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최고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옥의 묵시록>(1979)의 '파이널 컷' 버전이 상영 중이다. <대부> 시리즈와 <컨버세이션>(1973)으로 이미 물오른 연출력을 보여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조차 만들면서 지옥 같은 시간을 경험한 작품인 만큼 제작을 둘러싼 일화도 상당히 흥미롭다.


연극/라디오의 인기 스타였던 오손 웰스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각색한 작품을 첫 영화로 연출하길 원했다. 라디오 단막극으로는 몇 차례 선보인 적이 있었다. 174페이지 짜리 시나리오를 제작사 RKO 보여줬지만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결국 <시민 케인>(1941)을 영화 데뷔작으로 연출하게 됐다. 훗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오손 웰스를 커츠 대령 역에 캐스팅 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원래 조지 루카스가 감독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총괄 제작자를 맡기로 했다. 루카스는 존 밀리어스가 시나리오를 쓴 <지옥의 묵시록>을 아직 전쟁 중인 베트남 남부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으려고 했으나 결국 제작이 성사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스타워즈> 만드느라 바빴던 루카스는 코폴라에게 감독 권한을 넘겼다.

코폴라와 루카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필리핀에서 촬영한 <빅 돌 하우스>(1971)를 제작한 로저 코먼 감독에게 필리핀에서 촬영하는 것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코먼의 대답. “가지 마라!”

코폴라와 코먼

스티브 맥퀸은 윌러드 대위 역을 거절한 첫 번째 배우였다. 처음엔 3백만 달러를 받고 출연하기로 구두로 약속했는데, 필리핀에서 수 개월간 촬영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고는, 상대적으로 로케이션 촬영이 적은 킬고어 대령을 맡고 싶다고 했다. 개런티 변동이 없다는 조건 때문에 결국 캐스팅은 무산됐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알 파치노에게 주인공 윌러드 역을 제안했을 때, 파치노는 “이게 어떻게 돌아갈지 알 것 같아. 당신은 헬리콥터에서 나한테 뭘 하라고 지시할 테고, 난 늪에서 5개월은 처박혀 있어야 하겠지”라며 거절했다. 파치노가 출연했다면 <대부> 콜레오네 부자의 재회가 성사됐을 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가 너무 어두컴컴하다며 윌러드 역을 고사했다. 잭 니콜슨 역시 거절했다. 제프 브리지스는 윌러드 역의 오디션을 보았다.

<대부>의 알 파치노 / <서바이벌 게임>의 버트 레이놀즈

버트 레이놀즈도 윌러드 역 제안을 받았지만, 말론 브란도의 열띤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브란도는 <대부>(1972)의 마이클 콜레오네 역에 레이놀즈가 캐스팅 되려던 것도 적극 방해한 바 있다.

<지옥의 묵시록>을 촬영하던 하비 케이틀과 로버트 듀발

본래 윌러드 역의 배우는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작에서 활약한 하비 케이틀이었다. 실제로 촬영도 했는데, 2주 정도 찍다가 결국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마틴 쉰으로 대체했다.

오프닝 크레딧이 없고, 영화 제목조차 뜨지 않는다. 캄보디아에 도착했을 때 후반부에서야 “Our motto: Apocalypse Now”라는 낙서가 보일 뿐. 시나리오 작가 존 밀리어스는 제목 ‘Apocalypse Now’를 히피 문화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쓰이던 문구 ‘Nirvana Now’에서 따왔다.

오프닝의 트래킹 샷은 네이팜 공습 신에서 촬영했던 자투리 푸티지를 재활용한 것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푸티지를 살펴보다가 그 장면을 발견했고, 도어즈의 ‘The End’와 매우 잘 붙는다고 판단해 첫 장면으로 배치했다.

존 밀리어스는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바그너와 도어즈의 음악만 들었다. 도어즈의 노래는 밀러스에게 ‘전쟁의 음악’ 그 자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짐 모리슨은 미국 해군 장성의 아들이었다.

도어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짐 모리슨을 비롯한 도어즈의 모든 멤버들과 함께 UCLA 영화학교를 다녔다. 실제 오리지널 스코어가 만들어지기 전, 5시간 30분짜리 편집본은 도어즈의 음악들이 스코어를 대신했다.

