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 전편을 몰아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사이 왓챠는 또 신작을 준비했다. 이번엔 구성이 매우 다채롭다. 엄청난 스케일의 대작, 독특한 형식의 애니메이션, 지금 다시 보면 딱 좋을 1980년대 블록버스터, 재일교포 중견 감독과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까지. 무엇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그냥 지나친다면 후회할지도 모를 5편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1917>

<1917>

감독 샘 멘데스│출연 조지 맥케이, 딘-찰스 채프먼│119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제약이 많다. 관객은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 컴컴한 공간 속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과 큰 스피커에서 울리는 사운드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극장에 간다. 우리집에는 극장보다 큰 스크린과 더 좋은 사운드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917>을 꼭 극장에서 봐야 했다.

영화관이 아닌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자유롭다. TV, 태블릿, 스마트폰, PC… 어느 공간에서 어떤 기기를 사용하든 우리는 영상과 사운드를 통제할 수 있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수도 있고, 사운드의 불륨도 조절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1917>을 다시 봐야 한다.

<1917>은 영화 전체를 하나의 숏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1917년 4월 6일, 서부전선의 한복판에서 영국군의 어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가 중요한 명령을 전하기 위한 질주는 때로는 일시정지와 리와인드 버튼을 누르고 싶게 만들었다.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됐는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감독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맨목소리 출연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인펠드117분

애니메이션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원에 힌트가 있다. ‘살아있다’라는 뜻을 품은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이 나왔다. 즉, 애니메이션은 죽어 있는 어떤 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대체로 그림이었다. 점토 등으로 만든 인형일 때도 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도 해당된다. 무엇이든 움직이게 만들면 된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기원은 어디일까. 단순히 지구를 지키거나 악당에 맞서는 설정부터 여러 평행우주가 뒤섞이면서 인종도 성별도 다른 여러 명의 스파이더맨이 하나의 공간에 모인다는 상상력까지 모든 것은 코믹스에서 출발했다. 거의 모든 슈퍼히어로 장르의 영화가 시작하기 전 마블이나 DC의 로고를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비주얼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의 본질과 슈퍼히어로 장르의 기원을 동시에 시각화했다. 코믹스의 그림과 형식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른 모든 훌륭한 지점을 제쳐놓고 비주얼 연출 기법만으로도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탑건>

<탑건>

감독 토니 스콧│출연 톰 크루즈, 켈리 맥길리스, 발 킬머│109분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할리우드는 1980년대의 영광을 재연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훌륭했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고스트버스터즈>는 평이 갈렸다. 또 리부트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실패였다.

1980년대 할리우드에는 CG가 없던 시절이다. 모든 게 진짜였다. 몇 년 전 비행기에 매달렸던 톰 크루즈는 <탑건>에서도 직접 모든 것을 해냈다. 그전까지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던 그는 가와사키 닌자 GPZ900R를 직접 운전했다.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F-14 전투기의 조종석에 세 번 앉았다. 첫 비행에서만 토했다고 한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탑건: 매버릭>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개봉이 연기된 이때, <탑건>을 다시 봐야 할 매우 적절한 시점이다. 속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을까. 아직 보지 못했다면 꼭 <탑건>을 워치 리스트에 올리길 추천한다. 단지 속편 때문에 먼저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니다. 말했듯이 1980년대 할리우드는 진짜다.


<분노>

<분노>

감독 이상일│출연 와타나베 켄, 모리야마 미라이, 마츠야마 켄이치│142분

믿음과 불신 사이. 의심과 진실.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분노>가 보여주는 인간의 감정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무더운 여름 도쿄다. 평범한 부부가 무참히 살해됐다. 거기에는 피로 쓰여진 “분노”라는 글자가 남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연고를 알 수 없는 세 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우리는 그들을 믿거나 의심하게 된다.

치바의 항구에서 일하는 요헤이(와타나베 켄)는 딸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가 사랑하는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를, 도쿄의 샐러리맨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동거하게 된 나오토(아야노 고)를, 오키나와의 고등학생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무인도에서 만난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의 정체를 의심한다. 한편, 경찰은 용의자의 사진을 공개한다.

이상일 감독은 <악인>에 이어 요시다 쇼이치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분노>는 초반 살인 사건 자체를 다루는 척하다가 용의자로 의심되는 세 남자와 그들과 관계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누구를 의심하고 누구를 믿었든 상관없다. <분노>를 보면 두 가지 감정이 만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만들어진 어떤 울림을 느낄 수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

<나라야마 부시코>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출연 오가타 켄, 사카모토 스미코│130분

약간의 긴장감. 거장 감독의 영화를 보기 전에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까지 용기라고 불러도 좋을 마음가짐 같은 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혜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기로 마음 먹은 당신의 이야기다. 영화의 우열을 떠나 <탑건>과 <나라야마 부시코>를 볼 때는 분명 뭔가 다르다.

이마무라 쇼혜이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오시마 나기사와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평생 여성이 중심에 있는 생명력, 인간의 외설성과 원시성에 주목했다. 그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했다. 1983년 <나라야마 부시코>가 처음이고 두 번째는 1997년 <우나기>였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70살이 되면 자식에게 업혀 나라야마 정상에 버려지는 풍습이 이어져오는 마을이 배경이다.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1958년작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이마무라 감독은 여기에 원작자의 에로틱한 소설 하나를 더 끌고 들어와 스토리를 뒤섞는다. 약간의 긴장과 용기만 있다면 당신도 시네필이 될 수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