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중순 일본에서 개봉해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지난 1월 27일 뒤늦게 국내에 개봉했다. 욱일기 논란과 일본 불매 운동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먼저 공개된 <소울>과 함께 애니메이션임에도 침체에 빠진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원작 만화는 고토게 코요하루가 소년 점프에서 2016년부터 연재한 장편 데뷔작으로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오니(혈귀)에게 몰살당한 가족들의 복수를 위해, 오니로 변해버린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귀살대에 들어간 소년의 성장담을 담아낸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연마하고 수련하며 점점 더 강해져 빌런과 최종 대결을 벌인다는 전형적인 소년 점프식 배틀물의 구조를 따르는 <귀멸의 칼날>은 고전적인 작풍과 권선징악적인 테마를 가졌지만, 스피디한 전개에 고어에 가까운 비주얼, 파워풀한 액션 연출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12월, 23권을 끝으로 최종 완결됐다.
2000년대 들어 1억 부를 돌파한 만화는 <블리치>와 <진격의 거인> 단 두 작품뿐이었는데, <귀멸의 칼날>이 세 번째이자 가장 단기간에 1억 부를 넘긴 작품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애초 신인 작가의 첫 장편 연재물이라 아주 큰 화제를 불러온 작품은 아니었으나, 유포테이블에서 2019년 제작한 TV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역으로 원작의 인기가 불타올라 일본 내 사회적 신드롬 반열까지 올라섰다. 만화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유포테이블의 모든 역량을 갈아 넣어 만든 26화의 TV시리즈는 1권부터 7권 중반까지 얘기를 담아냈는데, 탁월한 스탭진들과 호화로운 성우진을 기용한 건 물론, CG와 3D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신과 화려한 비주얼을 구현해 극찬받았다. 뛰어난 완성도와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로 입소문을 탄 TV판은 각종 인기투표와 시상식을 석권하며 2019년 가장 큰 화제작이 되었다.
지브리를 넘어 일본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되다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은 당연히 커졌고, 곧바로 발표된 건 2기 시리즈가 아닌 극장판이었다. 1기에서 바로 이어지는 7권과 8권의 “무한열차”편을 다루게 되며, 애니메이션으론 드물게 아이맥스로 제작된다는 소식이었다. 코로나19로 각종 기대작들이 무너져버린 극장가 상황 속에 일본 넷플릭스에서 TV판이 런칭하고, 연재되던 원작이 마침 대단원의 결말을 향해 치닫는 타이밍마저 맞아떨어지며 (여기에 상술의 원조 국가답게 각종 한정 굿즈 공습까지 곁들어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역대급 신화를 세우게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난 19년간 가지고 있던 316.8억 엔을 넘어 368.8억 엔이라는 새로운 일본 영화사상 역대 최고흥행을 기록한 것이다. 개봉 첫날부터 24시간 상영에 가까운 40회 상영이란 진풍경을 연출하며 이상조짐을 보였던 열풍은 16주 차가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4년 전 화제를 모은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도, 누구나 다 “렛 잇 고~”를 불렀던 7년 전의 <겨울왕국>도 넘지 못한 지브리의 벽을 아주 가볍게, 그것도 최단기간으로 단축해가며 뛰어넘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흥행의 놀라운 점은 사전 정보 없이 원작 만화나 TV시리즈를 보지 않으면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중간 부분에 해당한다는 것과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스가 총리가 긴급명령까지 내린 상황 속에서도 관객 동원이 이뤄져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각종 할리우드 영화들을 제치고 애니메이션으론 최고 순위인 2020년 전 세계 흥행 수익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덕후를 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귀멸의 칼날’이 어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카지우라 유키와 시이나 고가 맡은 인상적인 음악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마마마, 소아온의 대모 카지우라 유키와 타이업 가수에서 거듭난 LiSA
<귀멸의 칼날>은 93년부터 see-saw란 유닛 활동하다 애니메이션 작곡가로 전업해 이름을 날리고 있는 카지우라 유키와 반다이 남코 소속으로 게임 음악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뤄낸 시이나 고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말이 협업이지 카지우라 유키는 TV판 엔딩곡과 주요한 5개의 테마곡, 극장판 주제가만 손댔고, 전반적인 작품의 BGM 설계는 시이나 고가 전적으로 도맡았다. 하지만 애니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OP/ED의 중요성과 그간 카자우라 유키가 이뤄낸 무시무시한 업적과 경력에 비춰본다면 이 테마들의 영향력도 만만히 볼 수 없다. <느와르>와 <아쿠에리안 에이지>, <닷핵>, <츠바사 클로니클> 등으로 주목받으며 애니메이션 음악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세워나간 그녀는 <공의 경계> 시리즈를 필두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와 <페이트/제로> 그리고 <소드 아트 온라인> 시리즈로 완전히 탑티어로 올라섰다.
