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점심시간을 떠올려보면 항상 도시락을 뺏어 먹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젓가락이나 포크 하나만 들고 어슬렁거리던 녀석들! 특히 남자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자주 보였던 터라 여자아이들은 도시락을 방어하기에 바빴죠. 요즘은 급식 세대이니 이런 도시락의 추억은 사라졌을까요?
하지만 이 도시락 문화가 아직까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인도. 인도에서는 간혹 도시락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요, 이번에 소개하려는 영화는 2012년에 개봉한 <스탠리의 도시락>입니다. 인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 친구들이 도시락으로 인해 겪는 갈등과 우정을 웃음과 감동으로 잘 조리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스탠리는 어떤 사연 때문인지 늘 도시락을 싸오지 못 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스탠리와 함께 나눠 먹습니다. 이 모습을 본 베르마(아몰 굽트 분) 선생님은 스탠리와 아이들을 야단칩니다. 왜냐고요? 그건 자신이 뺏어 먹을 도시락을 스탠리가 먹고 있기 때문이죠. 짓궂은 동급생도 아닌 다 큰 어른(선생님)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호시탐탐 노린다니 믿어지세요? 이 선생님으로 말하자면 수업시간에 누군가의 도시락 뚜껑이 열리면 그 메뉴까지 단번에 알아맞히는 비상한 코를 가진 식탐 대마왕입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아이들보다 점심시간을 더 기다리기도 하죠.
어느 날 그는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위해 싸온 수많은 도시락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4단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발견합니다. 푸짐한 메뉴들로 채워졌을 거란 기대를 갖게 만드는 4단 도시락을 맛보기 위해 베르마 선생님은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부리나케 교실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교실은 텅 비어있고 아이들은 도시락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아이들은 스텐리가 도시락을 먹을 수 없게 방해하는 선생님이 얄미워서 모두 숨어 버린 겁니다. 이제부터 반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며 계단 밑으로, 운동장으로, 원형극장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점심을 먹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베르마는 땀을 흘리며 아이들을 찾아다닙니다.
단순한 도시락 이야기라 생각했던 이 영화는 후반부에서 보다 더 묵직한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말솜씨도 좋고, 친구들 사이에서 늘 인기가 많은 스탠리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감당하기 힘든 고된 현실과 마주합니다. 이 현실은 스탠리의 얼굴에 멍 자국을 남기고 점심시간을 물배로 채우게 만들기도 합니다.
영화는 스탠리가 처한 상황을 통해 인도 사회에 만연한 ‘아동 노동력 착취’를 고발합니다. 욕심 많은 베르마 캐릭터 역시 어린 스탠리의 도시락을 탐하는 역할로 ‘이기적인 어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거죠. 감독은 도시락이라는 소재를 통해 아이들을 착취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인도영화이다 보니 영화 속 도시락에도 대표적인 인도 요리들이 맛깔스럽게 담겨있습니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엄마들이 요리하는 모습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커민가루, 페누그릭, 카다멈, 가람마살라 등의 이국적인 향신료와 필라프, 난과 로티, 인도식 커리 등 다채롭고 풍성한 색감의 요리들입니다.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인도식 요리의 향연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떠오릅니다.
영화 속 메뉴 따라 하기
인도영화에 음식이 등장할 때는 ‘병아리콩’이 자주 눈에 띕니다. 칙피chickpea라고 불리는 병아리콩은 단백질과 식이 섬유가 풍부하고 지방 함량이 낮아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콩의 일종이에요. 커리 외에도 다양한 메뉴 재료로 사용하는데, 병아리콩을 곱게 갈아 레몬즙과 올리브오일을 넣어서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뒤 빵에 찍어 먹는 후무스Hummus, 병아리콩을 납작한 케이크를 만들어 튀겨낸 팔라펠 Felafel등이 대표적입니다. 병아리콩이란 재료를 처음 접한 사람들을 위해 인도풍의 커리에 넣어봤어요.
<병아리콩 커리>
재료
병아리콩 1캔, 양파 1개, 당근 1/2개, 토마토소스 1/2컵, 닭 육수 4컵, 고형 커리 2조각, 커민 파우더 1/2 큰 술, 칠리 파우더 1/2 큰 술, 식용유 조금, 소금 후춧가루 조금씩
만들기
1. 캔에 담긴 병아리콩은 물기를 빼고 뜨거운 물에 헹궈낸 뒤 체에 밭쳐 준비한다. (마른 병아리콩을 사용할 경우 넉넉한 물에서 12시간 이상 불린 다음 끓는 물에 30분 정도 삶아서 사용한다.)
2. 당근과 양파는 병아리콩과 비슷한 크기로 네모지게 썬다.
3.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와 당근을 볶다가 병아리콩을 넣고 볶는다.
4. 여기에 토마토소스와 닭 육수, 커민 파우더, 칠리 파우더를 넣고 센 불로 끓인다.
5. 국물이 우르르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여서 10분간 더 끓인다.
6. 불을 끈 뒤 고형 커리를 넣고 잘 푼 다음 어느 정도 농도가 날 때까지 끓인다. 소금, 후춧가루로 간한 뒤 밥이나 난을 곁들인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