윌러드 대위가 호텔방 안에 혼자 있는 장면은 대본에 없던 것이다. 촬영 당시 진짜 취한 상태였던 마틴 쉰은 진짜 거울을 주먹으로 쳐서 엄지가 찢어지고, 울부짖다가 급기야 감독을 공격하려 들었다. 불안해하던 스탭은 촬영을 멈추려고 했지만 쉰은 계속 찍게 했다. 당시 알코올 의존증을 겪고 있던 쉰은 촬영을 계속하는 게 자신의 문제를 대면할 수 있다 생각했다고. 이 신은 쉰의 36번째 생일에 촬영됐다.

클린 역의 로렌스 피시번은 촬영이 시작됐던 1976년에 불과 14살이었다. <지옥의 묵시록>에 출연하기 위해 나이를 속였다.

윌러드와 셰프가 정글에서 망고를 찾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신과 바로 그 다음 장면인 셰프가 보트로 돌아와 셔츠를 찢고 울부짖는 신은 사실 1년 차를 두고 촬영됐다.

애초 촬영은 6주 일정이었지만, 결국 16개월간 진행됐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제작비가 점점 불어나자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집과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를 저당 잡혀서 사비 7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 촬영 당시의 코폴라

촬영하는 동안 수차례 자살 충동을 느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촬영 기간에 45kg이 빠졌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커츠를 죽이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지만, 원작소설은 주인공이 커츠를 구하러 가는 설정이다. 미군이 엔딩에서 커츠 대령을 죽인다는 걸 문제 삼아 군사 장비를 대여해주지 않아서 지방군의 장비를 빌려야 했다.

촬영분에 잡음들이 너무 많아서 대사 대부분이 후반 작업 중에 대체됐다.

루카스 대령 역은 원래 <대부>에서 소니를 연기한 제임스 칸이 1순위였지만 작은 비중에 비해 출연료를 과하게 요구해서 결국 해리슨 포드가 캐스팅 됐다.

<대부>의 제임스 칸

마틴 쉰이 연기한 벤자민 윌러드 대위의 이름은 해리슨 포드의 두 아들 이름 벤자민, 윌러드를 조합한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의 해리슨 포드

해리슨 포드는 자기 캐릭터의 이름을 고를 수 있었다. 그의 역할 이름은 ‘G. 루카스’, 코폴라가 프로듀서를 맡은 <청춘낙서>(1973)의 감독 조지 루카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G.D. 스프라들린이 연기한 코먼 중장은 로저 코먼의 이름이다.

킬고어 대령을 연기한 로버트 듀발은 불과 11분의 출연으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수상했지만, 오스카는 <찬스>의 멜빈 더글라스를 선택했다.

공습 시퀀스에 쓰인 음악 ‘발키리의 기행’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발키리의 기행’은 승리의 순간에 배치됐지만, 결국 그 전투는 패배로 끝나고 만다.

네이팜탄 공습 시퀀스의 편집에만 1년이 걸렸다. 10분 남짓한 시퀀스의 촬영분이 전체의 10%에 달했다.

각본가 존 밀리어스는 그 유명한 대사 “난 아침에 네이팜탄의 냄새를 맡는 게 좋아”를 썼을 때 “이건 너무 과하군. 제일 먼저 삭제되고 말 거야”라 생각했다.

마틴 쉰은 촬영 중에 심근경색을 앓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쉰은 그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제작사의 지원이 끊길 거라고 생각해 그 사실이 바깥에 알려지지 못하도록 했고, 촬영 스케줄엔 쉰이 일사병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고 기록했다.

마틴 쉰

편집 막바지에 마틴 쉰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추가로 녹음해야 했는데, 당시 매우 바빴던 쉰이 녹음이 어려워지자 목소리가 아주 비슷한 그의 동생 조 에스테베즈가 대신했다. 에스테베즈는 쉰이 촬영 중에 심근경색을 앓자 그의 대역을 맡기도 했다. 다만 에스테베즈는 크레딧에 오르지 못했다.

심근경색에서 회복된 후, 마틴 쉰이 너무 건강해 보여서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점점 전쟁에 찌들어가는 전사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지옥의 묵시록> 촬영 현장

당시 필리핀엔 전문적인 필름 현상소가 없어서 촬영한 네거티브 필름을 미국에 보내야 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갈 때까지 영화의 단 한 장면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말론 브란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말론 브란도가 조셉 콘래드의 원작소설 <어둠의 심연>에 정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촬영장에 나타난 브란도가 <어둠의 심연>은 읽기는커녕 자기 대사도 모른다는 걸 알곤 진저리 쳤다. 커츠 대령이 훤칠하고 아주 날씬하다는 설정인 데 반해 브란도는 살이 많이 찐 상태였다. 한편, 말론 브란도는 자기가 나오는 장면들을 코폴라가 아닌 조감독인 제리 지스머가 찍는 것에 분개했다.

