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이 무섭다. 간혹 배우의 캐릭터가 그 사람의 본래 성향과 가까울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김서형을 만나기 전에도 그런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 막연히 그런 사람일 거라고 오판하고 말았다. <스카이 캐슬>의 김주영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강렬하다. 어쩌면 그런 이미지를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이하 <여고괴담 6>)의 이미영 감독도 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2004년 <여고괴담 4: 목소리> 이후 다시 그를 시리즈에 복귀시킨 게 아닐까 추측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렸다. <여고괴담 6>에서 모교로 돌아온 은희라는 이름의 교감 선생님을 연기한 김서형과의 대화를 전한다. 선입견은 버리고 진짜 김서형을 만날 시간이다.

<여고괴담 6>가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첫 공개 후 거의 1년 만에 개봉이다.

오늘(언론배급시사회가 열린 6월 9일) 영화를 다시 봤다. 좀 빠진 부분도 있는 것 같더라. 많이 바뀌진 않았다.

촬영은 언제 했나.

2년 전쯤에 딱 3개월 바짝 찍은 것 같다. 어찌 보면 3개월이 짧은 시간인데 영화를 다시 보고 나니까 어떻게 3개월만에 저게 가능했을까 싶었다. 의외다. 생각보다 너무 잘 나왔다.

일반적인 영화 현장에서 3개월이면 짧은 촬영 기간인가.

그렇다. 큰 예산의 영화는 아니었다. 예전에 비해 더 여유롭게 투자를 받으셨다고는 하지만 넉넉하진 않았다.

<여고괴담> 시리즈의 4편에 출연했다.

음악 선생님으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는 귀신 역인가 싶었다. (웃음) <여고괴담> 시리즈에 두 번 출연한 배우는 없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그래서 농담으로 귀신 역 아니야 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선생님 역이라는 걸 알았고 하루 만에 아니 몇 시간 안 되서 하겠다고 얘기했다. 빨리 연락을 드리고 프리 프로덕션에 참여하고 싶었고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독님을 만났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느낀 점과 감독님의 생각이 너무 비슷했다.

혹시 이미영 감독과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나. 필모그래피를 보면 <여고괴담> 시리즈를 제작한 씨네2000에서 오래 일했다.

아는 사이는 아니다. 만나고 얘기를 나눠보니 이런 식으로 참여를 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리고 나한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셨다는 그거 하나만으로 출연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은희라는 교감 선생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었나.

은희가 현재의 아이들과 학교 생활과 접목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을 알 것이냐 말 것냐를 고민했다. 또 과거의 기억 속 은희와 친구인 재연이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개봉하기 전에도 감독님에게 물었다. “제가 재연이예요, 은희예요?” 자꾸만 헷갈렸다. 지금 감독님 찾아서 물어봐야 되나? (웃음) 그런 고민을 현장에서도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은희였던 것 같다. 영화 속 은희처럼 내가 하나도 힘들지 않게 챙겨주셨다. 3개월 내내 힘들다고 못 느꼈다. 날씨 때문에 힘들었지.

여름에 촬영한 것 같더라.

그렇다. 재밌는 건 부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보고 내가 안쓰러웠다. 김서형이 김서형을 바라봤는데 ‘내가 저런 역할이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를 현장에서 못 느꼈다.

현장에서는 정말 편하게 연기를 했나보다.

내가 연기를 했지만 그 캐릭터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무거웠고 힘들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연기를 할 때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만큼 힘든 역할이니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잘 챙겨줬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 어깨를 좀 두들겨줬다.

잘해냈다는 의미인가.

아니. 저렇게 ‘하드캐리’하는 역할을 내가 정말 안 힘들게 했다고? 못 느꼈다고? ‘너무 고생했구나’라는 게 보였다.

현장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궁금해진다. 공포영화 현장은 일반적인 현장과 좀 다른가.