대중음악으로 시작했던 이력답게 카지우라 유키는 무엇보다 송 메이킹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는데, 2002년 <기동전사 건담 SEED>와 2004년 <기동전사 건담 SEED DESTINY>의 노래들을 맡아 성공을 거둔 이래 여성 (성우를 포함한) 보컬들과 좋은 궁합을 보이며 수많은 주제가들을 완성해냈다. 이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에서도 솜씨를 발휘해 TV판의 OP '홍련화'와 ED '프롬 디 엣지(from the edge)'를 책임졌던 가수 LiSA와 다시 호흡을 맞춰 '화염(炎)'을 선보인다. '홍련화'로 2019년 오리콘 차트와 빌보드 재팬에서 최고 순위를 기록하고 처음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하는 등 생애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LiSA는 '화염'으로 오리콘차트 7관왕에, 트리플 플래티넘, 제62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며 <귀멸의 칼날>이 낳은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인물 중 한명이 되었다. 애니메이션 타이업 가수로 덕후들에게 유명했던 LiSA는 일반 대중에게도 유명한 가수로 거듭났다.
압도적인 청각적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시이나 고의 음악
카지우라 유키와 LiSA 듀오의 역대급 활약에 가려진 면이 있지만, 시이나 고가 담당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극반 음악은 바로 <귀멸의 칼날>의 백미다. <테일즈 오브 시리즈>와 <갓이터> 시리즈 그리고 <아이돌 마스터>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아이돌 마스터>가 애니로 만들어지며 뒤늦게 아니메 음악에 발을 들였다. 유포테이블과는 자신이 음악을 맡은 게임을 애니화 했던 인연으로 돈독한 교류를 이어왔는데, <귀멸의 칼날>에 이르러서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애절한 감수성에 최적화된 스코어를 적시적소에 뽑아내며 만개된 솜씨를 펼쳐 보인다. 다이쇼라는 시대극적인 배경과 오니와 대결이라는 판타지 및 괴기적 요소, 배틀물의 정석을 들고 온 성장담 등 모든 요소를 아우른 이 잡탕전골 같은 음악은 가히 모든 감정을 흡수하고 모든 비주얼을 커버한다.
호쾌한 심포닉 사운드를 필두로, 오니의 특성을 드러낸 기이한 여성 보컬(것도 일본어가 아닌 칸노 요코나 카지우라 유키처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계의 언어로 부른)에, 그레고리안 성가를 연상시키는 서양적인 색채, 감각적인 일렉트릭 사운드에 일본 전통 악기인 사쿠하치나 고토, 샤미센, 타이고 북 등 색채를 가미해 26화라는 분량 동안 여러 층위의 소리들로 복합적으로 구현한 화려하게 개성적인 스타일은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게임에서 다져진 실력이 발휘되는 건 배틀 씬에서인데, 긴박감을 자아내는 웅장하면서 열혈적인 소리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거머쥐게 만든다. 하지만 누구나 언급하는 19화의 '탄지로의 노래'에서 보듯 감정을 자극하고 폭발시키는 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이 놀랍고 경이적인 음악들을 따로 접하기는 불가능하다. 정식으로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술의 특전 그리고 귀멸의 미래
특이하게(라기보단 전형적인 상술에 가깝지만) <귀멸의 칼날> 사운드트랙을 듣기 위해선 완전생산 한정판 블루레이/DVD를 구매해야 한다. 한권에 2∼3화씩 담겨 총 11권에 이르는(일본 물리매체의 가격을 생각해본다면) 사악한 구성의 패키지인데, 여기에 카지우라 유키가 담당한 5곡의 테마가 담긴 1장의 앨범과 시이나 고의 사운드트랙 6장, 4장의 오리지널 드라마가 특전 CD로 담겨 있다. 이는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경우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한정판 블루레이/DVD가 출시되면 특전 CD로 사운드트랙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추후 2기 TV시리즈가 제작될지, 아니면 계속 극장판으로 만들어질지 아직 유포테이블 측에선 공개하지 않았지만, 어떤 식이 되었건 후속편은 분명 제작될 게 확실하며, 이 또한 엄청난 화제와 흥행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귀멸의 칼날>은 좋던 싫던 간에 일본 미디어의 흥행사를 바꿔버렸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