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019년, 디즈니의 폭스 인수 이후 팬들이 기다렸던 소식이 처음으로 들렸다. 바로 엑스맨과 판타스틱 4의 MCU판 제작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두 작품 모두 이미 실사화 이력이 있기에 손쉽게 편입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엑스맨은 근래에 <엑스맨:다크 피닉스>가 개봉한 바 있어 기존의 유니버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화두로 꼽혔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는 늘 그랬듯이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발언하지는 않았고 그저 '논의 중이며,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정도로 언급한 게 다였지만 제작 계획이 있으며 개발 단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을 설레게 하기에는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20세기 폭스에서 제작한 마블코믹스 히어로 영화 <엑스맨> 시리즈

<엑스맨> 시리즈는 메인 시리즈를 위시해 휴 잭맨이 연기한 <로건> 스핀오프 시리즈 등 수많은 작품들이 제시되었고,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DCFU(DC 필름 유니버스)가 본격적인 히어로 무비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엑스맨 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시도와 성과를 내왔다. 마무리(<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미흡한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여전히 <엑스맨> 시리즈의 영화들은 오랜 히어로 무비 팬들에게 명작으로 꼽힌다.

2015년에 제작한 <판타스틱 4>

<판타스틱 4>의 경우에는 더없이 아쉬운 느낌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영화가 1994년부터 총 네 편이나 제작되었으나 여러 가지 이슈와 추문이 이어졌고, 감독의 전작 <크로니클>에 비해 영화의 완성도가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혹평에 결국은 2015년 리부트작은 흥행 실패의 고배까지 맛봐야 했다. 하지만 마블 코믹스에서의 '판타스틱 4' 팀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다시 리부트가 필요한 작품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판타스틱 4의 시작

스탠 리와 잭 커비가 창작한 <판타스틱 4>는 1961년에 처음 공개했다.

'판타스틱 4'는 마블 최초의 히어로 팀이다.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팀 내 구성에 몇 번의 변동을 겪기는 했으나 원년멤버이자 주력 팀원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4명이자, 실사화 영화에서도 주역으로 활약했던 그들이다. 리더인 미스터 판타스틱/리드 리처드과 휴먼 토치/조니 스톰, 인비저블 우먼/수 스톰, 그리고 씽/벤 그림이다.

실사화 프로젝트의 실패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원작 마블 코믹스 기준 내에서 그들의 위상은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무려 1961년에 '판타스틱 4'라는 이름으로 첫 이슈가 연재되었고,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마블의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스탠 리가 잭 커비와 함께 만들어낸 팀이기도 하다. 이들은 독특하게도 단순히 팀이 아니라 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래서 네 사람은 인간적이고 드라마틱한 모습을 다수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이 넷은 가족이기도 한데, 인비저블 우먼과 미스터 판타스틱은 부부 사이이며 휴먼 토치는 인비저블 우먼의 동생, 즉 미스터 판타스틱의 처남이기 때문이다. 씽은 유일하게 가족관계는 아니지만 멤버들 중에서는 가장 고생길이 훤한 캐릭터여서 반쯤 가족이라 불러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스탠 리는 '판타스틱 4' 작업을 하기 전 코믹스 업계에 염증을 느껴 다른 일을 하려다가 아내의 조언을 얻어 이 작품을 작업했고,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연이어 다른 캐릭터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스탠 리 뿐만이 아니라 마블 코믹스 역시 판타스틱 포의 성공을 계기로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결과적으로 이후 스파이더맨까지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으니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다.


악재가 겹치고 겹쳤던 실사화 히스토리

마블 코믹스 내의 위상에 비해 '판타스틱 4'의 실사화 이력은 비극으로 얼룩져 있다. 가장 먼저 제작된 1994년 <판타스틱 4>는 판권 기한 문제로 제작비가 3% 수준으로 삭감된 데다 총 3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영화 촬영을 완료해야 했다. 마블 코믹스가 경영난으로 인해 실사화 판권을 팔아넘긴 당시, 일정한 기한 이내에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판권은 다시 마블에게 돌아온다는 조건이 달았기 때문.

