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정환이 사람들의 뜻을 모아 어린이날을 처음 제정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선의 어린이들의 삶은 참담했다. 영유아 사망률은 오늘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았으며, 소학교 취학률은 높았으나 중등학교 취학률은 낮았다. 조선총독부가 학교 인가를 통제한 결과였다. 그 결과 노동현장에서 인력으로 활용할 만큼은 교육을 받았으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교육받지는 못한 이들이 늘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은 아예 학교에 가지 못하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었고,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뛰어든 1930년대 말부터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노역에 동원되었다. 소학교 학생은 낫을 들고 논에 나가 낫질을 했고, 중학교 학생들은 군사훈련을 받은 뒤 졸업 직후 전선으로 끌려갔다. 소파는 1931년 세상을 떠났으니 어린이들이 태평양전쟁 전선으로 끌려가는 꼴까지는 보지 않았다. 소파에게 다행인 일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어린이를 잘 부탁한다는 자신의 유언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무너졌으니 불행인 일이라고 해야 할까.

1922년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99년이 지났다. 다행히도 그 99년 동안 세상은 진보했다. 의학과 복지의 발전으로 영유아 사망률은 경이로울 만큼 감소했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을, 고등학교 또한 2021년부터는 전 학년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어린이집과 유치원, 키즈카페 등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들이 설치되었다. 그렇다면 우린 정말 소파가 꿈꿨던 대로, 어린이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세상에 도착한 걸까? 글쎄, 잘 모르겠다. 학업 스트레스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초등학생들이 뉴스 사회면에 등장하고, 아동청소년 우울증 유병률은 진작에 두 자릿수에 도달했다. 아동노동을 엄금한다면서도 현장실습을 핑계로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이 노동착취를 당하는 건 방치한다. 스포츠계와 문화예술계에선 엄격한 위계질서와 군기를 핑계로 성폭력과 가혹행위를 저질러왔던 이들에 대한 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가정에서, 보육시설에서, 학원에서, 연습실에서, 세간의 눈이 잘 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는 근절되지 않는다. 아직, 소파가 꿈꿨던 그 세상은 오지 않았다.

2018년 말 MBC에서 방영된 <붉은 달 푸른 해>(2018~2019)는 아동학대 문제를 정면으로 들여다본 작품이다. 살가운 딸이자 자상한 엄마였고 아동심리상담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꾸려가던 우경(김선아)의 삶은, 어느 날 운전 중 차도 한 가운데 갑자기 뛰어든 아이를 피하지 못하고 차로 치면서 뒤틀리기 시작한다. 분명 자신의 눈 앞에 갑자기 뛰어든 아이는 녹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였는데, 사고로 사망한 아이는 소년이다. 죽은 소년이 자신의 아이라고 나타나는 보호자도 없어서 사과를 구할 사람도 없어진 막막한 상황, 우경은 이제 죽은 아이의 유품을 단서로 진실을 추적하는 동시에 자신의 앞에 환영으로 등장하는 녹색 옷을 입은 소녀의 정체도 알아내야 한다. <붉은 달 푸른 해>는 우경이 이 녹색 옷을 입은 소녀의 정체를 밝혀 나가는 과정과, 형사 지헌(이이경)과 수영(남규리)이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아동학대의 어두운 진실을 파헤친다.

연쇄살인의 피해자들은 공교롭게도 아동학대의 가해자였고, 피해자가 사망한 후 역설적으로 피해자의 아이는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되었다. 갖가지 이유로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경과 지헌은 번민한다. 개인이 타인을 심판할 순 없다. 내가 뭐라고. 살인은 의문의 여지 없이 나쁜 행동이다. 그런데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손이 많이 간다고 외면당하고, 귀찮다고 밀쳐지고, 시끄럽게 운다고 맞고, 성적이 안 좋다고 감금당하고…. 우경은 살인은 악한 행위라고 말하면서도,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에게 심정적으로 공감한다. “아이들 눈 앞의 어른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큰 세상이에요. 특히 부모는, 온 세상이자… 우주예요. 그 우주가 달려들어 아이들한테 공격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그것보다 잔인한 게 어딨어요?”

2005년부터는 ‘어린이 주간’이란 게 새로 생겼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가운데 두고,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를 ‘어린이 주간’으로 삼아 그 기간 동안 ‘아동의 권리 및 아동 복지 증진을 위한 국민의식을 제고’한다는 게 목표다. 그래서 이 어린이 주간과 어린이날이 제정 의도대로 잘 기념되고 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올해는 또 무슨 선물을 해줘야 군소리를 안 들으려나 걱정하는 정도면 다행이고, ‘우리 안의 어린이에게도 잘 해주자’는 핑계로 ‘어른이’라는 이름 하에 어린이날의 주인공 자리마저 착취해가는 어른도 한둘이 아니니까. 소파가 처음 어린이날을 만들 때, 1년에 딱 하루 어린이들에게 값비싼 물건을 선물해주고 대충 생색내는 것으로 면피하라고 어린이날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날, 어린이들에겐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상기시켜주고,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무사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는지 뒤돌아보라는 게 목적이었겠지. 나는 아직 <붉은 달 푸른 해>를 안 본 어른들이 있다면, 시간을 쪼개서 한 번쯤 그 작품을 차분하게 정주행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 눈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온 우주일 우리는, 과연 관대하고 따뜻한 우주인지 돌이켜 봤으면 좋겠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