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들> 시즌 4

“여긴 천국이야!” 스페인 최고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라스 엔시나스에 전학한 날, 크리스티안(미겔 에란)이 말했다. 마드리드 최상류층 엘리트들의 삶은 학교의 첫인상만큼이나 찬란하진 못했다. 욕망에 잠식되는 순간 이들은 범죄에 깊이 엮여버린다. 중독성 강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 어덜트(Young Adult) 시리즈, <엘리트들>이 지난달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엘리트들>은 국경을 한참 넘은 인기에 시즌 4가 나오기도 전에 다음 시즌 제작을 확정한 바 있는데. 시즌 5 촬영이 막 끝난 지난 6월 29일, 카예타나를 연기한 조지나 아모로스를 만났다. 그와 버추얼 인터뷰로 나눈 이야기를 전하기에 앞서, 아직 이 시리즈를 접하지 못했거나 오랜만에 마주한 독자들을 위해 <엘리트들>이 걸어온 길을 잠시 되돌아본다.


극강의 길티 플레저를 선사하는

하이틴 스릴러

스페인판 <가십걸>. <엘리트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이 시리즈를 <가십걸>에 비유했다. 신작을, 아직 보지 못한 이들에게 설명하기 가장 쉬운 방법. 성공한 기존 작품에 빗대는 것이다. 지난주 리부트로 돌아온 <가십걸>에 쇼가 <엘리트들>을 닮았다는 리뷰가 달리고 있으니, 일종의 청출어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 시즌이 공개됐다 하면 시청 순위권을 장기집권하던 <엘리트들>은 많은 국내 팬의 첫 스페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엘리트들>은 10대들의 이야기다. 예측할 수 없는 러브라인과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 여느 하이틴 시리즈가 가진 공식과도 같은 재료들로 구성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익숙한 맛에 풍미를 더하는 것은 <엘리트들>의 기본 골자와 관련있다. 각 시즌 첫 에피소드의 첫 장면은 불길한 플래시 포워드를 담는다. 초장부터 마지막에 맞닥뜨릴 사건을 먼저 보여주고 시작한다는 건데. 그 사건은 보통 10대가 감당하기 으레 버거울 범죄 사건이다. 쇼는 예고된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한 번 더 비유를 빌리자면 <가십걸>과 <빅 리틀 라이즈>가 만난 셈이다. 마리나(마리아 페드라사)의 죽음, 사무엘(이찬 에스카미야)의 실종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도대체 어떻게 도달하게 된 건지. 첫점과 끝점 사이의 공백을 채워나가며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촘촘하게 뿌려둔 복선을 회수하는데 소위 파격적인 막장 스토리라인이 동원되기도 한다. 섹스, 마약, 범죄 등의 하드코어 소재와 선을 넘나드는 장면들로 극강의 길티 플레저를 선사해, <엘리트들> 세계관에 들어선 팬들의 발을 단단히 묶어둔다.

3명의 전학생이 몰고 온 파장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 섞여 들어갈수록 마찰은 생기기 마련이다. 3년 전, 특권층만 다니는 학교에 노동자층 학생 셋이 전학을 오면서 <엘리트들>은 시작됐다. 사무엘, 크리스티안, 나디아(미나 엘 함마니)는 그들이 다니던 공립 학교를 붕괴시킨 건설 회사가 마지못해 내놓은 장학금을 받고 라스 엔시나스에 입성했다. 마리나의 피가 학교 수영장을 물들인 일은 전교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랑, 욕망, 거짓, 배신으로 요약되는 이어지는 사건들은 폴로(알바로 리코)의 투신자살로 일단락됐고. 그 죽음에 어떻게든 연루된 쇼의 핵심 멤버, 카를라(에스테르 엑스포시토), 루(다나 파올라), 발레리오(호레스 로페스)의 퇴장으로 시즌 3이 막을 내렸다.

