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한국영화 역사에서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고 싶다. 2월 미국 아카데미의 쾌거에 이어 심은경이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의 경우처럼 심은경의 수상도 최초의 일이다. <기생충>의 수상이 환희의 순간이었다면 심은경의 수상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심은경은 무대에서 눈물을 떠트리고 말았다. 준비된 수상 소감이 없었지만 심은경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만들었다. 심은경의 수상 소식에 2019년 10월 개봉했던 <신문기자>는 다시 한번 극장에 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못 본 관객이 있다면 왓챠에서 검색해보길 바란다. 더불어 심은경의 뛰어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 4편을 더 소개한다.
<신문기자>
<신문기자>는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영화다. 일본 고위 관료의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에 왜 한국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했을까.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이 부분이 화제가 됐다. 많은 이들은 일본인 배우가 정치적인 부담으로 인해 출연을 꺼린다고 짐작했다. <신문기자>는 최근 건강 상의 이유로 사임을 발표한 아베 신조 총리의 사학 스캔들이 모티브가 된 영화이기 때문에 그럴 듯해 보인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자리. 일본 기준으로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심은경이 <신문기자>의 출연을 결정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언어의 문제도 있을 테고, 영화 제작 전반의 문화적인 차이도 존재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심은경은 여러 난관을 모두 해결했다. 심은경이 연기한 ‘토우토 신문’의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는 권력의 비리에 맞서는 정의로운 기자, 그 자체였다.
<특별시민>
영화의 후반부. <특별시민>의 변종구(최민식)는 박경(심은경)에게 “이봐, 젊은 친구” 이러면서 소위 꼰대식 충고를 해준다. 이 충고는 박경이 선거 캠프에서 나간 뒤 “당신들이 그토록 무시하는 유권자로 돌아간다”고 말한 뒤에 나온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이자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을 노리는 변종구라는 인물이 중심에 있는 <특별시민>에서 심은경이 연기한 박경은 관객과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이다. 선거판이, 정치판이 얼마나 더럽고 무시무시한 곳인지 어린 박경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깨닫게 된다. 그 마지막에 앞서 언급한 변종구와 박경의 대화가 있다. 최민식이라는 대배우와 마주한 이 장면에서 심은경의 연기력은 결코 젊은 친구의 그것이 아니다. 배우 대 배우. 최민식의 상대역으로 심은경은 부족함이 없다.
<걷기왕>
세상 이렇게 편하게 사는 고등학생이 있을까. <걷기왕> 속 만복의 삶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의 모범 사례다. 집에 오면 강아지랑 놀고 밥 먹고 배 두드리며 마루에 드러눕는다. 공부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세상만사 모든 게 긍정적인 만복에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는 선천적 멀미증후군 환자다.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 실제로 이런 병이 있냐고? 일단 넘어가자. <걷기왕>의 설정이 그렇다. 그렇게 만복은 학교와 집, 왕복 4시간을 걸어다닌다. 그래도 만복은 불만이 없다. 그는 선천적으로 긍정적이니까. 만복의 변화는 자신의 특기인 걷기가 스포츠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다. 만복은 경보 선수가 됐다. 잘해야 된다는 마음,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만복을 괴롭게 한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할까. <걷기왕>은 만복의 변화와 좌절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그냥 이유없이 지치는 날 플레이하면 좋겠다.
<수상한 그녀>
<수상한 그녀>에 심은경이 아닌 다른 배우가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가정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해보자. 이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배우가 없다. 욕쟁이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이 다시 젊어진 캐릭터인 오두리를 연기한 심은경의 역대급 능청스러움을 이미 봤기 때문에 감히 상상이 안 된다. 만약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의 연기가 형편 없었다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누군가를 생각해냈을 텐데. 심은경의 연기는 그렇지 않았다. <수상한 그녀>의 초반부 웃음은 심은경이 확실하게 책임졌다. 그러니 오두리를 연기할 배우로 심은경 이외에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보시길.
<써니>
심은경에게 <써니>는 어떤 영화일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써니>는 그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써니>는 독특한 공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써니>라는 영화를 생각하면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진덕여고의 칠공주라고 했던가. 나미(심은경)를 비롯한 춘화(강소라), 장미(김민영), 진희(박진주), 금옥(남보라), 수지(민효린), 복희(김보미)가 한 컷 안에 모여 있는 이미지는 정말로 그들이 고교 동창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강형철 감독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할까. 어쩌면 배우들이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 중심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심은경이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