현장 자체는 똑같은 거 같다. 다만 영화에서 봤겠지만 흉한 신체 모형 같은 게 있고 김형서 씨가 ‘그런’ 분장을 하고 있는 건 보기 안 좋더라. 사실 화장실의 얼굴 모형은 보기가 힘들었다.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나.

그렇다. 시각적으로 약한 것 같다. 그 장면 찍을 때 정말 뛰쳐나와서 울었다. 이런 걸 몇 번 더 해야 되냐고 하니 이제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아이스크림 먹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는 그 장면이랑 후반에 박연묵 선생이랑 싸우는 신 할 때는 넘어져서 뇌진탕이 왔다. 다들 안전하게 한다고는 했어도… 마지막 후반에는 연기를 제대로 못하고 약간 실신하기도 했다. 그 액션 신은 많이 힘들다. 남자 선생님도 그랬고.

귀신 때문이 아니라 그 액션 연기때문에 소름 돋았다.

세긴 셌다. 그래서 나도 영화로 보고 ‘아, 이런 정도로 잘 나온 거면 내가 고생했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 하나만 뽑아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아까 얘기한 아이스크림 먹는 장면에서 카메라를 향해 돌아설 때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 나는 꽃 내미는 장면에서 예쁘던데… (웃음)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셨구나 싶었다. (그 장면은 무서웠다고 하자) 무서운데 참 이쁘게 나왔다. (웃음)

만족스러운 장면 하나 꼽아보자.

연기가 마음에 드는 거? 아니면 예쁘게 나온 거?

뭐든 괜찮다. (웃음)

영화 촬영하면서 (영화를 보면 어딘지 알 수 있는) ‘그 묘소’에 가본 게 처음이었다. 실제 거기서 찍었는데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연기도 좋았고 예쁘고. (웃음) 되게 뭉클했다. 그 장면 한번 더 넣어주지. 예쁘고 의미도 있는데.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학교에서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대사를 말하는 그 장면도 좋다. 이 대사는 함축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현재 아이들과 과거에 있었던 일이 모두 다 접목되는 대사다. 지켜줘야 할 사람이 있었지만 지켜주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이 얘기한 것처럼 <여고괴담 6>가 과거가 현재를 따라온 거지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영화는 아닌 이유다. 과거와 현재의 중간 지점에서 내가 영화를 끌고 가야 되는, 저 아이들을 위한 처단자가 돼야 하나 하는 애로사항은 있었다.

처단자라니 정말 부담스러운 캐릭터다.

하도 드라마에서 처단을 많이 해서. 복수를 많이 해서. 익.숙.해.서. (웃음) 그런데 결이 다르니까. 그런 면에서 <여고괴담 6>에서 최고로 날개를 달고 (처단을) 한 것 같다.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스카이 캐슬> 바로 다음 작품이 이 영화인데 그때 뭔가를 제대로 못 뽑아낸 것 같다. 사람들은 환호를 해주고 했지만. 뭔가 남아 있는 걸 <여고괴담 6>에서 다 털고내고자 했다. 그래, 아주 그냥 싸그리 태우리라 해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

김서형의 연기는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하다.

정신과 상담이 나쁜 건 아니지 않나, 때론 상담을 받고 싶은 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내 나름대로 관리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생기더라. 집에 갖고 오고 싶지 않아도 캐릭터가 피부의 때처럼 달라붙어서 온다. 그 때를 벗겨내기 위해서 운동을 달고 산다. 운동을 못하면 먹는 걸로 풀기도 하고. 정말 아무 생각 안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일주일 이상 실컷 울어보기도 한다. 술을 잘 못하지만 ‘혼술’하면서 딱 그 기간만 아주 우울한 기분에 빠져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과정을 몇 번씩 모든 작품 할 때마다 겪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하드한 작품을 내가 선택한 거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화장실에서 싸울 때 판자 같은 걸로 상대를 때릴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왜? 직접 맞는 것 같았나? (웃음)

