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의 집> 파트 1~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이의 집>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베를린(페드로 알론소), 나이로비(알바 플로레스), 팔레르모(로드리고 데 라 세르나), 도쿄(우르술라 코르베로)를 잇는 새 내부책임자는 리스본(아치아르 이투뇨)이다. 리스본이 현상금 사냥꾼으로부터 탈출해 스페인 국립은행에 합류하면서 <종이의 집> 파트 4는 마무리되었다. 첫 번째 시즌의 첫 에피소드에서 강도와 경찰로 전화선 너머의 교수(알바로 모르테)와 대치하던 라켈은, 이제 리스본이 되어 교수와 소통한다. 범죄를 주도한다. 네 시즌 변화무쌍한 길을 걸어온 강도단.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종이의 집>은 설계자 ‘교수’와 강도단의 인질극을 그린다. 많은 국내 팬의 첫 스페인 드라마였을 이 시리즈는, 새 시즌이 공개됐다 하면 많이 본 작품 순위권을 장기집권하곤 했다. 마지막 시즌, 파트 5는 오는 9월 3일과 12월 3일 1부와 2부로 나뉘어 공개된다. 씨네플레이는 작품을 만나기에 앞서 촬영 현장에 초대받았다. 팬데믹 상황인지라 아쉽지만 온라인으로 함께했다.

교수가 추적을 피해 경찰과 통화할 수 있도록 돕던 외부조력자, 마르세유를 연기한 루카 페로시가 현장을 안내했다. 이날 페로시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쇼러너 겸 총괄 프로듀서 알렉스 피나와, 감독 겸 총괄 프로듀서 헤수스 콜메나르. 페로시는 잠시 인터뷰 진행자가 되어 기자들로부터 미리 받은 질문을 대신 해 주었다. 이들에게서 들은 <종이의 집>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기억을 곱씹으며 9월을 기다려 보자. 인터뷰 전 세트 곳곳에서 만난 <종이의 집> 파트 5 핵심 멤버 5명, 교수 역의 알바로 모르테, 스톡홀름 역의 에스테르 아세보, 베를린 역의 페드로 알론소, 그리고 코스튬 디자이너 카를로스 디에스와 미술감독 아브돈 알카니스와의 대화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자.


알렉스 피나, 헤수스 콜메나르

이번이 마지막 시즌이다. 여기서 멈추는 이유는.

피나 두 번의 강도로 2000분 분량의 이야기를 했다. 일부 캐릭터의 경우 정서 변화의 폭을 이미 다 보여줬다. 지금이 마치기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다. 늦게 떠나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막을 내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콜메나르 질질 끌었다고 느껴지는 시리즈를 많이 봐왔다. 알렉스의 말마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드라마가 가장 잘될 때 멋지게 퇴장하는 거다. 피날레를 완벽하게 장식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다.

<종이의 집>은 강도 이야기다. 이 장르의 장단점이 있다면.

피나 불리한 점부터 말해보겠다. 솔직히 말해서 제작자 입장에서 완벽한 강도 범죄 장르를 만든다는 건 골치 아픈 일이다. 천재 캐릭터가 있으면 작전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캐릭터를 현명해 보이게 하려면 각본팀은 더 고심해서 전략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콜메나르 장점이라면 강도 범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다는 것이다. 강도 범죄 장르에서 시청자들은 처음부터 작전의 몇 가지 규칙을 인지하고 있고, 이는 우리 시리즈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시청자가 규칙을 아니까 이야기에 곧바로 몰입할 수 있었던 거다. 우리는 그 틀 안에서 규칙에 반하는 사건을 넣어 반전을 줄 뿐이다.

살바도르 달리 가면과 빨간 점프수트는 <종이의 집>의 상징이 되었다. 이 초현실주의 예술가와 이 색상을 꼽은 이유는 뭔가.