네 번째 시즌. 이제 <엘리트들>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학교가 명성을 회복하길 바라며 새 교장 벵하민(디에고 마르틴)이 부임했다. 빳빳한 규율을 잣대로 매사 통제하려 드는 그는 머지않아 학생들과 대치했고. 벵하민과 함께 라스 엔시나스로 학적을 옮긴 그의 세 자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어느 정도 뜻을 같이하던 아리(카를라 디아스), 파트리크(마누 리오스), 멘시아(마르티나 카리디)와 나머지 학생들의 첫 만남도 갈등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었다. 삐거덕거리며 시작했지만 이내 삼 남매는 기존 학생들과 지독하게 감긴다. 비로소 진정한 한편이 된 듯했던 사무엘과 구스만(미겔 베르나르도)은 아리를 두고 연적으로 돌아섰고. <엘리트들>의 어떤 커플보다도 단단해 보였던 오마르(오마르 아유소), 안데르(아론 피페르) 커플은 파트리크의 개입으로 광풍을 맞았다. 멘시아는, 사무엘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직 극복하지 못한 레베카(클라우디아 살라스)에게 직진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아리를 의식 불명에 빠지게 한 마지막 사건을 향해 치닫는다.

32개의 에피소드 정주행이

부담스럽다면

제작진은 새 시즌을 시청자에 소개하기 전, 아쉽게도 본편에서 하차한 몇몇 캐릭터를 스핀오프 시리즈 <엘리트들, 못다 한 이야기>(이하 <못다 한 이야기>)에 다시 불러들였다. <못다 한 이야기>는 본편과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상으로는 시즌 3에서 시즌 4로 넘어가는 방학을 그린다. 이 시리즈는 <엘리트들> 멤버들이 어떻게 여름을 나는지를 담았다. <못다 한 이야기>의 네 개의 시즌은 짧게는 10분, 길어야 15분짜리의 에피소드 3편으로 짜였다. 본편의 네 시즌 총 32개의 에피소드를 따라 쉼 없이 달려오느라 지친 팬이라면 쉬어가도 좋은 코스라고 할 수 있겠다. 정주행하는 건 고사하고 첫 에피소드를 재생할 엄두도 못 내던 이들에게도 선물 같은 숏폼(Short-form) 시리즈다. 단, 본편이 가진 강렬한 사건은 없다. 혹 이 글을 보고 <못다 한 이야기>를 보기로 결심했다면, <엘리트들>의 순한 맛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쇼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는 데 집중하길 바란다.


시즌 5에서 새 캐릭터와 엮인다

카예타나 役 조지나 아모로스 인터뷰

조지나 아모로스

두 번째 시즌에서 카예타나가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그는 또 한 명의 발칙한 상류층 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저택에서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은 그를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로 만들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카예타나는, 한동안 그가 선망하는 가상의 인물로 살았다. 남자친구 폴로의 죽음을 포함해 지난 몇 학기에 걸쳐 라스 엔시나스에서 벌어진 비참한 일들이 그에게 남긴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솔직해져야 한다는 배움이었다.

잘못된 지름길은 뒤로하고 제 삶을 살기로 한 그는 학교의 청소부로 남았고. 네 번째 시즌의 카예타나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건강하게 좇는 대학생이다. 전학생 필리페(폴 그란치)에 눈이 가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그가 유럽 공국의 왕자라는 것이 카예타나의 주의를 끌긴 했지만.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패션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기 때문이었다. 유명인으로서 업계에 선한 영향을 펼치고 있는 필리페를 존경하기 때문이었다. 멀리 돌아온 카예타나가 이제야 행복을 좀 누리나 했는데, 이번 학기도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카예타나를 연기한 조지나 아르모스와의 대화를 전한다.


<엘리트들>의 네 번째 시즌이고 당신의 세 번째 시즌이다. 인기를 실감할 때가 있나.

사람들이 길에서 알아볼 때마다 느낀다. 지난해 멕시코에 갔을 때 더 실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열성적으로 환대해주셨다.

지난 시즌 마지막 장면에서, 라스 엔시나스의 청소부가 된 카예타나를 보고 많은 팬이 충격을 받았다. 이번 시즌의 카예타나는 이전의 그와 전혀 다른 사람 같기도 한데. 성장한 카예타나를 연기하는 건 어땠나.

두 번째 시즌부터 카예(카예타나)를 연기해왔는데. 처음의 카예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고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았지만, 지난 두 시즌 동안 겪은 모든 일이 그를 성장케 했다. 시즌 2가 시작됐을 즈음 카예가 16살이었고 이제 18살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가 변한 것은 10대로서 자연히 겪는 과정이었을 테다. 내가 뭘 원하는지 어디에 속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갈피를 못 잡다가,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내가 뭘 잘하는지 깨닫는 과정 말이다. 카예의 경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게 되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라스 엔시나스 청소부 일을 시작한 거고, 내겐 그런 그가 대단하고 멋지다.

