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꽃>

꾸밈없는 얼굴. 솔직한 웃음. 배우 유진을 기억하게 하는 이미지다. 그는 안성기, 김혜성과 함께 <종이꽃>에 출연했다. <종이꽃>은 가난하지만 정직한 장의사 성길(안성기)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에겐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아들 지혁(김혜성)이 있다. 두 남자에게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느 날, 앞집에 이사 온 모녀 은숙(유진)과 노을(장재희)이 그들의 삶에 끼어든다. 유진이 연기한 은숙은 그들에게 웃음을 돌려준다. 밝고 명랑한 은숙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점점 편하게 미소를 짓는 유진의 모습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첫 등장할 때 깜짝 놀랐다. 해고당한 청소부인데, 화장실 변기에서 음… 더러운 물에 적신 대걸레를 들고 등장했다.

=(웃음) 너무 세게 나왔나.

-은숙은 화장기도 없고 얼굴에 큰 흉터도 있는 캐릭터다.

=현실적인 캐릭터라서 그런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되게 편하더라. (웃음) 촬영하면서 메이크업 신경 쓸 일도 없고.

-영화에는 오랜만에 출연했다.

=영화는 진짜 오랜만이다.

-촬영은 언제 했나.

=지난해 봄에 했다. 영화 촬영 현장은 드라마랑 다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분위기가 좋았다. 특히 이번 영화 현장의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같이 출연한 동료들과 호흡이 좋았던 모양이다.

=배우들 간에 조합이나 합이 좋았다. 안성기 선배님께서 편하게 해주셔서 그래서 더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스태프 사이에서도 큰 소리 한번 안 났다. 정말 촬영장이 즐거웠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혹시 로케이션 현장이 어딘지 알려줄 수 있나.

=어느 부분?

-가사간병을 하고 있는 지혁과 함께 휠체어 타고 가던 벚꽃길이 우리 동네 같아서. (웃음)

=서울 은평구 불광천에서 촬영했다. 거기 벚꽃길이 엄청 길더라. 나도 벚꽃을 그렇게 많이 본 적이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영화에 아는 장소가 나오면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물어봤다. 아까 안성기 선배님 얘기가 나와서 궁금해진다. 가까이서 봤을 때 어떤가.

=어… 일단은 목소리가 워낙 독특하시지 않나. 우리나라에 안성기 선배님 목소리 모르는 분이 계실까 싶은데 그 목소리를 눈앞에서 직접 듣는 게 신기하더라. 아, 내가 진짜 선배님과 촬영을 하는 건가 싶었다.

-말하자면 연예인의 연예인인가.

=그렇다. 너무나도 큰 분이시기 때문에. 워낙 좋은 분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같이 작업을 하면서 실감했다. 권위적인 면이 전혀 없으시고 편하게 대해주셨다.

-혹시 연기에 대한 팁을 알려준다거나 하진 않았나.

=전혀. 이렇게 이렇게 해봐 하시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런 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안성기 선배님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대선배님이시니까 같이 연기할 때 내가 위축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안 받게 하시더라.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하는 것 자체로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은숙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발랄한 것인가.

=아무래도? 만약 조금이라도 선배님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면 힘들었을 거다.

-은숙은 상처가 있지만 극강의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내 성격 자체가 밝은 편이다. 그런데 은숙 캐릭터는 실제 성격 이상으로 밝은 캐릭터였다. 감독님께서 요청하신 부분이다. 처음에는 ‘더 밝게요?’라고 반문했다. ‘어떻게 더 밝게 하지’ 싶기도 했고.

-갑자기 은숙의 대사들이 생각이 난다. “비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 해가 쨍쨍한 날은 맑아서 좋다”는 식의 대사들.

=감독님이랑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캐치를 했다. 은숙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일까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런 밝고 명랑한 은숙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게 노래와 춤이다.

=좀 어이없어 보일 정도다.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약간 코믹스러운 느낌이 나는 거니까. 춤은… 솔직히 즉흥적으로 한 거라. (웃음)

-“꿈이 댄서였다”는 대사를 하면서 보여주는 춤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닌데. (웃음) 은숙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걸 보는 지혁이 난처해하는 그런 것들이 코믹스럽게 연출됐다. 영화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숙 캐릭터는 <종이꽃>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이제 보니까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가 뭔지 알 것 같다. 아, 그래서 그 정도로 밝은 성격을 원하셨던 거구나. 나중에 은숙의 아품을 보여주는 신들과 만나서 대비가 극대화된다.

