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소닉> 메인 예고편

<슈퍼소닉>은 90년대 최고의 록 밴드로 추앙 받는 오아시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1990년 아직 노엘 갤러거도 가입하지 않은 반쪽짜리 오아시스가 동네밴드로 꿈틀거리던 시절부터 1996년 8월 10일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만큼 어마어마한 관중을 끌어모은 넵워스 페스티벌의 공연까지 다룬다. 초음속(supersonic)처럼 뻗어올라가 마침내 록의 성지 영국을 집어삼킨 밴드의 영광을 기억한다.


첫 싱글 <Supersonic> 커버

오아시스의 첫 싱글명에서 이름을 빌린 <슈퍼소닉>은 매순간 오아시스만을 조명한다. 늘 라이벌 구도에 함께 오르던 블러 등 당시에 활동한 여러 뮤지션에 대해서는 일절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오아시스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세상 어느 논리에도 현혹되지 않을 것 같은 록스타 노엘과 리암 형제가 내뱉는 모든 말들 하나하나가 가슴에 콱 박힌다. 오랫동안 타블로이드들이 쏟아내온 가십들 때문에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노엘과 리암의 음악에 대한 열정적인 자세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맷 화이트크로스 감독은 익히 알려진 자료들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영상들을 그러모아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을 그득그득 채웠다. 레이블 크리에이션(Creation)과 계악하기 3년 전, '노엘 없는' 오아시스의 첫 라이브 흔적도 만날 수 있다. 그밖에도 리암 갤러거가 마약에 취한 채 무대에 올라 공연도 죽쑤고 노엘마저 잠적하게 만든 1994년 LA의 라이브, 오아시스의 대표곡 'Champagne Supernova'를 녹음하는 모습 등 진귀한 영상들이 즐비하다.

오아시스 원년 멤버. 왼쪽부터 노엘 갤러거(기타), 폴 '귁시' 맥기건(베이스), 리암 갤러거(보컬), 토니 맥캐롤(드럼), 폴 '본헤드' 아서스(기타)

<섹스 앤 드러그 앤 로큰롤> / <나인 송즈>

별의별 자료들이 등장하지만 <슈퍼소닉>은 산만함에 빠지지 않고 오아시스의 빛나는 6년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맷 화이트크로스는 록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섹스 앤 드러그 앤 로큰롤>(2010)을 연출하기 전, 젊은 연인의 적나라한 섹스와 아홉 밴드들의 공연 실황을 교차시킨 영화 <나인 송즈>(2004), 대중음악사상 가장 독창적인 뮤지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콧 워커에 대한 다큐멘터리 <스콧 워커 - 30세기 남자>(2006) 등의 편집을 담당한 바 있다. 수두룩한 영상들이 첨예하게 이어져 오아시스의 황금기를 단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이끄는 <슈퍼소닉>의 감각은 화이트크로스의 오랜 경력에서 비롯됐다.

노엘 갤러거와 맷 화이트크로스 감독

관객들은 <슈퍼소닉>에서 오아시스와 관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의 코멘트를 만날 수 있다. 노엘과 리암은 물론, 기타리스트 본헤드, 베이시스트 귁시, 심지어 밴드에서 쫓겨난 드러머 토니 맥캐롤까지 멘트를 보탰다. 오아시스를 최고의 위치로 끌어다올린 장본인인 음반사 크리에이션의 대표 앨런 맥기, 오아시스 명반들의 프로듀서 오웬 모리스 등 조력자도 빠지지 않는다.

다만 형식은 조금 다르다. 대개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가 차분한 배경에 단정하게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촬영해 배치시킨다면, <슈퍼소닉>은 화면에 펼쳐지는 자료화면을 보며 인물들이 오디오 코멘터리를 더하듯 말을 얹었다. 그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긴 하겠으나 장점도 뚜렷하다. 우선, 인터뷰를 더빙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더 많은 자료화면을 만날 수 있다. 해당 장면에 대한 인물들의 설명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학습 효과도 크다. 입문자에게도 그만이다.

