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밤새우고 왔어요”라며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작보고회를 포함해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고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도 그는 지친 기색 하나 없었으니까. 지치긴커녕 함께 출연한 탕준상과 호흡을 주고받으며 인터뷰를 리드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작품에 대한 애착과 현장에서의 책임감을 읽을 수 있었다. 딱 알 수 있었다, 배우 이제훈은 확실히 프로라고 부를 만한 배우임을.
이번에 선보이는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에서 그의 변화만 봐도 프로의식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이제 막 출소한 전과자이자 불법 파이터 조상구를 연기하기 위해 그는 테일컷의 헤어스타일과 탄탄하게 다져진 근육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내면에선 이미 지난 과거를 상처로 품고 있는 조상구의 캐릭터를 놓치지 않았다. 5월 12일, 최근 드라마 <모범택시>의 상승세 속에서 곧바로 <무브 투 헤븐>으로 돌아온 이제훈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그 자신의 마음을 소탈하게 들어봤다.
보통 캐릭터에 대한 질문을 가장 먼저 하는 편인데 <무브 투 헤븐>은 작품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이 질문을 먼저 드리겠다.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 그런 무게감. 이런 부분이 내게 있어 크게 와닿았다. 기자님이 (드라마를) 봤을 때의 그 마음을 나는 시나리오를 볼 때 느꼈다.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 저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와닿아야 캐릭터를 맡을 수 있다. 이야기가 좋다면 그 어떤 캐릭터도 할 수 있는 마음과 의지를 갖는 편이다. 우리가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상실과 슬픔,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치유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로 빚어진 작품이라 그래서 공감이 많이 갔었고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면 너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이거는 봐야 할 작품, 내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꼭 보고 싶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좋은 작품에 나올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하고 이런 이야기를 넷플릭스로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크다. 이런 휴먼 드라마를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촬영 전엔 이미 대본이 전부 나와있었나.
작가님께서 대본을 다 완성해서 주셨다. 작품을 받고 선택할 때 보통 고민의 시간이 있을 텐데, (이번 작품은) 정말 짧았다. 읽고 이틀 후에 감독님과 제작사 대표님을 만나서 바로 (출연 결정을) 끝냈던 것 같다. 작품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짧았던 작품인 것 같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외에도 유품정리사 자료 중 참고한 것이 있다면?
이전에는 유품정리사에 대해 저도 잘 몰랐는데, 책이나 관련 동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일본 영화 중 <굿바이>라는 작품이 생각났고,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통해 유품정리사가 겪는 과정과 고인을 떠나보내고 유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의 간접적인 체험을 하게 됐다. 허구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시나리오였고, 작가님께서도 그런 부분을 참고하고 쓰셨다고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무브 투 헤븐>은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각 인물들의 서사가 담겨있기도 하고. 세트장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상구가 '무브 투 헤븐'에 와서 첫 출근을 하게 됐을 때 2화의 첫 세트장. 돌아가신 할머님의 공간.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게 세트장을 구현해주신 미술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렇게 외롭게 살다 돌아가신 분들의 모습이란 걸 간접적으로 본 거 같다. 나에겐 직접적으로 다가왔고, 너무 안타까웠다. 외롭게 살다 돌아가신 분들과 결국 이대로 방치가 돼 남겨지게 된다는 부분 또한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그분들의 자리를 정리해주고 그분들의 마음을 대신해 다른 유족들이나 지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품정리사는 고마운 직업이구나 느꼈다. 상구가 그곳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데, 냄새나 환경 때문에, 그게 우리가 느낄 법한 리액션이지 않나. 그게 고독사하신 분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 이런 게 많이 떠올랐다.
워낙 동안이라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루 역의 탕준상 배우와 나이 차이가 있는 편이다. 혹시 현장에서 세대 차이 같을 걸 느낀 적 있나.
같은 세대라고 하겠다(웃음). 준상이가 붙임성이 많고 저를 편한 형으로 대해줘서 오히려 제가 연기하는 데 거리낌 없이 그루를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날 어려워하고 '선배님' 이러면서 대했으면 그루와 상구의 케미스트리가 그렇게까지 빛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준상이가 저를 잘 따라주고 좋아해 줘서, 내가 그런 걸 많이 느꼈을 정도로 촬영장이 즐겁고 행복했다.
방금 영상 인터뷰 때도 두 분의 모습이 꼭 형제 같다. 나무 역의 홍승희 배우와는 감정적으로 많이 붙는데, 어떻게 호흡을 맞췄나.
