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2003)은 대학교수로서 사형제도 폐지론자인 남자 주인공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이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무혐의를 받았으나, 그 후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같이하는 동료 교수 콘스탄스(로라 리니)를 성폭행하고 살인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집행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기자(케이트 윈슬렛)와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풀어가는 것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1. 강간죄로 억울하게 고소를 당했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데이비드 게일은 철학과 교수인데 제자 벨린이 점수를 잘 받으려고 성적으로 유혹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 후 대학 파티에서 게일은 벨린을 만나 퇴학당했다는 것을 들었고, 술에 취한 게일은 파티가 열리고 있는 집의 화장실에서 벨린의 유혹에 넘어가 성관계를 하게 됩니다. 그 후 게일은 벨린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는데, 결국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교수직에서 물러나고 그가 쌓아온 사회적 명예가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게일이 벨린과 성관계를 한 사실은 있지만 강간은 아니고 합의 하에 했으므로 화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벨린은 게일을 강간죄로 고소했는데, 이 경우에 게일은 우리나라 법에 의한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요. 게일은 형법상 강간죄로 고소를 당했는데, 증거는 벨린의 몸에서 검출된 게일의 체액, 관계를 할 때 벨린의 요구로 게일이 벨린의 오른 어깨를 치아로 물었던 자국, 역시 벨린의 요구로 게일이 찢은 벨린의 속옷입니다.

(우리나라 법상)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법원 판례는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하고, 그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관계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게일의 변호인은 위와 같은 기준에 따라 게일과 벨린의 성관계 당시에 게일이 벨린한테 폭행·협박의 유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주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벨린의 몸에서 게일의 체액이 검출된 것은 성관계를 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므로 설명이 가능합니다(사실 체액이 나왔는데 성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실무상으로도 무죄를 다툴 때에는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주로 주장합니다). 그리고 벨린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상처와 찢어진 속옷에 대해서는, 만약 게일이 벨린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행사하여 어깨에 상처가 났거나 속옷이 찢어진 것이라면, 벨린의 다른 신체 부위에도 그와 같은 유형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심한 상처가 났어야 하고, 다른 옷도 찢어지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려고 폭행을 행사하고 속옷을 찢었는데도 어깨 외에 몸에 상처가 없다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죠. 또한 벨린의 어깨에 있는 상처가 단순히 멍이 든 것이거나 치아 자국이 난 정도에 불과하다면 이 정도는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수 있는 폭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관계 후 벨린과 게일이 파티에 계속 머물렀는지 여부, 그 후에도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여부 등의 정황도 게일한테 유리한 내용이라면 주장해야 합니다.

영화에서 게일은 무혐의를 받았으므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의할 경우) 게일은 수사단계에서 수사를 해봤더니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등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게일은 불기소처분으로 수사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된 것이고 형사재판까지 간 것은 아닙니다. 게일은 비록 무혐의를 받았지만 제자로부터 강간죄 고소라는 피의사실만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되었고 가정도 파탄 나는 등 그가 쌓아온 사회적 지위와 생활이 무너졌습니다. 게일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게일은 벨린을 상대로 무고죄로 고소할 수 있고, 피해의 완전한 회복은 안 되지만 벨린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2. 사형제도가 생명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게일은 콘스탄스를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사형선고 후 6년이 지나 게일에 대한 사형집행 일자가 정해졌고 게일은 여자 주인공인 잡지사 기자 빗시 블룸(케이트 윈슬렛)과 인터뷰를 하겠다고 요청하여 빗시는 사건의 실체에 대하여 게일을 인터뷰합니다.

게일은 사형제도 폐지론자인데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는 살인죄를 비롯하여 중대한 범죄에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고, 게일은 강간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므로 사형이 가능합니다. 사형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므로 헌법상 보장된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불법적 효과로서 지극히 한정적인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따라서 사형은 이러한 측면에서 헌법상의 비례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 할 것이고, 적어도 우리의 현행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이기도 하므로 아직은 우리의 헌법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아니한다’라고 결정이유를 밝히면서 사형제도에 관하여 합헌 결정을 하였고 현재도 사형제도에 대한 합헌 결정은 바뀌지 않았으나,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면위원회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게일은 콘스탄스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사형제도의 오판 가능성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사형제도 폐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콘스탄스와 합의 하에 콘스탄스가 살해된 것처럼 꾸민 후 자살을 한 것이고 그 과정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서 증거로 남겨 두었습니다. 이에 의하면 게일은 콘스탄스에 대한 강간살인죄는 무죄이나 적어도 콘스탄스에 대한 자살방조 또는 자살교사는 성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