1994년판 <판타스틱 4> 배우들

이 영화는 정식 개봉조차 되지 못했는데, 20세기 폭스에서 영화 관련 권한을 전부 사 가면서 저예산 영화로 제작된 <판타스틱 4>의 1994년판은 개봉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마블 세계관에서 위상이 높고 인기 있는 팀업 슈퍼히어로 '판타스틱 4'의 첫 실사화를 저예산 영화로 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 때문에 이 영화는 결국 대중에게 정식으로 공개되지는 못했다. 이후 2005년에 폭스 사의 배급을 통해 다시금 실사화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는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세를 떨친 배우 크리스 에반스가 이 영화에서는 휴먼 토치로 출연했고, 당시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제시카 알바가 인비저블 우먼으로 캐스팅되었다. 이 영화의 경우 흥행에도 성공하여 국내 관객들에게는 제시카 알바가 연기한 인비저블 우먼의 스틸컷들이 강렬한 기억을 남기게 되었으나, 앞서 언급했듯 평가는 좋지 못했다.

흥행에는 무난히 성공해 2편까지 제작되었던 <판타스틱 4>(2005)

2005년 공개한 <판타스틱 4>는 흥행에 무난히 성공하며(제작비 1억 달러, 흥행 실적 3억 3천만 달러) 속편이 제작되었고 2007년 실버 서퍼와 갤럭투스를 빌런 캐릭터로 내세운 속편을 개봉했다. 하지만 원작과는 영 딴판인 내용으로 스토리가 각색되었으며 내외부로 이슈도 많았다. 제시카 알바는 당시 심경을 토로하면서 배우 은퇴 고려까지 생각했다고 할 정도였으며 다소 비현실적인 곳곳의 세부요소와 전개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피하지 못했다.

휴먼 토치 역 마이클 B.조던과 조시 트랭크의 협업 난장판.. 리부트 <판타스틱 4>(2015)

2015년 리부트판은 악재가 더했다. <크로니클>로 흥행 성공을 거두며 훌륭한 평가를 받았던 감독 조시 트랭크가 <판타스틱 4>의 리부트 영화 메가폰을 쥐었으나 휴먼 토치의 인종이 바뀌었던 데다 담당 배우는 원작 코스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까지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것만으로도 가장 큰 관객이자 팬이 될 수 있는 코믹스 팬덤의 부정적인 의견은 충분했을 텐데 조시 트랭크는 촬영에도 성실히 임하지 않았던 데다 촬영 스텝과 배우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등 만행을 저질러(촬영장에서 마약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무후무할 정도의 흥행 실패 및 혹평을 기록하고야 만다.


과거는 잊고… 새 시대로

좋은 출발일 수 있었고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나빴을지언정 흥행에는 성공했던 <판타스틱 4>의 실사화가 계속해서 이렇게 악재를 거듭하게 되었던 것은 오랜 히어로 코믹스 팬들에게는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MCU가 이제까지 내놓았던 걸출한 히어로 무비들을 위시해 다시금 MCU의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버전의 <판타스틱 4>를 기대하는 팬들은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루머에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마블이 <판타스틱 4>를 제작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선정하고 초기 단계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판타스틱 4>가 다시 선보일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많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비롯한 MCU 내 팀업들이 큰 문제들을 해결해 왔고, 그 사이에 판타스틱 포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작과 완전히 동일하게 갈 이유는 없다. 실제로 코믹스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 개편되고 재창조된 스토리가 많으며, 2008년 아이언맨의 마지막 대사 'I'm IRON MAN'이 그 구체적인 재해석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원작 코믹스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주었던 힘과 관계를 매력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던 영화들은 원작 팬들로부터 혹평을 면치 못했던 사례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아직 많다. <토르: 러브 앤 썬더>가 토르 시리즈의 무대를 바꿔놓을 것으로 보이고, <이터널즈>가 개봉하면 보다 폭넓고 광활한 범위로 MCU의 무대는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전보다 무대는 더 자유로울지도 모른다. 일정한 세계관 안에 짜 맞춰 넣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이제 MCU는 멀티버스라는 광활한 세계관을 도입해 더 많은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것임을 4페이즈 계획을 통해 보여준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로 인해 모든 일정이 연기되어 우리가 직접 마주할 날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엑스맨과 판타스틱 4, 그리고 더 많은 히어로들이 속속 등장해 MCU 프랜차이즈를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PNN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