홍승희 배우도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난 친구인데, 내적으로 준비가 많이 돼 있었다. 현장에서도 당당하고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부분이 '이 친구는 더 잘 되겠네'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이 선보이기 전부터 <나빌레라>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보여주는 모습에서 확실히 준비돼있고 연기에 대한 열정과 진심인 친구들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 친구들은 주인공이란 입장이 부담될 수도 있을 텐데 너무 잘 해줘서 참 좋았다.
초반만 봐도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전작 <도굴>에서 만난 임원희 배우가 기억에 남는데,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애연 선배님도 마담 역으로 저와 티격태격하는데 현장에선 서로 많이 웃고 떠들고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원희형은 (<도굴> 때) 서로 다른 캐릭터로 하다가 이번 <무브 투 헤븐>에서 변호사와 깡패 같은 캐릭터로 만나니까 색달랐다. 함께 작품하고 싶었는데 바로 만나게 돼서 너무 좋았고. 이문식 선배님 작품을 어렸을 때부터 봤는데, 선배님의 이런 동물적인 감각, 직관적인 표현들이 왜 이렇게 내 마음에 와닿지 하면서 항상 인상적이었고 작품을 통해서 만났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번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캐릭터로서 상구와 만나게 돼서 옆에서 보면서 많이 느끼고 배웠다. 기억에 많이 남는 선배님이다.
이제 상구 캐릭터에 대한 질문을 하자면, 가장 눈에 확 들어온 건 테일 컷이었다.
제작진이 처음 생각한 머리는 짧은 스포츠머리였다. 개인적으로 배우 이제훈으로서는 작품마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 부분에서 단순히 깔끔하게 짧은 머리로 상구를 표현하기에 재미가 덜하다고 생각했다. 지저분하고 거칠고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비주얼로서, 그런 부분을 상상했다. 그래서 그런 헤어스타일이 떠올랐다.
직접 고른 스타일인 셈이다.
그런 셈이다. 수염도 그렇고 왜 굳이 이런 지저분한 인물을?(할 만큼) 전체적으로 비호감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루라는 인물이 있기 때문에 상구를 대비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 부분은 사람들이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서 변화해가는 상구를 바라봐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 등장할 때 안하무인한 상구의 모습들이 '무브 투 헤븐'과 유품정리 일을 통해서 변화하는 모습.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내적인 부분이 변화하는 거다. 그런 편견의 시각을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외적으로 헤어에 수염에 잘 씻지도 않을 듯한 모습에, 의상들도 믹스 매치로 생각했다. 화려한 프린트에 야상을 걸치고, 이런 부분은 내가 많이 생각하고 연구해서 보여드리고 싶었던 부분이다.
상구가 극중 파이터다. 그래서 운동을 한 게 드라마에서도 정말 티가 많이 났다. 어떤 식으로 몸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진짜 열심히 했다. 평소에도 배우라는 직업이 외적으로 보이는 거라 자기관리 측면에서 꾸준히 운동했다. 이 작품에선 비주얼적으로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파이터로서 근육의 질감과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주일에 5∼6일을 두세 시간씩 운동했다. 지금 하라면 못할 거 같다. 보여줘야 할 목표가 있어서 고됨을 자처하면서 만들었다. 조금 아쉬운 건 이종격투기와 복싱을 배우는 기간이 짧았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미친 듯이 했다. 다시 그 비주얼의 모습을 하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어떤 작품에서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싶지만 이번 건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공들여서 보여주려고 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우셨는데, 혹시 지금도 아끼는 비디오테이프가 있나?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때 가지고 있던 것 중엔 <초록 물고기>. 이창동 감독님 작품들 좋아했고, 해외 작품은 블록버스터 같은 화려한 걸 좋아했다. 우리나라 블록버스터 중에 <쉬리>?(웃음) 푸른색의 VHS가 저한텐 강력하게 남았다. 그런 작품을 실물로 만지는 걸 좋아한다. DVD 블루레이는 지금도 구매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OTT 서비스가 나온 이후로는 구매량이 줄었지만 내게 명작이다 싶으면 비닐을 뜯지 않더라고 구매한다. 팬분들도 이런 부분을 잘 알아서 선물을 보내주신다. 음악 들을 때도 CD로 듣는 편이다. 실물을 사용하는 순간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 같다.
요즘 진짜 많이 듣고 있는 음악이 있다면?
