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제이슨 스타뎀, 가이 리치

가이 리치 감독과 배우 제이슨 스타뎀이 <캐시트럭>에서 다시 조우했다. 둘은 1998년 장편 극영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에서 함께 데뷔해 영국식 유머와 화려한 말빨, 특유의 슬로모션이 가미된 스타일리쉬한 영상, 재기발랄한 비선형적 편집으로 관객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후 성공적인 할리우드 진출작 <스내치>를 거쳐 <리볼버>와 이번 <캐시트럭> 그리고 차기작으로 예정된 <파이브 아이즈>(가제)까지 다섯 편을 함께 하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마돈나 남편으로 더 유명한 시절을 보낼 만큼 작품적으로 부침과 굴곡이 있던 가이 리치지만, 로다주를 앞세운 <셜록 홈즈> 시리즈와 1992년 애니를 실사화한 <알라딘>의 메가 히트로 (아울러 <젠틀맨>도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 기사회생한다.

<캐시트럭>

반면 제이슨 스타뎀은 꾸준히 필모를 확장시키며 할리우드 스타로 거듭났다. 10년간 영국 다이빙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다 소꼽친구인 축구선수 출신 배우 비니 존스의 권유로 영화에 입문한 그는 서른이 넘은 늦깎이 신인임에도 강한 인상과 탄탄한 근육질 몸매, 쇳소리 가득한 보이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짧은 시간 안에 알리는데 성공했다. 모델과 조단역을 거쳐 <트랜스포터> 삼부작과 <아드레날린 24>, <익스펜더블>, <메카넥>, <분노의 질주> 시리즈 등으로 지난 20년간 아드레날린 전도사로 명성을 떨친다. 매번 비슷한 역할과 반복된 연기 패턴에 질린다는 평가도 있지만, 비슷한 세대의 민머리 액션스타인 빈 디젤이나 드웨인 존슨과는 또 다른 아우라와 스타일을 구축하며 2000년대 하이스트 및 액션 스릴러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가이 리치 사단의 원작과 다른 화끈한 복수

<캐시트럭>

<컨베이어>

이들이 만난 <캐시트럭>은 2004년 니콜라 부크리에프가 연출한 프랑스 영화 <컨베이어>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제는 감독으로도 좋은 필모를 쌓아가는 알베르 뒤퐁텔과 <아티스트>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장 뒤야르댕이 출연해 비정한 톤으로 현금 수송 트럭에 얽힌 복수담을 그려낸 소품이었다. 단단하고 스트레이트한 범죄 드라마에 가까운 원작을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4개의 장으로 나눠 할리우드식 볼거리를 얹은 액션 스릴러로 치환했다. 다만 가이 리치만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유쾌한 수다와 시간을 오가는 입체적인 편집, 화려한 카메라워크는 자제하고, 원작의 처연한 감성을 잇는 암울한 분위기를 하이라이트까지 서서히 고조시켜 마지막에 폭발하게 만드는 전개가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왼쪽부터) 가이 리치, 제이슨 스타뎀

허무하고 무미건조한 복수극으로 흥행에 실패한 프랑스 원작과 달리 할리우드 조미료가 잔뜩 첨가된 <캐시트럭>은 지난 4월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개봉해 8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뒀다. 조시 하트넷과 스콧 이스트우드, 앤디 가르시아, 앤디 마산, 홀트 맥칼라니, 제프리 도노반 등 탄탄한 배우들 외에 스탭들은 최근의 가이 리치 사단이 고스란히 뭉쳤다. 전작 <젠틀맨>을 가이 리치와 같이 썼던 마틴 데이비스와 이반 앳킨스 듀오가 각본을 맡았으며, <리볼버>부터 오랜 기간 함께 한 편집자 제임스 허버트가 참여해 영화의 완급을 조절했다. <셜록 홈즈> 세컨 유니트로 인연을 맺은 앨런 스튜워트가 <알라딘>과 <젠틀맨>에 이어 촬영을 담당하고, 음악 역시 <젠틀맨>으로 입봉한 크리스토퍼 벤스테드가 다시 중용됐다.