여성이 남성을 처단하는 내용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누군가를 대변하거나 지켜줘야 되거나 처단해야 되는 역할을 하다보니 이 작품에서도 관련된 질문을 많이 들을 것 같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지금 뉴스를 보면 아동학대든 뭐든 너무 많다. 다 입을 닫고 숨어 있는데 그게 멀리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학교 안이든 가정이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는 목소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적어도 함구는 하지 말자라는 생각. ‘역사적인 사건’을 갖고 와서 얘기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긴 했다. 그래서 <여고괴담> 시리즈로 안 가고 그냥 <모교>라는 영화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리즈와 다른 외전 개념이라고 보면 될까.

그런데 감독님이 <여고괴담 6>로 이춘연 대표님과 이미 사전 제작 단계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개인적으로는 좀더 여자의 심리 얘기를 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춘연 대표님이 살아계실 때도 그 부분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결국 <여고괴담 6>로 결정이 됐고 <여고괴담> 시리즈라는 것에 대한 대표님의 고민들을 받아들였다.

좀 가벼운 질문으로 넘어가자. 같이 출연한 어린 친구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혹시 김현수가 출연한 <펜트하우스>는 봤나.

<펜트하우스> 보고 놀랐다. 현수가 나온다고 해서 봤는데 쟤도 막 “아아아악~ 아니야!” 이러고 있더라. 현수 같지 않은데 했다. 그런데 오늘 영화를 다시 보니 그런 카리스마가 있었구나 느꼈다. 현수는 현장에서 되게 조용했다. 엄마랑 같이 다녔고 ‘애기 애기’ 같았는데 2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다. 또 형서는 이름을 거꾸로 하면 나랑 이름이 똑같다. 한자도 똑같다. 그런 것 때문인지 더 친근했다. 다들 자기 몫들을 잘하더라. 특별히 신경 쓸 게 없었다.

상대 배우와 문제는 없었나보다.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몰라도 상대 배우들에게 잘해준다. (웃음) 혹시나 작년의 일들(전 소속사 대표의 이른바 갑질 논란)과 여러 가지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는데 나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배우다.

작품에서 봤던 이미지와는 다르시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왜 매번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하는지. 사실 안 불러주니까 이런 작품을 할 수밖에.

<악녀> 출연 했을 때 인터뷰를 봤는데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액션 연기 해보고 싶다. 제대로 안 했으니까. (<여고괴담 6>에 어느 정도 하지 하것 아니냐고 묻자) 다르다. 총이라도 들고 뛰어다녀야지. 사실 그런데 감성은 <러브레터>다. 멜로.

전주국제영화제 프로젝트 옴니버스 영화인 <소설, 영화와 만나다> 가운데 <번개와 춤을>을 봤다. 그 영화 멜로 장르 아닌가.

너무 짧아서. 지금 드라마에서 약간의 멜로 연기를 하긴 한다. 멜로가 편하더라.

멜로 장르의 신작이 있을까. 새 작품 결정된 건 없나.

<마인>이 안 끝나서. 신작 결정되면 연락하겠다. (웃음)

혹시 더 얘기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

그런데 영화를 어떻게 봤나?

(영화의 후반부 결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개봉 시기도 좋고 <여고괴담 6> 흥행이 잘 될 것 같다.

이춘연 대표님이 돌아가시 전에 <여고괴담> 시리즈를 계속 만들려고 하셨는데 11년이나 걸릴지 상상을 못하셨다 하셨다. 현장에 자주 오셨다. <여고괴담> 4편 할 때와 얼굴이 달라지셨다. 대표님이 시리즈 10편까지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6편이 잘 될 것 같다고 영화도 안 보고 말씀드렸다. “건강 챙시기고 딱 10년만 버텨주세요” 했는데…. 한달 전에…. 대표님 유작에 잘 돼서… (한참 말을 잇지 못한 뒤) 다시 찾아뵙으면 좋겠다. 발인날 못 봬서.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