피나 우리는 늘 시리즈의 정체성을 반영할 상징적인 도구를 원했다. 지난해 50개의 선진국에서 제작된 시리즈만 5천여 편이다. 엄청난 수다.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DNA가 필요했다. 시청자가 한눈에 우리 작품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가면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가면으로 쓸 얼굴로 두 사람을 고려했다. 돈키호테와 살바도르 달리다. 미친 천재와 연관 짓고 싶었던 거다. 조폐국을 점거한다는 건 천재적인 발상이지만 미친 짓 같기도 하니까. 결국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와 그의 콧수염이 좋아 달리를 선택했다. 이제 달리 가면은 인기 있는 핼러윈 코스튬이 됐다.

콜메나르 빨간 점프수트는 나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키 컬러로 한가지 색상만을 사용하고 싶었다. 미겔 아모에도 촬영감독과 논의해서, 다른 원색의 색조를 낮춰 빨간색이 돋보이게 하기로 했다. 모든 강도와 인질에게 유니폼을 입혔고, 이렇게 함으로써 시청자의 시야에서 언제나 빨강이 중심에 있도록 했다. 빨간 옷에 달리 가면을 쓴 강도단의 강렬한 이미지는 호기심을 자아냈고. 상징을 활용한 것이 우리 시리즈의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벨라 차오’(Bella Ciao)도 빼놓을 수 없다. <종이의 집>이 이 곡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만든 셈인데. ‘벨라 차오’를 쓰게 된 이유가 뭔가.

피나 역시 상징적인 음악을 찾고 있었다. 자유와 저항을 바라는 성가처럼 들릴 만한 노래가 필요했다. 각본팀의 하비가 이 곡을 가져왔을 때 우린 외쳤다. “이거야!” ‘벨라 차오’를 발견하기까지 한 달 동안 노래를 찾아 헤맸다. 이 곡이 딱 좋았다.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종이의 집>은 체제에 맞선 싸움을 다루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피나 <종이의 집> 각본 작업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당시의 사회적 기류를 염두에 뒀다. 그때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사람들이 분노에 차 있던 때였다. 스페인 15M 운동으로 시위대가 길거리로 나왔고, 정부, 은행, 체제에 회의를 품었다. 믿음이 없었다. 우리가 작품에 옮긴 건 그런 기류였다. 이 시기를 겪고 답답함을 느끼던 시청자들은 <종이의 집> 속 투쟁에 공감했고, 이것도 사람들이 이 시리즈에 열광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TV로 방영되던 때에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판권을 사들이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이 과정에서 제작자로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콜메나르 가장 큰 교훈은 스페인에서 처음 방영됐을 때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는데도 결국 <종이의 집>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작품이 됐다는 것과 관련 있다.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처음 잡아 둔 기준을 고수했다. 사실 시리즈에 대해 가장 욕심이 많은 사람은 우리다. 만족을 모르지.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인 성공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걸 꾸준히 좇았을 뿐이다. 그뿐인데 그 결과물이 자연히 세계적으로 성공하게 됐다면, 확신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 증명된 게 아닐까. 자신이 굳게 믿는 걸 하면 된다.

그동안 사랑받았던 캐릭터들이 몇 죽었다.

피나 드라마가 많이 변했다. 예전엔 메인 캐릭터를 죽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방송국 중역까지 들고일어서 ‘어떻게 이런 짓을 벌여!’라며 화를 냈을 거다. (웃음) 이제는 죽음도 극의 일부가 되었다. 극중 인물을 죽게 둔다고 처벌받는 일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죽음을 다룬 에피소드가 강렬해서 시청자도 함께 애도한다.

콜메나르 현실적인 일이기도 하다. 조폐국과 국립은행을 털고도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할 거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죽음이 도리어 개연성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파트 4 후반에는 나이로비가 죽었다. 나이로비의 죽음이 새 시즌에서 강도단을 어떻게 자극할까.

