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소녀 소피가 마녀의 저주로 할머니로 변하면서 그 저주를 풀기 위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가고, 하울과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모험인데요. 소피의 이 기적 같은 모험을 법의 시선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소피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10대 소녀인데, 어느 날 밤 영업이 끝난 시간에 찾아온 황야의 마녀로부터 저주를 받아 90세 노인이 됩니다. 소피는 저주를 풀기 위하여 하울을 찾아 나서는데, 마법사들만 산다는 계곡으로 향하는 도중에 산 중턱에 거꾸로 처박힌 순무 허수아비를 바로 세워주면서 순무 허수아비의 도움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안으로 들어가게 돼요.

주거침입죄란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하면 성립하는 범죄에요. 여기서 주거에 해당하려면 사람의 기와침식, 즉 먹고 자는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기와침식에 사용된다면, 천막집, 비닐하우스, 주거로 사용하는 차량 등도 주거라고 인정되고, 주거가 꼭 적법할 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무허가 주거, 임대차 계약 해지 후에 계속 거주하는 임차인의 주거에 침입해도 주거침입죄가 될 수 있어요. 법 규정상 주거와 건조물의 차이점은, 주거는 꼭 부동산일 필요는 없고 동산이어도 되지만(그래서 주거용 차량도 주거라고 인정), 건조물은 부동산에 한하고, 예를 들면 공장, 창고, 극장, 관공서의 청사, 대학교 강의실, 교회 등이 있어요. 건조물의 일부가 주거로 사용되면 주거자체로 사용되지 않는 건조물의 부속물이나 위요지(가옥의 정원 등 주변토지를 지칭하는 말로 외부와의 경계에 문과 담 등을 설치하여 외부와 구별되는 부분을 말한다.-편집자)도 주거에 포함되는데, 예를 들면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 공용계단, 복도, 지하실 등도 주거에 해당돼요. 판례를 보면, 대문 안으로 들어와서 담장과 피해자가 거주하는 방 사이의 통로에서 창문을 통하여 방안을 엿본 경우 주거침입죄를 인정한 사례가 있어요. 그리고 퇴거불응죄 판례지만, 건조물 주변에 화단을 설치하거나 수목을 식재해서 담장의 효과가 있는 경우에는 화단, 수목으로 둘러싸인 건조물 주변의 토지도 건조물의 위요지에 해당한다고 보고, 관리자의 퇴거요구에도 퇴거하지 않으면 퇴거불응죄가 된다고 본 사례가 있어요. 이 판례에 의하면, 건물 앞 토지여도 건물의 화단이나 수목이 외부와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토지에 침입한 것도 주거침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영화에서 소피가 들어간 하울의 성은 움직이므로 토지의 정착물인 부동산이 아니어서 건조물은 아니에요. 그러나 사람인 하울, 마르클이 먹고 자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이므로 당연히 주거라고 인정할 수 있고, 주거용 차량처럼 주거에 사용되는 항공기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주거침입죄가 되려면 주거에 ‘침입’해야 하는데, 침입이란 주거자의 반대 의사가 필요합니다. 영화에서 성에 들어온 소피한테 마르클과 하울은 나가라고 하지 않고, 소피가 두 사람의 주거의 평온을 해쳤다고 볼 수도 없어서 주거에 침입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소피한테 주거침입죄는 성립하지 않아요. 참고로, 주거의 평온을 해하였다는 의미는, 예를 들면 부부의 집에 남편이 없을 때 간통을 하려고 아내의 승낙 하에 상간남이 들어가면, 남편이 상간남이 간통 목적으로 집에 들어오는 것을 승낙할 리가 없으므로 사실상 남편 주거의 평온이 깨졌다고 보아 주거침입죄를 인정한 판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에 들어온 소피를 보고 1층 벽난로에 거주하는 불의 악마 캘시퍼는, 자신은 계약 때문에 하울한테 혹사당하고 있는데 자신을 성에 묶어둔 저주를 풀어주면 소피의 저주도 풀어주겠다고 제안하여 캘시퍼와 소피는 거래를 합니다. 소피가 다음 날 아침 성에 거주하는 소년 마르클 앞에서 불(캘시퍼)를 이용하여 요리를 하려고 할 때 캘시퍼가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소피가 캘시퍼한테 우리의 거래를 하울한테 일러도 되냐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의 거래는 성립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어요.

