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명가 HBO의 첫 하이틴 시리즈. 2019년 최고 화제작. <유포리아>가 웨이브를 통해 공개된다. 지금을 사는 10대가 겪는 마약 중독, 심리 장애, 정체성 혼란, 폭력, 트라우마를 그린 이 시리즈는, 스토리, 연출, 연기, 음악, 미술 면에서 일찌감치 평단과 일반 시청자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실험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유포리아>만의 메이크업과 코스튬은 Z세대를 매료했고. 연출 하나 믿고 봐서 후회 없을 짜임새를 자랑하며, 하이틴 친화적이지 못한 시청자까지 잡았다. <유포리아>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첫 번째 시즌이 종영하기도 전에 두 번째 시즌 제작을 확정했는데. 해외 반응과 입소문으로 미국 방영 당시 국내 팬도 확보했다. 공식 서비스되기만을 기다리던 팬들의 바람이 2년 만에 이뤄졌다. 웨이브에서 자신 있게 독점으로 내놓는 <유포리아>가 9월 2일 공개됐다. 그 전에, 알고 보면 더 좋을 <유포리아> 관전 포인트를 짚어 본다.


- 이거 완전 이상해.

나이는 분명 10대인데 그에 맞는 것들을 못 하잖아.

- 어른 되도 어른다운 일 못 할텐데, 뭘.

<유포리아> 에피소드 6

마약 중독으로 여름을 재활원에서 보낸 루(젠데이아)가 동네로 돌아오며 <유포리아>는 시작된다. 루 가족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빠를 오래 간병했다. 열 살을 갓 넘긴 루가 약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빠의 약을 한 알 두 알 빼돌리던 그는 이내 그보다 많은 양을 원하게 됐고, 이제는 제정신인 게 더 어색할 지경이다. 열일곱 번째 여름을 맞기도 전에 루의 중독 증세는 이미 극에 달했다. 약에 절어 쓰러져 있는 걸 어린 동생이 발견해 겨우 살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고도 루는 약을 끊을 생각이 없다. 환각에 취해 제 몸과 정신을 갉아먹으며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한번 실망시킨다.

동네에 새로 이사 온 트랜스여성 줄스(헌터 샤퍼)와 절친한 사이가 되고 나서 루도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줄스는 분명 루가 약을 멀리 하고 안정을 찾는 데 큰 힘이 되는 존재이지만, 그도 루 못지않게 속은 곯아있다. 부모는 자기혐오에 빠진 열한 살의 줄스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그렇게 자란 지금의 줄스는 데이팅앱으로 끈임없이 나이 든 남자를 만난다.

<유포리아>는 루의 내레이션, 루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주변 인물의 입체성을 부여하는 데에도 기꺼이 시간을 할애한다. 각 에피소드에서 타이틀 카드가 나오기 전까지의 오프닝 10분은 주요 캐릭터의 삶을 요약한 몽타주다. 강한 남성이어야 한다는 강박과, ‘완벽’한 것에 대한 집착증을 물려 받은 네이트(제이콥 엘로디). 불법 성관계 영상 유출 사건으로 의도치 않게 자존감을 회복한 캣(바비 페레이라). 부모가 남긴 애정결핍에 건강하지 못한 연애를 계속해 온 캐시(시드니 스위니). 미인대회가 전부였던 아이에서 폭력과 사랑을 혼동하는 소녀가 된 매디(알렉사 데미).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날로 작아지는 대학 미식축구선수 매케이(알지 스미스)까지. 시리즈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남겨둔 세상에서 10대답게 살 수 없는 수 10대들의 이야기다. 자극적인 것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자연히 고장나버린 미국 10대의 혼란을 <유포리아>는 암울한 톤으로 풀어냈다.