오스카 음향상을 수상한 영화음악가 크리스토퍼 벤스테드

크리스토퍼 벤스티드

영화음악가로서 크리스토퍼 벤스테드는 많이 생소한 이름일 텐데, 이번 <캐시트럭>이 겨우 두 번째 영화음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레코딩 엔지니어 겸 멀티 연주자(이고 첼리스트)이자 편곡자로 다재다능함을 뽐내며 일찌감치 여러 할리우드 화제작들에 참여해왔다. 영국을 본거지로 활동한 한스 짐머가 할리우드에 자리 잡은 이후 그의 사단이라 할 수 있는 리모트 콘트롤 프로덕션에선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나 존 파웰, 헨리 잭맨, 벤자민 월피쉬 등 다양한 영국 출신 음악가들이 대거 등용됐는데, 밴스테드는 그들 옆에서 뮤직 에디터 겸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아울러 패트릭 도일이나 다리오 마리아넬리, 스티븐 프라이스 등 영국 출신의 영화음악가 작업에도 참여하며 사운드 믹싱과 레코딩에 대해 인정받는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크리스토퍼 벤스티드

결국 크리스토퍼 벤스테드는 2013년 음악과 음향의 경계에서 정교하게 세팅된 소리를 들려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로 오스카 음향상과 영국 아카데미 음향상을 수상하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다. 2017년 실사화 된 <미녀와 야수>에선 알란 멘켄을 도와 편곡과 추가 음악을 맡았으며, 그 인연으로 <알라딘>에서도 윌 스미스가 부른 곡들을 매만지며 디즈니 레전드를 만족시켰다. 이때 그를 눈여겨 본 가이 리치가 자신의 차기작인 <잰틀맨>의 음악을 제안했고, 사운드 엔지니어로 빛나는 경력을 이어가던 그는 본격적인 영화음악가로 첫발을 내민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같은 범죄 세계로 돌아온 가이 리치에게 그는 첼로의 묵직함과 기타의 긴장감 넘치는 선율을 안겨줬고, 이번 <캐시트럭>에서도 그 분위기는 계속 이어진다.


복수의 속내를 들여다 본 무겁고 다크한 영화음악

크리스토퍼 벤스티드

하강하는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메인으로 어둡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장송곡처럼 울려 퍼지는 메인 테마는 영화의 분위기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게 할 만큼 심각하고 위태롭다. 여기에 시종일관 총격 음처럼 강력하게 때려대는 타악 비트와 격정적으로 휘몰아가는 현악 오스티나토 그리고 낮게 웅웅 깔리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와 일렉트릭 효과들은 복수에 미쳐 분노하는 남자의 심정을 적나라하고 직접적으로 묘사하며 우직하게 끌고 간다. 다른 부수적인 멜로디라인은 전혀 필요 없다는 듯 반복적인 리듬과 패턴으로 점점 고조되는 점층적 효과는 집념과 강박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분노의 감정을 담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허무하고 공허한 기운을 감지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피치카토로 통통 튀는 스트링과 브라스섹션이 받쳐주는 대선율, 다크하고 장중한 타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타이틀 크레딧의 선율만 들으면 얼핏 엔니오 모리꼬네가 앙리 베르뇌유나 이브스 보이셋, 자끄 드레이 등과 협업했던 멜랑꼴리한 프렌치느와르들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원작이 마침 프랑스 영화라는 점에서 재밌는 연결고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의 가이 리치였다면 대중적이고 감각적인 팝들을 선곡해 경쾌한 호흡과 리듬으로 복수담을 재구성했을 텐데, 오롯이 크리스토퍼 벤스테드의 중량감 넘치는 잿빛 스코어에 의존한 채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은 생소하면서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영상과 영리한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며 서스펜스와 스릴을 강화하고 캐릭터에 심정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심연을 헤매는 조니 캐시의 노래

<캐시 트럭>

영화에서 명징하게 들리는 삽입곡은 영화의 중반 H(제이슨 스타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의 보복을 결심하며 행동하는 장면에 흐르는 조니 캐쉬의 '폴섬 감옥 블루스'(Folsom Prison Blues)뿐이다. 그것도 왜곡된 채 한 소절씩 끊어지며 크리스토퍼 벤스테드가 조성하는 지저분한 엠비언트 사운드와 어우러져 잊지 못할 잔상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선악의 저편>에서 말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라는 잠언처럼 지독한 허무감이 엄습하며 무너져내려가는 복수의 화신의 내면을 잠깐 엿본 듯 소름끼치고 두려운 감정을 생생히 전달하는데 큰 몫을 했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