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직배사 UIP가 배급한 첫 영화 <위험한 정사>(1989).

직배라 함은 직접 배급을 의미하고 할리우드 직배사라 함은 국내 배급사를 거치지 않고 할리우드가 직접 배급하기 위해 만든 회사를 말합니다. 할리우드 직배사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온 것은 1988년인데 그 첫 회사는 UIP(유니버설 ‧ 파라마운트 ‧ MGM 이 만든 전 세계 배급을 위해 만든 회사)이었고 첫 영화는 <위험한 정사>이었습니다. 같은 해 20세기폭스를 시작으로 89년에는 워너브러더스가 90년에는 콜롬비아트라이스타 그리고 93년 월트디즈니를 마지막으로 할리우드의 모든 직배사가 국내 연착륙에 성공하게 되지요.

이들의 국내 입점은 한국영화 산업에 있어 굵직한 변화들을 가져오는데 산업적 측면에서 가장 먼저 한국영화 시장 위축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직배사들의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로 인해 개봉시킬 극장을 잡기가 힘들어졌던 것이죠. 1년에 120편을 넘기던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60편으로 줄어들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었고 직배사가 들어간 나라들은 어쩔 수없이 다 겪는 일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직배 전략은 전 세계를 자신들의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거기다 이렇게 로컬에서 번 돈 마저 그대로 본국으로 송금되다보니 국내 시장 건전성은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수익이 발생하면 그 수익이 다시 산업 안으로 들어와 양질의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식의 선순환구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충무로라 불리던 토착 영화산업은 망하게 되고 그 자리에 대기업 주도의 영화산업이 탄생하게 됩니다.

할리우드 직배사가 배급한 첫 한국영화 <남자의 향기>(1998)

국내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부터는 그들이 한국영화를 배급하기 시작하는데 그 첫 영화는 장현수 감독의 <남자의 향기>(1998)로 월트디즈니의 배급사 브에나비스타가 최초로 물꼬를 튼 후 20세기폭스는 장길수 감독의 <실락원>에 대하여 비디오 판권 구매조건으로 제작비의 절반을 투자하게 되고 이어 1999년에는 워너브러더스가 <연풍연가>를 배급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흐름은 2002년 브에나비스타가 배급한 안병기 감독의 <폰>으로 이어지는 가 싶더니 이후 국내시장이 커지면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본국영화에 대한 로컬 흥행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2010년으로 접어들면서 북미 시장에 이상 기운이 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체 시장이 축소(정체)되고 부가시장마저 성장을 멈추기에 이릅니다. 반면 해외 시장은 그 비중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던 것이죠. 할리우드는 자국 내 수익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 전략 중 하나로 로컬프로덕션을 들고 나오는데 로컬프로덕션이라 함은 말 그대로 로컬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자신들의 브랜드 파워로 그 나라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배급하겠다는 것입니다. 로컬프로덕션의 대상으로 삼은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영화 점유율이 압도적이어서 할리우드 영화가 기를 펴지 못하는 나라들로 그 중 우리나라가 포함되지요.

20세기폭스가 투자배급한 영화 <곡성>

워너브러더스가 투자배급한 영화 <밀정>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에 유니버설픽쳐스와 자회사인 포커스피처스가 부분투자를 하였고 2010년 나홍진감독의 <황해>에 20세기폭스가 부분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간을 본 후 본격적으로 로컬프로덕션을 설립하여 투자 배급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 첫 회사는 20세기폭스로 2013년 조동오 감독의 <런닝맨>를 시작으로 <슬로우비디오> <나의 절친 악당들> 그리고 빅히트를 친 2016년 <곡성>, 그리고 2017년 <대립군>까지 쭉 이어가는가 싶더니 20세기폭스가 디즈니에 합병되면서 갑자기 사업을 접고 맙니다. 워너브러더스도 화려한 청사진을 가지고 김지운 감독의 <밀정>을 시작으로 <싱글라이더> <브이아이피> <챔피언> <마녀> <인랑> <악질경찰> <광대들: 풍문조작단>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까지 해서 잘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올해 <내가 죽던 날> <죽여주는 로맨스> <조제>까지만 하고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이유인즉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워너브러더스 본사의 CEO 교체, 워너브러더스 모회사인 워너미디어가 출범시킨 OTT서비스인 HBO맥스 등 여러 환경 변화로 인한다고는 하지만 고작 5년 만에 철수라니?

할리우드의 로컬프로덕션 철수는 이러한 이유도 있겠지만 수십 년 동안 그들이 노린 전략들을 감안해서 판단해보면 속내는 아마도 굳이 로컬프로덕션을 통해 제작투자까지 해주면서 리스크을 감당하느니 OTT 서비스 하나면 리스크 없이도 로컬시장 싹쓸이가 가능하리라 판단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내년에 그들의 OTT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와 HBO맥스가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고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지금으로 봐서는 실제로도 들어맞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된다면 우리로써는 그마저 있던 부가시장마저 할리우드에 넘기는 꼴이 되어버려 국내영화시장은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국내 로컬프로덕션의 철수를 바라보면서 걱정이 앞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지요. 물론 오늘 이 이야기는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 소비자인 관객 입장에서는 볼만한 콘텐츠가 많아지는 것이니 이것이 더 좋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