카예타나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는 필리페를 만나서 시청자로서 기뻤다. 안타깝게도 끝은 시작만큼 좋지 않았다. 필리페는 분명 불법 촬영 범죄의 가해자다.

둘에게 험난한 여정이었다. 카예와 필리페도 서로를 막 만났을 때 끝이 그렇게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둘이 정말 진실된 관계를 맺은 것 같아 보였으니까. 지금까지 종종 슬픔에 빠져 있던 카예였기에, 행복한 카예를 보는 게 나도 좋았다. 그런데 머지않아 둘의 이야기는 어두워진다. 대본을 받았을 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론 기대됐다. 카예와 필리페의 관계를 통해 연인 사이에도 추행, 심지어는 강간과 같은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쇼는 말한다. 상대방이 “싫다”고 말하면 진짜 싫단 거다. 싫다는 데도 계속한다면 그건 학대다. 이를 알리는 건 그 자체로 강한 메시지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카예타나의 의상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2화의 수건 파티에서 입었던 수건 투피스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이번 시즌 카예의 스타일링을 좋아한다. 의상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극 중 카예가 패션을 시작했기 때문에 의상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들에게,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카예의 뜻을 의상으로도 납득시켜야 했다. 인상적인 옷이 많았다. 마지막 회의 신년 전야 파티에서 카예가 입었던 드레스를 기억하나. 통이 넓고 (손으로 깃털 모양을 만들며) 가슴 가에 검은 깃털이 달린 흰 드레스다. 이 에피소드만을 위해 디자인된 옷이라 더 특별했다. 르발 무도회 때 입은 드레스도 멋지다.

새 캐릭터들이 합류하면서 멘베카(멘시아와 레베카), 오만데릭(오마르, 안데르와 파트리크) 같은 커플이 생겼다. 이번 시즌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라인과 장면이 있다면.

첫 화에 멘베카가 루프탑 파티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좋아한다. 마드리드가 다 내려다보여서 더 매력적이다. 둘의 스토리라인도 좋아한다. 마르티나와 클라우디아가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도 했고. 일단 두 캐릭터의 관계가 아름답다. 사실 우리 쇼에 나오는 대부분의 커플이 서로에게 독이 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지 않나? (웃음) 전적으로 동감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멘베카가 가장 건강한 커플이라고 생각한다.

촬영장에서 틱톡 영상을 많이 남겼더라. 현장 분위기가 밝고 출연진들 사이가 가까워 보이는데.

함께한 지 벌써 3년이다. 우리는 동년배이고 모두 좋은 친구다. 이번 시즌 준비하면서는 못 그랬지만, 팬데믹 이전에는 촬영만 끝났다 하면 거의 매일 맥주를 마시러 갔다. 세 번째 시즌을 끝으로 미나, 다나, 에스테르 등이 쇼를 떠나서 처음엔 좀 슬펐다. 다 제 갈 길이 있는 거고 그 길을 따르는 건 일반적인 일이니까. 잘 적응했다.

<엘리트들, 못다 한 이야기: 구스만 카예 레베>에서 카예타나는 구스만, 레베카와 여름 휴가를 보냈다. 당신이라면 누구와 휴가를 나겠나. 폴로 아니면 필리페? 아니면 발레리오?

일단 발레리오는 아니다. 너무 과하다. 음… 레베카를 골라도 될까? 카예와 레베카는 친구보다는 적에 가까웠다. 다투기도도 많이 다퉜고. 몇 시즌을 보내면서 둘은 우정을 쌓았고 이제는 서로를 응원한다. 레베카 같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며칠 전 다섯 번째 시즌의 촬영이 끝났다고 들었다. 카예타나는 이미 시즌 4부터 대학생이었는데도 다음 시즌에 함께 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다. 시즌 5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나.

새 캐릭터가 둘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소피아 역의 아르헨티나 배우 발렌티나 세네레와, 곤잘로 역의 브라질 배우 안드레 라몰리아다. 소피아와 곤잘로는 여태껏 등장했던 기존 캐릭터와는 결을 아주 달리한다. 가히 라스 엔시나스에 폭풍을 일으킬 캐릭터들이다. 폭발적이랄까. 그리고 카예가 이 둘 중 한 명과 엮인다. 둘 중 누구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둘 중 한 명이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