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과 추적자의 쫓고 쫓기는 관계는 범죄물의 기본 공식이다. 악랄한 범죄자와 죽음은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며 어두운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잔혹하게 타인을 해치는 살인마의 정체에 호기심을 갖고, 그를 추적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을지 집중하며 사건을 따라간다. 보통 범죄 드라마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범인의 정체를 꽁꽁 숨기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처음부터 대담하게 공개하고 주인공과 묘한 공조 체제를 형성하며 예측불허의 재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잔인한 살인범은 추적자를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의 근원이면서도 의외의 도움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적대적이지만 쉽게 속단할 수 없는 관계를 이루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갈등과 대립이 주요 서사로 자리한다. 추적자와 범죄자의 복잡다단한 관계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소개한다.
프로디걸 선(Prodigal Son)
사이코패스 유전자는 물려받는 것일까? <프로디걸 선>은 연쇄살인마 아버지를 둔 프로파일러가 범죄자처럼 생각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주인공 말콤은 아버지를 혐오하면서도 살인 본능을 물려받지 않았을까 두려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올곧은 신념으로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곧잘 즉흥적인 행동으로 주변의 오해를 산다. 반면, 정신병원에 수감 중인 아버지 마틴은 어떤 죄책감도 보이지 않은 채 능청스럽게 굴며 바깥세상과 유일하게 연결된 아들에게 강한 집착을 보인다. 드라마는 각종 잔혹한 사건을 쫓는 수사 과정에 애증으로 얽힌 부자의 아이러니한 공조 관계를 배치해 기존 수사물과 다른 신선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복잡한 가족사는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시즌 1 후반부에 동생 에인슬리가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등장하면서 새 국면을 예고했다. 이후 이야기를 다룰 <프로디걸 선> 시즌 2는 캐치온을 통해 독점 공개된다.
사마귀(La Mante)
넷플릭스 프랑스 드라마 <사마귀>는 과거의 연쇄살인을 모방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프로디걸 선>처럼 연쇄살인범 부모와 형사 자녀의 갈등을 중심축에 내세우는데, 어머니와 아들이 그 주인공이다. 25년 전 (폭력 문제가 있는) 남성 8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복역 중인 잔은 자신의 수법을 따라 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먼저 도움을 자처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아들인 형사 다미앵을 수사에 참여시킬 것. 그런데 잔이 수사공조를 요구한 다미앵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했으면서도 살인범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아이를 거부할 만큼 어머니를 증오하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좀처럼 의중을 알 수 없는 잔과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합류한 다미앵의 삐걱거리는 관계 속에 모방범의 정체와 어두운 가족사에 다가선다. 제목인 ‘사마귀’는 연쇄살인범 잔의 별칭이다.
한니발(Hannibal)
<한니발>은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에 느슨하게 바탕해, 잔혹한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와 프로파일러 윌 그레이엄의 관계에 집중한 심리 스릴러다. 윌은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 뛰어나지만, 그에 따른 심리적인 내상이 크다.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FBI 요원 잭 크로포드의 요청으로 살인사건에 참여하고, 한니발 렉터 박사를 만나면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휘말린다. 이유는 당연히 한니발 렉터 때문이다. 겉보기엔 우아함이 뚝뚝 흐르는 렉터 박사는 모두가 알다시피 카니발리즘을 즐기는 살인마다. 윌은 심리치료를 위해 만난 한니발에게 교묘하게 조종당해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렉터 박사는 살인범에 공감하는 윌의 능력에 매료돼 그를 갈구하며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다. 두 사람의 진한 감정선이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현재 왓챠에서 시즌 3만 서비스 중이다.
천국과 지옥 ~사이코 두 사람~(天国と地獄〜サイコな2人〜)
지난해 개봉한 영화 <프리키 데스데이>는 소심한 고교생과 사이코 살인마가 몸이 바뀐다는 설정으로 흥미를 자아냈다. <천국과 지옥 ~사이코 두 사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형사와 살인마가 영혼 체인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덤벙대는 성격 때문에 주변 동료에게 기피 대상으로 찍혔지만, 사명감과 의욕만큼은 최고인 형사가 능력을 증명하고자 살인사건 범인으로 의심스러운 벤처기업 대표를 추적하던 중 사고를 당해 몸이 바뀐다는 내용이다. 여자에서 남자로, 형사에서 용의자로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집히면서 두 사람의 대결 구도는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살인자의 몸에 갇힌 열혈 형사 모치즈키는 이대로 체포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진실을 추적하려 하고, 반면 형사가 된 용의자 히다카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듯 여유를 보이며 또 다른 사건을 계획한다. 배우들의 연기에 비해 연출이 아쉽다는 평이 있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로 두 사람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왓챠에서 매주 1편씩 공개된다.
킬링 이브(Killing Eve)
<킬링 이브>의 주인공 이브와 빌라넬은 적대관계로 평행선을 그리면서도 상대방에게 호기심을 보인다. MI5의 보안 요원 이브는 (본인 기준) 재미없는 일을 도맡고 있지만, 범죄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더 큰 무대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바라던 기회는 잔인한 사건과 함께 찾아온다. 그가 보호 중이던 목격자가 무참히 살해당한 것(그 이후에도…). 범인은 좀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전문 킬러 빌라넬. 이브는 인내를 갖고 살인범의 정체를 추적하며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고, 빌라넬은 자신을 찾으려는 이브를 도발하며 점차 그의 인생에 스며든다. 시즌 1이 다르게 살아왔던 두 사람이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다른 세상을 보는 과정을 담아낸다면, 시즌 2는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서로의 견고한 세계를 확인하는 모습을 그린다. 시즌 3은 팽팽한 긴장 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두 사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탐구한다. 왓챠에서 서비스 중이다.
루터(Luther)
사이코패스 살인마와의 두뇌게임을 그린 드라마를 말할 때 <루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드리스 엘바와 루스 윌슨의 긴장감 넘치는 케미스트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하며 시즌 5까지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신하균 주연의 <나쁜 형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루터는 지치고 거친 형사의 표본 같다. 항상 일이 우선이고, 사건에 몰두하면 정도를 지나치기도 한다. 부부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딸 앨리스를 의심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똑똑한 살인자인 앨리스는 루터를 도발하고 유혹하며 그에 대한 비이성적인 관심을 드러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앨리스는 루터의 숙적이 되기도 하며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특히 루터와 별거 중인 조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도우면서 그의 삶에 깊숙이 개입한다. 루터와 앨리스의 기묘한 관계성은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한다. 왓챠,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이다.
나쁜 아이들(隱秘的角落)
<나쁜 아이들>(원제: 은비적각락)은 살인범과 아이들의 위험한 심리게임을 다룬 드라마다. 기존 범죄물이 살인범과 수사관의 대결 구도에 집중했다면, <나쁜 아이들>은 우연히 살인을 목격한 아이들이 범인을 협박한다는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오프닝은 근래 나온 드라마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섬뜩하다. 예상치 못한 완전 범죄로 혼을 빼놓고, 건너편에서 이를 목격한 세 아이가 집과 사회에서 소외된 현실을 비추며 의도치 않게 범죄에 휘말리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무관심과 이기심에 방치된 아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고, 수세에 몰려 나쁜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인간이 가진 양면성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웨이브, 티빙, 왓챠에서 서비스 중이다.
에그테일 에디터 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