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미국 폭스뉴스 방송국 내 발생했던 성범죄와 유명한 여성 앵커가 폭스뉴스 회장을 성희롱으로 고소하면서 발생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 미국에서 2018년경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밝힙니다.


1. 성희롱과 강제추행의 차이점

폭스뉴스에서 오랫동안 잘 나갔던 여성 앵커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이 회사 CEO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의 성적요구를 거부하자 그 보복으로 인기없는 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으로 좌천되었다가 결국 해고를 당합니다. 그레천 칼슨은 로저 에일스를 고소하기 위해 법률상담을 받는데 변호사들조차 무모한 행위일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였으나 그레천 칼슨은 해고를 당한 후 로저 에일스에 대한 성희롱 고소를 강행합니다.

그레천 칼슨은 로저 에일스로부터 성희롱을 당할 때마다 그 내용(너는 섹시한데 너무 손이 많이 가, 너는 남성 혐오자야 등)을 모두 노트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레천 칼슨의 설명에 의하면, 로저는 여성 직원들한테 충성심을 요구하는데, 충성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자신을 위해 성적인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인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도 로저 에일스한테 당한 경험이 있는데, 메긴 켈리는 로저 에일스가 메긴을 강제로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시도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폭스뉴스의 뉴페이스가 되고 싶은 야망을 가진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이 있습니다. 케일라 포스피실은 로저와 로저의 방에서 단둘이 있을 때, 로저가 충성심을 보이라면서 케일라가 입고 있던 짧은 치마를 속옷이 보일 정도로 올려보라는 요구를 하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하고, 로저의 성적인 행위에 대한 강요에도 응해줬다고 고백합니다.

세 명의 여성 외에도 로저 에일스한테 성적 피해를 입은 여자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세 명의 사례를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성희롱과 강제추행은 뭐가 다를까요. 먼저 강제추행은 형사범죄이므로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면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희롱은 형사범죄는 아니고 민사상 불법행위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론 성희롱이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면 징계를 받을 수 있지만 성희롱은 형사범죄가 아닙니다. 따라서 성희롱만으로는 징역 몇 년 또는 벌금이 얼마라는 말은 틀린겁니다. 강제추행은 형법상 ‘강제추행죄’가 일반법으로서 적용되는데, 강제추행죄가 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폭행, 협박이 없는 강제추행도 실제로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권력의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강제추행은 오히려 폭행, 협박이 없는 경우가 더 많죠. 그래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법)에서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내 상하관계, 군대 내부,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 관계처럼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는 폭행, 협박까지 안하더라도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하기만 하면 강제추행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업무적으로 나를 승진시키거나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관계라면 업무상 위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로저 에일스의 행동이 어디에 속하는지 하나씩 살펴보면, 1) 그레천 칼슨을 단순히 말로써 괴롭혔다면 언어에 의한 성희롱이고 우리나라 기업이라면 근로기준법상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하여 징계 등의 조치를 받을수 있습니다. 그 이상 형사적으로 처벌하려면 로저 에일스가 강제로 껴안는 등의 신체적 접촉이 있거나 어떠한 강요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영화에서는 그레천 칼슨이 입은 다른 피해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예를 보면 추가 피해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2) 메긴 켈리를 강제로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한 행위는 성폭법상 업무상 위력 추행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판례는 형법상 강제추행에 기습추행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강제로 껴안은 행위 자체가 메긴 켈리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로 인정된다면 형법상 강제추행죄도 될 수 있습니다. 3) 케일라 포스피실한테 속옷이 보일 정도로 치마를 올리라고 강요한 행위나 원치 않는 성적 행위를 시킨 것은 성폭법상 업무상 위력 추행죄, 형법상 강요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직장내 괴롭힘에도 해당하지만 로저 에일스가 회장인데 회사 자체적으로 로저 에일스한테 징계조치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겠죠.

현실적으로 직장내 성적 괴롭힘은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데, 실제로 폭행, 협박이 없었다고 하여 강제추행죄가 안되는 경우가 많고, 업무상 위력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여(예: 계약관계가 없는 거래처이지만 갑을 관계 회사인 경우) 업무상 위력 추행죄도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희롱은 언어적 성희롱도 성립하지만 말은 뱉고 나면 사라지므로 목격자나 녹음이 없는한 입증이 쉽지 않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2. 법률상 배우자한테 강간죄가 성립할까

영화 초반에 2016년경 미국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의 전(前)부인 이바나 트럼프가 도널드 트럼프를 강간죄로 고소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캠프 측에서 부부는 법적으로 강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법률상 부부는 원칙적으로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경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법률상 부부사이에도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한 경우에는 강간되가 된다’고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물론 부부사이의 성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으므로 실제 부부사이에 강강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