-극중의 딸 노을도 씩씩한 엄마와 똑 닮았다.

=노을을 연기한 재희도 실제로 진짜 완전 밝은 아이다. 재희가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였다.

-현장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겠다. 그 좋은 기운을 받아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좀더 많이 뵐 수 있을까.

=앞으로는 더 할 생각이다. 오랜만에 복귀했는데.

-엄마로 지낸 시간 때문에 그동안 보기 힘들었다.

=맞다. 아이 낳고 기르고 하면서 휴식을 가졌다. 그런데 평생 놀 수는 없지 않나. (웃음) 일을 해야지.

-연기는 많이 안 했지만 방송에서는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연기를 할 때 진짜 내가 복귀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영화 속 은숙의 대사가 생각난다. 지혁에게 “아줌마 아줌마 하지 말라”며 “듣는 아줌마 기분 나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요계의 요정’ S.E.S.의 유진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웃음) 공감되는 대사였다. 요즘에 아줌마라는 소리를 누구한테 듣냐면, 딸 친구들한테 듣는다. 처음에 애기 낳고 딸이 어렸을 때만 해도 아줌마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그랬는데 애기가 유치원 가고 학부형이 되면서 누구 어머니라는 말을 듣게 됐다. ‘로희 어머니’ 이렇게 불리는 게 이제는 익숙해진 것 같다. 딸 친구들한테도 “아줌마가 해줄게” 이렇게 말이 나오니까.

-그래도 영화에서 ‘요정 미모’를 볼 수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러 간 곳에서 직원이 스마트폰으로 은숙의 증명사진을 즉석에서 찍는다. 스마트폰 화면 속 은숙의 미소가 진짜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다행이다. 나는 이번 영화에서 예쁨은 포기했는데. (웃음)

-사실 은숙 얼굴의 큰 흉터를 나중에 발견했다. 미소에 홀려서 그랬던 것 같다.

=흉터가 꽤 큰데… 그걸 보여주기 위한 클로즈업인데. (웃음)

-앞으로 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만나길 기대한다. 특별히 하고 싶은 역할이 있나.

=장르가 딱 정해져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스릴러면 스릴러, 코미디면 코미디, 이런 식으로 정해진 작품들. 요즘엔 SF장르도 많고, 타임슬립이라든지, 좀비라든가. (웃음) 장르가 확실한 작품을 안해본 것 같더라.

-그런 장르물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좋아한다. 장르를 가리고 보지는 않는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OTT 서비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는지 궁금하다.

=차량에서 이동하는 시간에 많이 본다.

-최근에 재밌게 본 게 있다면.

=가장 최근에 본 건, <에밀리 파리에 가다>였다. 보면서 파리 언제 갈 수 있을까 싶었다. 파리의 일상이 그려지니까. 빨리 여행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들더라.

-다시 해외 여행을 마음껏 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

=하와이에 갈 것 같다. 지난해 여름 하와이 여행 계획이 있었는데 무산됐다. 첫째 아이랑 같이 갔던 하와이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둘째랑도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못 갔다.

-마지막 질문은 다시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종이꽃’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영화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그 의미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많은 분들이 아마 영화 보시기 전에 저게 무슨 뜻일까 하실 것 같다. 성길의 대사에 나온다. 사람이 죽으면 모두 똑같다. 돈 많은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그걸 제 딸, 노을한테 얘기를 해주면서 종이꽃을 접는 장면이 있다. 그 아이가 그 말을 얼마나 이해할까 싶지만, 그걸 빨리 깨달을수록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거다. 살아가는 삶의 방향도 달라질 거고 나의 가치관도 달라질 것 같다. 종이꽃이라는 게 진짜 꽃을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 상여에 달아주는 건데 굉장히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며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유진은 잠깐 고민하더니 “많이 보러와주세요?” 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활짝 웃는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꾸밈 없이 웃는 모습이 <종이꽃>의 캐릭터 은숙을 만든 바탕이 됐을 것이다. 어쩌면 유진에게 은숙은 즐겨 입는, 몸에 딱 맞는 옷과 같은 캐릭터였을지 모른다. “장르가 딱 정해진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다음에는 전혀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배우 유진을 기대해보자.

글 ·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사진 · 씨네21 백종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