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영화제 <프렌치 디스패치> 팀.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웨스 앤더슨, 티모시 샬라메

올해 칸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프렌치 디스패치>에 이어, 틸다 스윈튼이 오는 9월부터 웨스 앤더슨의 새 영화를 촬영할 예정이다. 앤더슨과 스윈튼의 다섯 번째 협업이다. 물샐 틈 없는 필모그래피로 정평 난 스윈튼에게 애정을 바친 감독이 앤더슨만이 아닐 터. 틸다 스윈튼을 여러 차례 캐스팅한 감독들을 소개한다.


데렉 자먼

<카라바지오> (1986)

<대영제국의 몰락> (1987)

<에드워드 2세> (1991)

<비트겐슈타인> (1993)

<블루> (1993)

...

<영국제국의 몰락>

극단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한 틸다 스윈튼은 영국의 실험영화 감독 데릭 자먼이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지오의 삶을 영화화한 <카라바지오>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카라바지오>에서의 비중은 작았지만, 그다음 작품 <영국제국의 몰락>부터는 주로 주연으로 활약했다. <에드워드 2세>의 이사벨라 여왕 역으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스윈튼은 자먼이 AIDS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연출한, 새파란 화면 위에 내레이션으로만 이뤄진 유작 <블루>까지 모두 6개 작품을 자먼과 함께 했다.

<에드워드 2세>


웨스 앤더슨

<문라이즈 킹덤> (201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개들의 섬> (2018)

<프렌치 디스패치> (2021)

<????> (202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틸다 스윈튼과 웨스 앤더슨의 협업은 앤더슨 영화가 절대적 캐스팅의 장이 되기 시작한 <문라이즈 킹덤>부터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앤더슨이 연출한 모든 작품에 크고 작은 역할로 참여해오면서, 빌 머레이와 제이슨 슈와츠먼을 잇는 앤더슨의 페르소나로 자리잡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선 세계 최고의 부호이자 영화의 공간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소유주 마담 D. 역으로 촬영 때마다 5시간의 분장을 거쳐 84세 노인의 모습을 선보였다. 앤더슨의 두 번째 스톱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에서 퍼그 오라클의 목소리를 연기한 스윈튼은, 올해 칸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최신작 <프렌치 디스패치>에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마찬가지로) 영화 제목을 차지한 잡지사의 기자 베런슨 역을 맡았다. 올해 가을 스페인의 작은 마을 친촌에서 촬영될 앤더슨의 신작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캐스팅 멤버가 스윈튼인 걸로 보아 신작에서도 그의 비중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프렌치 디스패치>


루카 구아다니노

<프로타고니스트> (1999)

<아이 엠 러브> (2009)

<비거 스플래쉬> (2015)

<서스페리아> (2018)

<아이 엠 러브>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필모그래피 역시 틸다 스윈튼의 비중이 막강하다. 이탈리아 영화 스탭들이 영국 런던에서 이집트 셰프가 살해당한 사건을 촬영하는 과정을 그린 첫 영화 <프로타고니스트>의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인 영국 배우 역에 스윈튼을 캐스팅한 이래 근 20년 사이 4편의 작품에 스윈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구아다니노가 국제적으로 알리게 된 <아이 엠 러브>에선 재벌가와 결혼해 고독한 삶을 보내다가 아들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여자 엠마를 연기해, 오랜만에 사랑의 열기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이의 마음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티가 물씬한 상류층 여성의 표상을 아울렀다. <비거 스플래쉬>에서 호흡을 맞춘 다코타 존슨과 함께 다리오 아르젠토의 걸작 호러 <서스페리아>(1977)를 구아다니노가 리메이크한 <서스페리아>에 출연해 전혀 다른 모습의 세 인물을 소화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서스페리아>


짐 자무쉬

<브로큰 플라워> (2005)

<리미츠 오브 컨트롤> (2009)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

<데드 돈 다이> (2019)

