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중아(이나영)는, 오빠가 IRA(Irish Republican Army)에 연루되어 눈 앞에서 온 가족이 보복살해 당하는 광경을 보고 트라우마에 휩싸인다. 가족과 다른 피부색, 다른 외모를 지닌 덕분에 중아는 저들의 가족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 참극을 모면할 수 있었는데, 눈 앞에서 죽어가는 가족을 부인했다는 죄책감이 자신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까진 모면할 수 없었다.
말 못 할 고통을 속으로 삼키던 중아는, 죽으려고 한국에 왔다가 경호일을 하는 국(현빈)을 만난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외롭게 성장한 국은, 아프고 흔들리는 사람을 지켜주는 것에서 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연민할 상대를 찾는 남자가 가족을 잃고 죽으려 한 여자를 만났으니, 좋은 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지만, 온전히 자기 힘으로 설 수 있길 바랐던 중아는 자꾸만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서 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국이 점점 불편해진다. 이 관계 안에서는, 그저 국에게 부축을 받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헌신적으로 중아의 곁을 지키며 중아에게 맞춰가려는 국을 착한 사람으로, 관계 안에서 정주하지 못하고 결혼 관계 바깥의 세계를 모색하는 중아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국은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치유해야 하는 숙제를, 남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로 덮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반면 중아는 자기 자신의 죄책감과 불안을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간절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두 사람이 천천히 이별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세상의 많은 드라마들은 남남이었던 이들이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고 기대며 ‘결혼’이나 ‘연인’ 같은 명확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인정옥 작가가 집필한 2004년작 <아일랜드>(MBC)는 다르다. <아일랜드>는 명확했던 ‘관계’가 형해화되고, 모두가 개인이 되어 선 자리에 남은 ‘행위’를 바라본다. 가족이 되었던 국과 중아는, 극이 끝나면 각자 전남편과 전부인이 되는 자리로 간다. 물론 중아의 뱃속에 자라고 있는 국의 아이가 있으니,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서로 챙기며 살 것이다. 관계를 정의 내려 줄 단어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독립된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는 행위만 남는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중아를 어린 시절 생활고로 입양 보낸 딸 ‘정아’라고 생각했던 부자(이휘향)는, 유전자 검사 결과 불일치한다는 중아의 말을 듣고는 중아의 손을 놓으며 정을 떼려 노력한다. 그러나 남편 성만(김인태)을 잃고 아들 재복(김민준)도 자신을 떠나 홀로 남겨진 뒤에도 여전히 자신을 찾아와 밥을 나눠 먹고 자신과 대화를 나눠주는 중아가, 부자는 못내 살갑다. 그런 중아에게 부자는 “다시 엄마 할까?”라는 말을 건네지만, 중아는 부자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젠 엄마도 뭐도 아닌 ‘아주머니’와 ‘아가씨’ 관계, 그럼에도 독립된 개인들이 서로 챙겨주는 행위는 남는다. 부자는 중아의 품에 안겨서 “나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 울음을 터트리고, 중아는 그런 부자를 “재복이가 돌아올 때까지 아주머니를 지키겠다”는 말로 보듬는다.
혹시나 친남매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중아를 향한 사랑을 주저했던 재복은, 이제 중아와 그 무엇도 아닌 관계가 된다. 재복은 이혼한 중아의 곁에 가서 서지도 않고, 자신의 가장 초라했던 한 철을 함께 해준 시연(김민정)의 곁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남들이 모르는 시골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밤에는 혼자 정형외과 서적을 탐독하며 중아의 세계를 공부한다. 더는 연인도, 어린 시절 헤어졌던 남매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관계의 자리에서도 재복은 당당하고 행복하다. 중아 덕분에 마침내 혼자 힘으로 서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 중 상당수는 끊임없이 안정적인 관계를 갈구한다. 상대와 나 사이의 관계가 지금 어떤 관계인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하고, 어디까지가 내 사람이고 어디서부터는 내 사람이 아닌지 경계선을 긋고, 내가 누리고 있는 관계를 타인들의 그것과 비교하며 행복의 크기를 잰다. 하지만 어쩌면 본질은 관계를 정의할 단어가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안에서 ‘나’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떻게 서 있는가 인지도 모른다. 혈연이나 결혼 관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소통이 이루어지는지,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일일 테니까.
17년 전 방영되었던 <아일랜드>는, 놀랍게도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구석 투성이다. 안정적인 관계를 깨고 밖으로 나도는 사람들과, 자신의 외로움과 고통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대신 아무 양해를 구하지 않고 던져대는 이들이 가득한 작품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아일랜드>가 건네는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마다 제각각인 섬 사이를 메워 뭍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섬이 섬인 채로 섬과 섬 사이를 어떻게 오갈 것인가가 중요한 일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