콜메나르 나이로비는 강도단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마지막 시즌에 나왔다면 나이로비는 적응하기 힘들어했을 거다. 이번 시즌은 정면 대치를 다루니까. 나이로비는 늘 좀 달랐다. 온전한 대립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나이로비의 죽음은 분명 남은 캐릭터들에게 영감을 줄 거다. 플래시백으로 등장하기도 할 거고.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팬데믹 시기에 파트 5를 촬영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촬영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각본을 수정하기도 했나.

피나 코로나 19 봉쇄 조치 시행 중에 파트 5 각본을 썼다. 격리가 사람을 정신적으로 지치게 했다. 당시 헤수스에게도 말했지만, 글을 써 내려가기 힘들어서 2부를 쓰다가 그만뒀다. 그래서 파트 5의 2부를 끝으로 시리즈를 마치기로 했다. 이 결정이 발판이 되어 각본을 다시 쓰는 데 힘을 줬다.

콜메나르 각본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코로나 19로 상황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넷플릭스의 지원 덕분에 우리는 늘 안전하게 촬영했다.

강도단이 수세에 몰릴수록 이들의 취약점이 드러난다. 절박한 상황에서 이들은 폭력적이고 잔인해지기도 한다. 이는 강도단이 추구하는 혁명적 기세와 대조되는데. 이번 시즌엔 어떨까.

피나 사실 파트 5의 핵심이 교수를 TKO패 시키는 것이었다. 교수가 더 세게 얻어맞을수록 시청자가 느끼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커진다. 파트 5에서 시청자들이 마음고생을 꽤나 할지도 모르겠다.

콜메나르 희생자 없는 강도 범죄와, 자유와 저항을 위한 투쟁.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이다. 그런 생각이 마지막 시즌에서 현실의 벽에 강하게 부딪힌다. 앞으로 강도단은 목숨 걸고 싸울 거다.

다섯 시즌 동안 캐릭터들은 많은 일을 겪었다. 이들의 도덕성을 정의해본다면. 파트 1 이래로 인물들이 어떻게 변했나.

피나 우리는 항상 모호한 도덕성을 전제로 했다. 모든 인물에게 어두운 면이 있다. 그게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캐릭터가 베를린이다. 인물을 도덕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수록, 더 풍성해지고 흥미로워진다.

콜메나르 교수도 그렇다. 그의 성격은 모호함에 바탕을 둔다. 미묘한 인물이다. 리더인 그를 따라 강도단도 특유의 분위기를 갖게 된다. 변화에 관해 물어봤는데. 인물들 모두 점차 변했다고 본다. 마지막 시즌에서는 캐릭터들이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감정 상태가 절정에 달한다는 것만 말해 두겠다.

파트 5 퍼스트룩 스틸

파트 5에서 새 스토리, 새 세트를 만날 수 있을까.

피나 국립은행 꼭대기 층에 있는 레스토랑과 금 박물관, 무기고 등 새 세트가 몇 개 나온다. 단, 부수기 위해 세트를 지었다. 전쟁 장르 덕에 할 수 있었던 시도였다. 지금까지 <종이의 집>에서 이렇게 단명한 세트는 없었다. 이번 시즌은 완전한 파괴를 다룰 거다.

콜메나르 강도단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파트 5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포르투갈 등 새로운 야외 촬영지도 나온다. 세트만 확장된 것이 아니다.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확장됐다. 이번 시즌에서는 이야기 사이사이의 공백을 채울 거다. 그러면서 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인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교수의 인기가 상당하다. 교수로 <종이의 집>의 프리퀄이나 스핀오프를 제작할 생각은 없을까. 아니면 다른 캐릭터로라도.

콜메나르 교수의 이야기는 <종이의 집>에 다 담겨있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교수가 작전을 짜게 된 계기, 작전의 목적 등을 비롯한 그의 사연이 <종이의 집>에서 밝혀진다. 다른 캐릭터로 스핀오프를 만들 수는 있겠다. 모두에게 한 개의 시리즈로 펼쳐낼 만한 사연이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미 <종이의 집>에서 많은 이야기를 다뤘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