<리미츠 오브 컨트롤>

짐 자무쉬와 틸다 스윈튼의 협업은 2005년 작 <브로큰 플라워>로 거슬러 올라간다. 빌 머레이가 연기한 왕년의 바람둥이 돈이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의 편지를 받고 전 여자친구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에서 스윈튼은 유일하게 돈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페니로 등장했다. 스윈튼의 캐릭터 가운데 몇 안 되는 '평범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인물 중 하나였는데, 그다음 자무쉬 영화 속 스윈튼은 새하얀 얼굴과 그만큼이나 밝은 금발이 빛을 발하는 캐릭터를 맡았다. 주인공이 마드리드 거리에서 만나는 '금발'을 연기한 <리미츠 오브 컨트롤>과 마을에 창궐한 좀비를 한칼에 베어버리는 장의사 젤다 를 연기한 <데드 돈 다이>에서 비교적 작은 역할로 앙상블을 뒷받침하는 역할이었다면, 탕헤르와 디트로이트 사이 장거리 연애 중인 뱀파이어로 나온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톰 히들스턴과 투톱으로 영화를 이끌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조안나 호그

<카프리스> (단편, 1986)

<수베니어> (2019)

<수베니어 파트 2> (2021)

<이터널 도터> (2022?)

<카프리스>

조안나 호그는 한국 대중에겐 다소 낯선 감독이다. 호그는 틸다 스윈튼과 실제 그의 딸인 아너 스윈튼 번이 모녀를 연기해 화제를 모은 <수베니어>로 전세계 눈밝은 평자들로부터 '2019년 최고의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중산층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영화과 학생 줄리와 믿을 구석이란 없어 보이는 남자의 연애를 그린 <수베니어>에서 틸다 스윈튼의 분량은 꽤 적었는데, 올해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속편 <수베니어 파트 2>는 어머니의 비중이 확 높아질 전망이다. 사실 호그와 스윈튼의 인연은 <수베니어>가 공개되기 33년 전, 호그가 영국 국립 영화&TV 학교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 <카프리스>가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TV 시리즈 작업만 하다가 2007년 처음 첫 장편영화를 만든 호그는 이미 스윈튼과 또 다른 작품 <이터널 도터>를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수베니어>


봉준호

<설국열차> (2013)

<옥자> (2017)

<설국열차>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 감독의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와 <옥자>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배우다. <설국열차> 속 열차의 절대자 윌포드의 2인자 메이슨 총리는 본래 온화한 성격의 남성 캐릭터라 존 C. 라일리가 물망에 올랐지만, 스윈튼이 메이슨 역을 맡게 되면서 수많은 설정들이 바뀌어 결국 우리가 본 해괴망측한 외모와 말투의 인물이 됐다. 봉준호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옥자>에선 1인 2역을 맡았다. 루시/낸시 미란도 자매와 <설국열차>의 메이슨은 주인공과 그의 일행이 돌파해야 하는 존재라는 설정을 공유한다. 대단한 분장을 거치지 않아도 특별한 외모를 발산할 수 있는 스윈튼의 아우라가 있어 가능한 연결고리일 것이다. 칸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을 석권한 <기생충>의 다음 작품으로 다시 한번 할리우드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는데, 스윈튼이 또 한번 출연할지 기대해봐도 될까?

<옥자>


코엔 형제

<번 애프터 리딩> (2008)

<헤일, 시저!> (2016)

<번 애프터 리딩>

관객의 숨통을 쥐고 흔드는 스릴러, 인간에 대한 조소와 애정이 뒤섞인 담긴 블랙코미디. 코엔 형제는 이 두 갈래를 오가며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들이 틸다 스윈튼을 캐스팅한 작품은 <번 애프터 리딩>과 <헤일, 시저!>. 두 영화 모두 후자에 속하고, 조지 클루니가 출연했다. <번 애프터 리딩>에선 연방 경찰과 바람난 전 CIA 요원의 아내, 또 한번 1인 2역을 맡은 <헤일, 시저!>에선 진중한 영화 기자와 연예인 뒷꽁무니를 쫓는 타블로이드 기자 자매를 연기했다. 비중 자체도 크지 않을뿐더러,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들이 꽤나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탓에 앞서 소개한 감독들의 작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인상이 흐린 게 사실이다.

<헤일, 시저!>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