하지만 더욱 반가운 점은, 2011년 완전히 갈라서 앞으로 영영 만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노엘과 리암의 멘트가 연이어 들린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의 멘트가 마치 한자리에서 자료화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듯 놓여 그 순간의 공기가 확연하게 전달된다. 노엘과 리암의 재결합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는 꽤나 반가운 방식이다.

리암과 노엘이 단란하던 한때

<슈퍼소닉>을 이루는 중요한 키워드는 '가족'이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과거 가운데 갤러거 형제의 가족사에 대한 부분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아시스가 노엘, 리암 두 갤러거 형제를 주축으로 한 밴드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방향. 보컬인 리암과 작곡가인 노엘은 팀 내 서로의 영향력을 늘 의식하며 점차 발전해나갔고, 그로 인해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곳곳에 화자로 참여한 어머니 페기 갤러거와 맏형 폴 갤러거는 형제의 애증이 아주 오래전부터 비롯됐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자란 노엘이 다섯 살 어린 리암의 탄생으로 그 관심을 뺏기면서 마음의 골이 생겼던 건 아닐까 짐작한다.

또한 갤러거 여사는 가정을 꾸려 대도시 맨체스터로 이사 왔을 때, 밴드를 한답시고 한량처럼 다니던 두 아들을 걱정하던 때도 회상한다. 유년시절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가 타블로이드로부터 돈을 받고 스타가 된 오아시스를 찾아왔던 일화를 전해주며 적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노엘이 "내가 신경쓰는 건 음악뿐"이라고 일축하는 반면, 리암은 어린 시절 당했던 폭력이 자신의 창작력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말한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6년의 시간 속에서 오아시스의 행보는 내내 오르막길이었다. 3년간의 무명 시절이 있긴 했지만, 유명 음반사 크리에이션과 계약한 이후로 순항하던 그들은 첫 앨범 <Definitely Maybe>(1994)로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앨범의 영광을 차지했고,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로는 단일 앨범 최다 판매고는 물론 온갖 시상식을 휩쓸며 자타공인 영국에서 가장 거대한 밴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노엘과 리암의 코멘트가 가장 기쁘게 들리는 순간은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할 때가 아니라)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에 실릴 곡을 만들고, 2주 간 홀린 듯이 레코딩을 마친 시기를 회고할 때다.

1996년 브릿 어워드에서 그룹, 앨범, 비디오 3관왕을 차지한 오아시스

<슈퍼소닉>은 그 시기 그들이 누렸던 기쁨만큼이나 그 이면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노엘의 날선 태도를 대차게 물어뜯는 언론, 지칠대로 지친 심신으로 밴드를 떠나려고 했던 베이시스트 귁시, 실력 부족으로 쫓겨난 드러머 토니가 밴드를 고소한 사연 등 여러 난관들이 따라붙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엘과 리암이 풀 죽은 목소리로 록스타의 허무함을 토로하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은 이러한 곤경조차 그저 인생의 일부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그 순간들을 기억해낸다. 코멘트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못 이어 정적이 흐르는 다큐멘터리의 클리셰 같은 건 없다.


1996년 넵워스 공연 포스터

<슈퍼소닉>은 넵워스 공연 실황과 함께 열고 닫는다. 1996년 8월 10일 영국 하트퍼드셔 주 '넵워스 하우스'에서 펼쳐진 이 공연에는 25만명이 몰려들었고, 무려 350만 명(영국 인구의 4%) 이상이 이 티켓을 구하고자 했다. 오아시스의 황금기에 초점을 맞춘 <슈퍼소닉>의 처음과 마지막을 이 라이브가 장식하는 건 아주 당연하다. 그들이 가장 거대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공룡 밴드였고, 걸출한 앨범들도 발표했어도, 그때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리암은 무대에 서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고 말하지만, 넵워스의 그 어마어마한 인파 앞에선 그의 얼굴은 분명 더 격앙돼 보인다. 큰 화면, 큰 소리로 그 현장을 만끽하길 권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