거래는 법률상 용어는 아니기 때문에 소피와 캘시퍼의 거래를 법률적으로 평가하면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양 당사자(캘시퍼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은 법인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캘시퍼한테 계약을 체결할 능력이 있다고 전제함)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지만 계약은 꼭 서면으로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구두로도 가능하고 효력상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구두계약은 사후에 분쟁이 생기면 원래 양 당사자의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 있었다면 합의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입증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계약서를 써서 서면으로 남겨놓는 것이 입증에 유리한 것이죠.

소피와 캘시퍼가 체결한 계약상 내용이 무엇인지 영화에서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캘시퍼의 제안을 통해, 소피가 캘시퍼를 하울의 성에 묶어둔 저주에서 풀어주면, 캘시퍼도 소피의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먼저 둘이 (구두로) 체결한 계약의 종류는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전형계약이 아닌 비전형계약이라고 할 수 있고, 실무에서는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내용의 계약에 대해 용역계약, 컨설팅계약 등이라고 많이 쓰는데 계약서의 명칭에 구애받지는 않아요. 소피가 과거로 가서 알게 된 캘시퍼의 비밀은, 소년 하울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 캘시퍼와 어떤 거래(계약)를 하고 그에 따라 캘시퍼는 하울의 심장이 됩니다. 그리고 소피의 저주를 푸는 방법은, (해석이 다양하지만)소피가 원래 소녀였던 나이에 맞게 적극적이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서 하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면 다시 자신의 나이에 맞는 외모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황야의 마녀가 하울의 심장에 집착하여 캘시퍼를 꽉 쥐고 안놓아주려고 하자, 소피는 황야의 마녀 손에 꽉 쥐어진 캘시퍼가 죽을까봐 캘시퍼한테 물을 붓게 되는데요. 캘시퍼는 불의 악마이므로 물을 부으면 일반적으로 불씨가 꺼지면서 죽는다고 봐야 합니다. 만약 소피가 부어버린 물 때문에 캘시퍼의 불씨가 꺼져버렸다면 둘의 계약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소피의 계약상 의무는 캘시퍼를 하울의 몸에 묶어둔 저주에서 풀어주는 것이 주된 의무인데 캘시퍼의 저주를 풀기도 전에 물을 부어서 캘시퍼의 불씨를 꺼뜨려 버리면 소피의 의무는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채무불이행의 한 내용인 이행불능은, 계약이 성립한 후 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으로, 처음부터 불능인 경우에는 원시적 불능이라고 해요. 이행불능은 사실상 불능 외에 법률상 불능도 불능이라고 보는데(예를 들어 이중매매를 하고 제2매수인한테 소유권등기를 이전하면, 매도인의 제1매수인에 대한 소유권이전의무는 법률상 불능이 됩니다), 불능의 판단기준은 사회관념, 거래관념에 따라 판단하고, 이행불능의 효과에는 손해배상, 계약의 해제(최고 필요없음), 대상청구권이 있어요.

영화에서 소피가 캘시퍼한테 물을 부었지만 캘시퍼는 불씨가 약해졌어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고, 과거에 다녀 온 소피는 황야의 마녀 손에 불씨가 약하게 남아있는 캘시퍼를 건네받아, 시체처럼 기절한 하울한테 심장을 돌려주고 캘시퍼를 하울의 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줍니다. 소피와 캘시퍼가 체결한 계약에 의하면, 소피의 계약상 의무의 이행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소피가 결과적으로 캘시퍼한테 자유를 되찾아준 것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를 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다소 무리가 있으나, 영화 줄거리의 핵심으로 나오는 거래를 통해 비전형 계약의 내용을 한 번 정리해보았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