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갔어, 버나뎃>

<보이후드>(2014)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케이트 블란쳇이 협업한 <어디갔어, 버나뎃>이 절찬 상영 중이다. 한때 촉망 받던 건축가였던 주인공 버나뎃의 미묘한 신경증과 그걸 딛고 일어서는 의지까지 아우르는 블란쳇의 근사한 연기를 만날 수 있다. 블란쳇에 관한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엘렉트라>

─── 국립드라마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연극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엘렉트라>, <햄릿>,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바냐 아저씨> 등에 출연했다. 영화배우로 활동한 사이에도 틈틈이 호주의 연극 무대에 서온 블란쳇은 2017년 <프레젠트>로 미국 브로드웨이, 2019년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괴롭혔을 때>로 영국 내셔널씨어터에 데뷔 했다.

─── 한국에서도 유명한 호주 과자 '팀탐'(Tim-Tam) CF 모델로 활약했다.

─── 스크린 데뷔작은 1997년 개봉한 호주영화 <파라다이스 로드>다. 글렌 클로즈, 프랜시스 맥도먼드 등 명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블란쳇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붙잡힌 호주인 간호사 역을 맡았다.

<파라다이스 로드>

─── 사실 블란쳇의 ‘비공식’ 영화 데뷔작은 따로 있다. 이집트의 복싱 영화 <게(كابوريا)>(1990)다. 블란쳇은 18살 방학 중에 방문한 이집트 카이로의 숙소에서 즉석 영화 출연을 제안 받아, 영화 주제가에 맞춰 춤을 추는 대목 등 3개 장면에 얼굴을 비췄다.

─── 1997년 12월 29일, 극작가 앤드류 업튼과 결혼했다. TV쇼에서 처음 만나 1년간의 연애 후 부부가 된 것. 뉴사우스웨일스의 ‘블루 마운틴’ 국립공원에서 식을 올렸는데, 사진사를 고용할 만한 여유가 되지 않아 결혼사진을 찍지 않았다.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후 블란쳇은 출세작 <엘리자베스>(1998)를 촬영했다. 함께 영화사 ‘더티 필름’을 운영하는 블란쳇/업튼 부부는 대실 존, 로만 로버트, 이그네시우스 마틴 3형제와 입양한 딸 에디트 비비안 파트리샤와 함께 살고 있다.

─── <엘리자베스>의 세카르 카푸르 감독은 <오스카와 루신다>의 광고 영상만 보고 블란쳇을 엘리자베스 여왕 역에 캐스팅 했다.

<오스카와 루신다>

<엘리자베스>

─── <엘리자베스>로 스타덤에 올라 할리우드에서도 주연급 배우로 안착하게 됐지만, <리플리>(1999)에서 주연 마지가 아닌 조연 메르디스 역에 더 흥미를 가졌다. 이 사실을 안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메르디스의 비중을 높였다.

<리플리>

─── 15살 때 머리를 빡빡 밀었다가 당시 일하고 있던 양로원에서 해고됐다. 그로부터 15년 후 톰 티그베어 감독의 <헤븐>(2002)을 위해 다시 한번 삭발을 감행했다.

<헤븐>

─── <커피의 담배>(2003) 속 단편 <사촌들>에서 1인2역을 소화했다. 짐 자무쉬 감독은 두 캐릭터의 모습과 성격을 달리 하기 위해 각각 다른 날에 촬영을 진행해 전혀 다른 인물의 설왕설래를 담아냈다.

─── 본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가라드리엘 역을 (드라마 <여전사 지나>의) 루시 롤리스, 아르웬 역을 우마 써먼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두 배우 모두 아이를 갖는 바람에 하차했고, 그 자리를 케이트 블란쳇과 리브 타일러가 캐스팅 됐다.

<반지의 제왕>

─── 엘프 여왕 갈라드리엘 역을 “늘 뾰족한 귀를 갖고 싶어서” 수락했다며 인터뷰에서 농담처럼 밝힌 바 있는데, 3부작 작업을 모두 마친 뒤에도 계속 엘프 귀 보형물을 착용했다는 것 보면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 2004년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 포샤 역으로 참여해, <엘리자베스>에서 호흡을 맞춘 조셉 파인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함께 출연한 이안 맥켈런과 다시 작업할 뻔했으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

─── <에비에이터>(2004)에서 전설적인 배우 캐서린 헵번 역을 준비하면서 블란쳇은 헵번이 평소 즐겼다고 알려진 테니스와 골프를 연습하고, 찬물 샤워까지 했다. <리플리>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는 목소리 코치 팀 모니치와 헵번 특유의 뉴 잉글랜드 상류층 악센트를 연마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블란쳇에게 헵번의 초기작 15편을 보게 해 그의 버릇 하나하나를 익히도록 했다.

