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오피스
1위 <형>은 통과 못해도,
2위 <미씽: 사라진 여자>는
통과한 테스트
이번주 박스오피스엔 한국 영화 <형>과 <미씽: 사라진 여자>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두영화를 연달아 본 에디터는 문득 '벡델 테스트'가 떠올랐습니다. 이 테스트를 두 영화에 적용하면 <형>은 1단계부터 탈락하지만, <미씽: 사라진 여자>는 3단계를 모두 통과한다는 사실! 바로 오늘은 이 '벡델 테스트'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만화에서 탄생한
'벡델테스트'
만화 <경계해야 할 동성애자들>(Dykes to Watch Out For)에 나오는 두 인물은 다음 조건들을 통과하는 영화들만 보기로 결심합니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
3.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 이외에 대한 것이다.
이 만화는 미국의 남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1985년에 그렸습니다. 만화 속 인물들이 걸었던 조건이 그대로 지금의 '벡델 테스트'의 기준이 되었죠. 이는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와 무관하며, 페미니즘 영화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기준도 아닙니다. 물론 페미니즘 영화가 확률적으로 쉽게 통과하긴 하지만, 의외로 일반적인 상업영화 상당수가 이 테스트에서 탈락합니다.
2016년 한국영화
흥행 TOP 10 중
몇 편이나 통과했을까?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탈락했는지 궁금해진 에디터. 올 한해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 받았던 한국 영화 열 편을 대상으로 벡델 테스트를 해보았는데요. 먼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집계한 2016 한국 영화 흥행 톱 텐(관객수 기준)을 공개합니다! 여러분도 스크롤 내리기 전에 봤던 영화들을 떠올리며 테스트를 해 보세요.
1위 부산행
2위 검사외전
3위 밀정
4위 터널
5위 인천상륙작전
6위 럭키
7위 곡성
8위 덕혜옹주
9위 아가씨
10위 귀향
일단 1단계 정도는 무난하게 통과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2단계부터 갑자기 탈락하는 영화들이 생기기 시작하죠. 테스트 결과 세단계를 모두 통과한 작품은 <부산행>, <덕혜옹주>, <아가씨>, <귀향>이었고, 1단계부터 탈락한 영화는 <검사외전> 한 편뿐이었습니다.
" 40%만 통과!!"
너무 적다, 아니면 의외로 많다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런데 2015년 흥행작 열 편 중에선 단 두 편의 영화(<암살>, <조선 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만 이 테스트를 통과했었다는 사실!
올해는 그래도 작년보다 2배나 오른 수치였던 거죠! 3단계 모두 통과하지 못한 작년 대표작으로는 <내부자들>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올해 여혐, 여성 인권에 대한 이슈가 많았던 만큼 영화계에서도 좀더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벡델 테스트의 진화형
'비토 루소 테스트',
'핑크바이너 테스트'
'벡델 테스트'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어도 '비토 루소 테스트'와 '핑크바이너 테스트'는 아마 생소하게 들릴 텐데요. '비토 루소 테스트'는 벡델 테스트의 성소수자 버전입니다. '핑크바이너 테스트'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묘사를 피하기 위해 한 과학 언론 매체가 '벡델 테스트'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테스트죠.
'비토 루소 테스트'
1.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장
2. 이들을 성적 정체성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플롯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
2016년 흥행작 TOP10 가운데는 '벡델 테스트'와 '비토 루소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입니다. 동성의 사랑을 그렸으며, 극 중 캐릭터 숙희(김태리)와 히데코(김민희)의 의지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와 반전이 있었던 영화죠.
'핑크바이너 테스트'
1. '여교수', '여의사' 등 여성을 강조
2. 남편의 직업을 불필요하게 언급
3. 자녀를 키우는 것을 불필요하게 묘사
4. 아이를 돌보는 이야기
5. 자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고생한 이야기
▶▶핑크바이너 테스트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피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적용해 만든 테스트는 아니지만 핑크바이너 테스트를 보고 최근 개봉한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를 떠올려봤습니다. <미씽>은 벡델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하고, 여성 인권을 주요하게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자녀 양육, 남편의 직업에 대한 언급, 워킹맘의 치열한 고생담을 통해 지선(엄지원) 캐릭터를 주로 설명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핑크바이너 테스트는 통과하지 못한 셈이지요.
여러분도 요즘 보고 있는 모든 영화, 드라마, 웹툰 등을 떠올려 보세요. 물론 벡델 테스트를 통과 못했다고 해서 작품성과 완성도가 낮다고 할 수도, 모두 통과했다 해서 좋은 영화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벡델 테스트'는 남자 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영화판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조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