24세 젠데이아, 최연소 에미상 수상

극렬히 요동치는 10대의 나날을 작품에 온전히 옮기기 위해서는 이를 감당해 낼 배우가 필요하다. <스파이더맨>과 <위대한 쇼맨>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젠데이아가 루 역을 맡았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바닥난 통제력 사이에서 갈등하고 혼란을 겪는 루를 통해, 젠데이아는 그가 가진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 보였다. 1996년생인 젠데이아는 이 작품으로 제72회 에미상에서 역대 최연소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참고로 이때 후보에는 오스카 위너 <더 크라운>의 올리비아 콜맨, <더 모닝 쇼>의 제니퍼 애니스턴, <킬링 이브>의 산드라 오와 조디 코머, <오자크>의 로라 리니가 있었다.

트랜스여성 헌터 샤퍼가 트랜스여성 줄스를 연기했다. <유포리아>는 모델로 활발히 활동해온 샤퍼의 연기 데뷔작이다. 그는 당시 모델 에이전시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고 시리즈에 합류했다. 제작진은 샤퍼와 오랜 대화를 나누며 그가 겪은 일을 극에 적극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시즌 종영 1년 후 방영된 스페셜 에피소드에는 샤퍼가 공동 각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LGBTQ 인권 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연기하며 할리우드의 신예로 떠올랐다.

제이콥 엘로디의 연기가 이렇게 흡인력이 짙었던가 싶다. 있는 집 자식, 훤칠한 외모, 풋볼팀 주장. <유포리아>가 전형적인 하이틴 남자 주인공의 양면성을 시사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어려서부터 아빠 칼(에릭 데인)에게서 ‘남성성’을 강요받아온 네이트는 보호와 집착, 폭력마저 사랑으로 오인하고, 광기와 연약함을 동시에 가진 남자로 큰다. 제작 겸 각본 샘 레빈슨이 만든 복잡하게 망가진 이 캐릭터를, <키싱 부스>로 더 익숙할 엘로디가 잘 살려 냈다. 진저리 처질 만한 서늘한 웃음을 얼굴에 떠올리는 엘로디를 보고 있으면 그의 앞날을 더 기대하게 된다.


연출 하나 믿고 봐도 후회 없을

<유포리아>는 연출이 뛰어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자극적일 만큼 어두운 이야기에 경쾌한 기운을 환기하는 것도, 바로 <유포리아>만의 비주얼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어느 에피소드의 어느 장면을 떼어 보여주어도 이게 어떤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시리즈는 독특한 연출 스타일을 구축했다. 특히 모든 신이 흔히 말하는 핀터레스트, 텀블러 감성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데. 10대 사이에서는 이미 메이저인 이 소셜 미디어의 분위기를 이렇게 연출로 소화해낸 작품으로는 과연 <유포리아>가 독보적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작품의 키 컬러(Key Color)는 분홍색과 보라색. 직관적으로는 캐릭터의 코스튬, 헤어, 메이크업의 색상부터, 배경 조명, 얼굴에 부드럽게 반사되는 빛까지. 일관된 톤이 시리즈 전체를 감싸고 있다. <유포리아>를 담는 카메라는 한시도 쉬지않고 움직인다. 촬영감독은 핸드헬드든, 스테디캠이든 카메라를 직접 들고 뛰거나, 상하좌우로 마구 휘젓는다. 달리, 크레인, 붐 숏(Boom Shot)이 종종 동원된다. 장면전환도 아주 역동적이고 영리하다. 인물을 둘러싼 배경은 보는 이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흐릿하거나 어둡게 처리된다. <유포리아>를 보고 있으면, 기억의 파편이 뒤죽박죽 섞인 루의 꿈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다. 샘 레빈슨은 그 나이대 아이들이 자기가 뭘 느끼고 있는지 명확히 표현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프레임에 담고 싶어했다. 그런 10대의 심리는 루의 환각으로 극대화되었고, 위의 모든 장치는 불분명함이라는 가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쓰였다.

