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자전거를 잘 타셨다. 일평생 자식들 키우고, 서울로 유학 온 친척 조카들 챙기고. 집안에 환자 병수발 하느라 생애 가장 젊은 날들을 속앓이로 보내신 어머니는, 늦둥이 막내인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그 오랜 퀘스트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셨다. 돈 아깝다고 밖에서는 커피 한 잔 사 먹는 것도 두려워하시던 양반이 덜컥 모아두었던 여윳돈을 탈탈 털어 고가의 자전거를 사는 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 동안 하고 싶었는데 못 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저럴까.
눈비가 몰아치는 날만 아니면 어머니는 자전거를 몰고 방화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왕복을 하시곤 했다. 날이 좋고 함께 타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팔당대교까지 다녀오시곤 했는데, 그 거리를 잠깐 속으로 생각하다가 금세 아찔해진 나는 어머니를 만류하기도 했다. “아니, 그 거리를 한번에 다녀오면 엄마 무릎 상해.” 그럴 때면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은 더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은 아예 안장을 떼고 내내 일어서서 페달을 밟으시더라고. 그래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나오셨다는데….” “엄마,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사람하고 엄마를 비교하면 안 되지.” 걱정은 됐지만, 아들이 얼마나 만류하든 자전거로 서울을 횡단하고 난 뒤에도 다음 날이면 벌떡 일어나 다시 자전거에 오르시는 어머니는 행복해 보였다.
70세의 어느 날,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발레를 향한 꿈을 기억해 낸 심덕출(박인환)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tvN 드라마 <나빌레라>를 보며 나는 반사적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물론 발레와 자전거 타기는 엄연히 다르다.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자전거와 달리, 발레는 엄청난 훈련량과 근력을 필요로 한다. 심덕출씨네 가족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발레복이 창피하고 춤바람 났다고 수군대는 외부의 시선이 부끄럽다며 발레 도전을 뜯어말렸지만, 어머니의 라이딩복 차림을 흉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나 또한 어머니가 뭐라도 즐거운 일을 찾았다는 사실이 퍽이나 반가웠다. 심덕출씨의 발레와 내 어머니의 라이딩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핑계로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는 대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더 전심전력으로 달려드는 모습만큼은 퍽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콩쿠르를 앞두고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있던 상태에서, 심덕출씨가 자꾸 다음 동작을 알려 달라고 재촉하자 채록(송강)은 버럭 화를 낸다. 자신은 발레에 모든 걸 걸었는데, 이 일에 자신의 미래가 걸렸는데. 취미 삼아 설렁설렁 배워도 되는 할아버지가 왜 자꾸 부지런을 떨고 진도를 나가자고 하는 걸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어머니의 라이딩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나만 해도, 어머니가 보급형 자전거를 타다가 그 자전거를 처분하고 고가의 초경량 자전거로 갈아타셨을 때 잠시 놀라며 ‘뭘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열정과 몰두와 헌신이 젊음만의 특권일까? 나도 아직 늙어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어쩌면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마음에, 이 즐거운 일을 하루라도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에 젊은이들보다 더 간절할지도 모를 일이다. 채록이 화를 내는 걸 가만히 듣고 있던 채록의 스승인 승주(김태훈)는 채록을 따로 불러내 말한다. “물론 다르지. 너하고 어르신은. 하지만 발레를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 네가 더 크다고 확신할 수 있냐고.” 승주가 맞다. 그 간절함을 무슨 수로 잴 것이며, 내가 더 간절할 것이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랴.
우리는 막연하게 어른에게는 배움을 기대하고 젊은이에게는 열정을 기대한다. <나빌레라>에선 그 고정관념이 반 뼘쯤 뒤틀린다. 심덕출씨는 한참 어린 승주와 채록에게 발레를 배우고 싶어 고개를 숙이며 배움을 청하고, 채록은 그런 심덕출씨로부터 무대 위로 날아오르고 싶다는 열정을 옮는다. 그렇게 이 연상연하의 사제는 함께 춤선을 맞추며 조금씩 닮아간다. 어쩌면, 무언가를 정말로 사랑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일에는 나이가 큰 상관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정도, 배움도.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어머니 이야기로 마무리해보자. 수 년 전 수술을 한 뒤로 한동안은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지 못하던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다시 조심스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셨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예전처럼 높은 프레임의 자전거에 오르기가 부담스럽다는 어머니는, 가지고 계시던 고가의 자전거를 처분하고 보급형 자전거로 옮겨오셨다. 그리고 그 보급형 자전거를 타고도 어머니는 방화대교에서 여의도까지 거뜬하게 왕복을 하시고, 그 날의 라이딩이 어땠는지 내게 들려주신다. 오늘은 안양천변에 벚꽃이 참 많이 피었던데, 자전거로 달리면서 보는 광경이 참 좋더라. 내가 저번에 산 손목에 차는 백미러는 아무래도 좀 불편해서, 새로 프레임에 백미러를 달아야겠더라. 안장 높이를 조절한 게 아무래도 좀 불편해서, 다시 좀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아들과 전화통화만 하면 그 날의 라이딩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전화를 끊을 줄 모르시는 나의 어머니는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 다섯. 그리고 내 어머니는, 내가 아는 자전거 라이더 중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