저스틴 비버 앨범(웃음). 이번에 <저스티스>라는 앨범이 나왔는데, 중독되는 훅이 있어서 그런지... 앨범 전반으로도 매끄럽게 흘러가는 사운드 구조나 스토리가 놀랍더라. 그냥 팝스타가 아닌 거 같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팝스타는 다른 거 같다.
평소 내한공연을 많이 가셨을 것 같다. 최근엔 많이 취소되거나 연기됐지만.
촬영이 없으면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빌리 아일리시가 꼭 다시 왔으면... 내년에는 올 수 있겠지, 제발.
동안이란 얘기를 자주 들으시니까,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 하고 싶은 캐릭터나 되고 싶은 배우상이 있다면?
내가 언제까지 동안이겠나(웃음).
여담이지만 도착했을 때 놀라긴 했다. 이렇게 (동안일) 줄이야.
감사하다. 관리 아직 하고 있다. 관리 안 하다 훅 갈 수도 있지만(웃음). <파수꾼>이란 영화를 찍었을 때 27, 28살이었다. 뒤늦게 연기를 배울 학교를 가고 데뷔하는 과정에서 그 나이에 교복을 입은 작품을 남겼다는 게 저한테는 감사한 일이고 의의가 컸다. 계속 작품을 하는 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나이보다 어린 비주얼 덕분에 청춘을 연기할 수 있다는 부분이 저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 제가 나이를 들어서 외적인 변화가 분명히 찾아올 텐데, 그때는 그 비주얼에 걸맞은 캐릭터와 작품을 하고 싶다. 저도 기대하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지.
혹시 생각나는 캐릭터나 배우를 뽑자면?
어릴 때부터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의 작품을 봤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외적인 모습에서 주름지고 나이 든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런 게 부럽지만 지금 당장 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기엔 물리적인 제약이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사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타이타닉> 때 시절이 있고 많은 작품을 거쳐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까지, 이후에 보여지는 비주얼의 차이가 크지 않나. 저도 그런 날들이 오지 않을까. 일단 건강해야겠다(웃음).
넷플릭스에서 추천작을 하나 뽑자면?
오마 사이가 나온 <뤼팽>. 놀랐다. 프랑스 드라마에 이런 이야기를 볼 수 있다니. 괴도 루팡의 모티브를 가지고 이야기에 녹이고 매 에피소드마다 사건을 해결해가면서 주인공이 풀어야 하는 굵직한 숙제가 있다. 이야기 구조가 흥미롭고 좋았다. 너무 매력적이다. 파트 2가 나온다고 들었다. 재밌게 봤다.
영상 인터뷰 때 남기고 싶은 것으로 필모그래피를 뽑았다. 필모그래피를 제외하고 남기고 싶은 건?
딱히 없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 이런 게 크지 않다. 대신 물건을 가지면 그 물건을 굉장히 오래 쓴다. 개인적으로 쓰는 차도 첫차인데 아직도 타고 있다. 물건을 가지고 소비하고 쓰는 게 저한테는 소중하지만, 그것이 당장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남기고 싶다... '물건'이란 측면에선 없다. 작품들은 어떤 면에서 내 인생이고 쓰여진 역사다. 그게 잘 남겨지길 바라는 것이다. 남겨진 작품들을 돌아봤을 때 부끄럽거나 없애고 싶거나 그런 작품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런 시행착오를 지금까지 10년이란 시간으로 채워졌다면 앞으로는 내가 생각했을 때 아쉬운 작품을 남기지 말자, 후회 없는 작품을 하자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과정 같다.
차기작이 연출로 잡혀있다. 살짝 예고해 줄 수 있나.
단편이다. 현재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커플의 이야기고, 주인공은 취준생이다. 지금 현시대에서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소재로 써본 이야기다. 지금 드라마와 홍보가 끝나면 7월 즈음에 촬영을 할 생각이다. 회차는 많지 않고, 올해 12월쯤에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연말에 감독으로 뵐 수 있는 건가?
큰 기대는 말아달라(웃음).
그러기엔 제작사도 차리고 본격적이다.
큰일 났다. 부담이 된다(웃음).
넷플릭스 시청자들에게 <무브 투 헤븐>의 추천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마음의 준비 없이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다. 보신 시간만큼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하고 느끼시게 하지 않을까 한다. 보셨다면 주위 분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소통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세상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삶과 죽음 남겨지게 되는 것들,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작품이다. 놓치지 말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