캐서린 헵번

─── 웨스 앤더슨의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2004)을 촬영할 당시 임산부인 제인을 연기하면서 복부에 보형물을 착용했는데, 하루는 그게 배에 딱 맞아서 깜짝 놀랐다. 며칠 후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됐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의 제인 윈슬렛-리차드슨 역엔 수많은 명배우들을 거쳐 블란쳇의 캐릭터가 됐다. 처음 캐스팅 된 기네스 팰트로가 스케줄 문제로 하차했고, 니콜 키드먼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 역할을 맡을 뻔했지만 다른 일정으로 포기했고, 줄리앤 무어 역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앤더슨은 이 캐릭터의 이름을 케이트 윈슬렛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의 데이지 역은 본래 레이첼 와이즈가 맡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스케줄 문제로 하차하게 되면서 블란쳇이 (<바벨>에 이어) 브래드 피트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블란쳇이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에서 연기한 이리나 스팔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악역이다.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 오스카 트로피를 두 번 받았다. 2005년 <에비에이터>로 조연상을, 2014년 <블루 재스민>으로 주연상을 수상했다. 오스카를 둘러싼 블란쳇의 기록을 살펴보면 꽤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블란쳇이 처음 오스카 후보에 오른 1998년엔 사상 최초로 다른 영화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두 배우가 각각 주연상/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엘리자베스> 속 엘리자베스 여왕 케이트 블란쳇과 <셰익스피어 인 러브> 속 엘리자베스 여왕 주디 덴치다. 수상의 영예는 덴치만 안을 수 있었지만, 두 배우는 <노트 온 스캔들>(2006)에서 투톱으로 활약하게 됐다. <에비에이터>의 캐서린 헵번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함으로서 블란쳇은 오스카를 수상한 실존 배우를 연기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최초의 배우가 됐다. 주연상과 조연상을 모두 받은 여성 배우는 헬렌 헤이스, 잉그리드 버그만, 매기 스미스, 메릴 스트립, 제시카 랭,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까지 딱 6명이다. 호주인으로 한정하면 블란쳇이 유일하다.

<블루 재스민>

───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 프렌치를 준비하며, 금융 사기꾼 버니 메이도프의 아내 루스 매도프의 인터뷰를 보면서 한때 부유했지만 모든 특권이 무너진 여자의 모습을 공부했다.

─── 블란쳇이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이 곧 영화 제목이 된 경우가 꽤 많다. <그 남자, 리지를 만나다(원제 'Thank God He Met Lizzie'>(1997), <오스카와 루신다>, <엘리자베스>, <샬롯 그레이>(2001), <베로니카 게린>(2003), <엘리자베스: 골든 에이지>(2007), <블루 재스민>, <캐롤>, 그리고 <어디갔어, 버나뎃>까지 총 아홉 작품이다.

─── 3개 작품에서 남자를 연기했다. 시드니 씨어터 컴퍼니의 연극 <리차드 2세>, 밥 딜런의 삶을 자유롭게 재구성한 <아임 낫 데어>(2007), 무려 1인 13역을 소화한 <매니페스토>(2015).

<아임 낫 데어> / <매니페스토>

─── <한니발>(2001)의 클라리스(줄리앤 무어),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아가사(사만다 모튼),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의 제인(안젤리나 졸리), <판타스틱 Mr. 폭스>(2009)의 미시즈 폭스(메릴 스트립), <마션>(2015)의 멜리사(제시카 차스테인), <비거 스플래쉬>(2015)의 마리안(틸다 스윈튼) 등. 블란쳇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맡지 않게 된 캐릭터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 여느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블란쳇 역시 마블 팬인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토르: 라그나로크>(2017)의 헬라 역을 수락했다. 헬라의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아프리카/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를 훈련 받았고, 형태가 변하는 몸을 구현하고자 모션 캡처 수트를 입고 촬영했다. 막내 아들 이그나티우스 마틴은 영화에 카메오를 맡기도 했다.

───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1998) 속 마스크 쓴 여인의 목소리를 더빙 했다는 사실이 2019년에야 밝혀졌다. 그 캐릭터를 연기한 아비가일 굿은 영국 악센트를 갖고 있던 것과 달리 큐브릭은 미국 악센트를 원했는데, 감독이 죽고 나자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가 당시 영국에 머무르던 블란쳇에게 미국 악센트로 더빙을 부탁해 진행됐다. 흥미로운 건 블란쳇 역시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

<나이트메어 앨리> 촬영 현장

─── 현재까지 알려진 차기작은 다섯.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하는 <피노키오> 리메이크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은 데 이어, 그의 또 다른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를 촬영 중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티모시 샬라메, 메릴 스트립, 아리아나 그란데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돈 룩 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2018)에 이어 일라이 로스 감독과 작업하게 된 <보더랜즈>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고, <애드 아스트라>를 연출한 명장 제임스 그레이의 신작 <아마겟돈 타임>에선 로버트 드 니로, 앤 해서웨이, 오스카 아이작 등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