14개월간 진행된 필리핀 촬영 일정 중, 가장 많은 출연료를 말론 브란도는 딱 6주간 현장에 머물렀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그가 나오는 분량은 총 15분 정도다.

커츠 대령에 관한 자료 속 제복 입은 말론 브란도의 사진은 <황금 눈에 비친 모습>(1967)에서 가져왔다. <황금 눈에 비친 모습>에서 브란도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한 직업군인을 연기했다.

<황금 눈에 비친 모습>

윌러드가 육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카메라 쳐다보지 말고 그냥 계속 지나가요!”라고 외치는 사람이 바로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다. 그 옆엔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 미술감독 딘 타불라리스.

커츠는 T.S.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을 읽는다. 엘리엇은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인 <어둠의 심연>에서 영향을 받아 이 시를 썼다. <텅 빈 사람들>은 “미스터 커츠, 그는 죽었다”로 시작하는데, 영화 속 커츠는 그 부분은 생략한 채 시를 읽어나간다. 사진가(데니스 호퍼) 역시 이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윌러드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클린이 죽기 전 듣는 음성 편지는 실제 로렌스 피시번의 어머니가 녹음한 것이다.

마틴 쉰은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해서 출연분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트 신을 찍을 때 두려움에 떨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도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든 카민 코폴라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버지다. 그는 코폴라의 전작 <대부> 사운드트랙에 작곡/지휘로 참여한 바 있다.

카민 코폴라가 오리지널 스코어를 맡기 전, 일본의 신디사이저 명인 토미타 이사오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전작 <컨버세이션>의 음악을 만든 데이빗 샤이어가 음악감독을 맡을 뻔했다. 토미타는 레코드사의 계약 문제로 무산되고, 샤이어는 실제로 음악을 완성하기까지 했는데 결국 사용되지 못했다. 샤이어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는 2017년 처음 정식으로 공개됐다.

<아웃사이더>의 에스테베즈 (오른쪽)

마틴 쉰의 아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는 촬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청춘영화 <아웃사이더>(1983) 배우 섭외 중에 에스테베즈를 떠올려 투 빗 역에 캐스팅 했다.

커츠 대령의 캐릭터는 전설의 도시 엘 도라도를 찾아 아마존 정글을 헤맨 떠돌았던 스페인 군인 로페 데 아귀레에서 영감을 얻었다.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아귀레의 광기를 담은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1972)를 연출했다.

<아귀레, 신의 분노>

밀리어스가 쓴 초고는 윌러드가 미국으로 돌아와 커츠의 아내와 아들에게 그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으로 끝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아내 엘레노어가 동물 의식을 치르는 이푸가오 부족에 대해 알려주기 전까지 영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난항에 빠져 있었다.

엘레노어 코폴라는 1991년, <지옥의 묵시록>을 제작할 당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하츠 오브 다크니스>를 발표했다.

클라이막스의 물소 도살은 실제 상황이다. 이 신은 필리핀 이푸가오 족의 의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분명 미국 동물보호법에 문제가 되는 장면이지만, 필리핀에선 어떠한 감시도 받지 않았다. 동물단체 ‘아메리칸 휴메인 어소시에이션’은 <지옥의 묵시록>에 ‘용납할 수 없음’ 등급을 부여했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제외하면 윌러드는 마지막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대사는, “자네는 암살자인가?”라는 커츠의 물음에 “저는 군인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1979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에도 <지옥의 묵시록>은 완성본이 아니었고, 결국 미완성본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첫 영화가 됐다.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독일 영화 <양철북>(1979)과 공동 수상했다.

코폴라와 <양철북> 감독 폴커 슐뢴도르프

<지옥의 묵시록>의 첫 편집본은 5시간이 넘었다. 칸 영화제에 처음 공개된 버전은 3시간, 그해 여름 극장에 개봉한 버전은 147분이었다. 이렇게 러닝타임이 줄게 된 건 제작사의 압력이 아닌 최종 편집권을 갖고 있었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결정이었다. 코폴라 역시 <지옥의 묵시록>에 사비를 털어 넣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좋다고 판단했다. 2000년대 들어서 영화를 다시 본 코폴라는 개봉판이 너무 많은 장면을 잘라냈다고 생각해 49분 분량이 추가된 ‘리덕스’ 버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 40주년인 2019년, ‘리덕스’에서 21분을 덜어낸 ‘파이널컷’ 버전이 공개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