱폭>은 '40대 싱글 여성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종군 기자의 실화를 빌려 이야기한다. (킴 베이커 기자의 회고록 <The Taliban Shuffle: Strange Days in Afghanistan and Pakistan>이 영화의 원작이다.) 무엇이 어렵다거나 쉽다거나 가치 판단을 하려 드는 영화는 아니지만 스크린에서 씩씩하게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여성의 활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티나 페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없었다면 표현하지 못했을 매력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