<유포리아> 연출을 잘 보여주는 두 롱테이크 장면을 뜯어보자. 그 첫 번째는 의식이 몽롱한 루를 담은 장면이다. 파일럿 에피소드는 시리즈가 어떤 이야기를 어느 정도의 스케일로 풀어나갈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준다. 그래서 첫 에피소드에는 시리즈만의 특색과 캐릭터 묘사가 보다 뚜렷이 드러나기도 한다. <유포리아>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도 파일럿에 있다. 루가 약을 하고 화장실을 나서자 카메라는 옆으로 기울어지고 루는 벽을 타기 시작한다. 촬영기술에 문외한이어도, 프레임 안에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언뜻 착각할 수 있지만 이 장면에는 CG가 쓰이지 않았다. <인셉션>의 캐릭터 아서(조셉 고든 레빗)의 복도 액션 신에 쓰였던 그 기법이 쓰였다. 기법이랄 것도 없다. 360도 회전하는 세트를 지어 찍었다. 시네마틱 시리즈 <유포리아>의 실험적인 촬영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두 번째로 살펴볼 장면은 4화에 있다. <부기 나이트>의 전설적인 오프닝 롱테이크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2분간 날아다니며 카니발 곳곳을 포착했다. 잠시 신을 묘사해보겠다. 푸드트럭 문을 여는 것과 함께 장면이 시작되면 카메라는 문을 통과해 페즈(앵거스 클라우드)의 뒤를 따라간다. 페즈의 동선의 끝에서 루와 매디를 차례로 이어 비추고, 위로 붕 떠서는 관람차를 타고 있는 줄스와 캣을 만난다. 관람차 근처에 있던 네이트와 칼의 얼굴을 담고 나면 그제서야 컷을 허용한다. 동선을 따라가며 시리즈에 나오는 주요 인물을 첫 하나의 숏 안에 다 보여준 장면이다. 이 현란한 카메라 워킹은 카니발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보여줌과 동시에, 왠지 떠들썩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이면에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인상도 남긴다. 테크닉 면에서 탁월한 이 장면은 몰입도를 높이는 데도 성공했다. 이래저래 설명해보려 했지만 글로는 다 못 담는다. 꼭 영상으로 만나보길.


유포리아 메이크업

<유포리아>는 이야기, 촬영만큼이나 메이크업도 화려하다. 레빈슨은 코스튬처럼 메이크업도 인물의 성격을 심미적으로 표현하는 좋은 장치가 되어주길 바랐다. 이제 더이상 Z세대는 단순히 예뻐지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10대는 성 정체성을 비롯해 자신을 과감히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메이크업을 이용한다. 이 점에 주목해 제작진은 글리터, 큐빅, 선명한 색상의 넓은 섀도, 굵은 아이라인 등으로 대표되는 시리즈만의 메이크업 스타일을 만들었고 Z세대는 이에 열광했다. ‘유포리아 메이크업’이라는 화장법이 소셜 미디어상에서 곧바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을 정도. 역시 2020 에미상 분장상 수상작이다.


몽환을 완성하는 사운드트랙

<유포리아>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완성한 것, 기가 막힌 사운드트랙이다. 리아나, 위켄드의 곡을 쓰기도 한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라브린스가 <유포리아> 음악을 작곡했다. 그가 시리즈의 음악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레빈슨은 대본에 원하는 음악의 톤과 레퍼런스 곡을 적어두곤 하는데. 그의 구체적인 주문과 라브린스의 감각이 만나 작품과 잘 어울리는 최선의 곡이 탄생한 셈이다. 라브린스는 촬영분을 먼저 보고 캐릭터의 심리를 파악했던 게 음악을 만드는 데 도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수이기도 한 젠데이아가 부른 ‘All For US’로, 라브린스는 데뷔작에서 에미상 음악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기존 곡들이 적재적소에 삽입됐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반가운 한국 곡도 들을 수 있다. BTS 정국의 ‘유포리아’(Euphoria)가 파티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니 놓치지 말자. 위에 영상을 덧붙였지만, 음악과 장면의 끝내주는 조화는 역시 작품을 통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