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 팬들이 사랑하는 시네아스트 웨스 앤더슨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가 개봉했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주를 이뤄 기존의 노래들을 드물게 사용한 <프렌치 디스패치> 대신, 책의 챕터 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설정을 공유한 앤더슨의 초기작 <로얄 테넌바움>의 음악을 곱씹어보자.


Hey Jude

THE MUTATO MUZIKA ORCHESTRA

<로얄 테넌바움>를 여는 음악은 'Hey Jude'다. 비틀즈 버전은 아니다. 웨스 앤더슨의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까지 꾸준히 음악감독을 맡아온 마크 머더즈보의 밴드 무타토 무지카 오케스트라의 연주곡이다. 로얄(진 핵크만)이 어머니와 별거하게 됐다고 아이들한테 말한 후 차스(벤 스틸러), 마고(기네스 펠트로), 리치(루크 윌슨)가 어린 시절 어떤 걸 좋아하면서 자랐는지 웨스 앤더슨 특유의 만화 같은 상상력과 이미지로써 꾸민 6분 가량의 시퀀스 내내 'Hey Jude'가 흐른다. 세 남매 모두 어려서 천재 같은 재능이 있었음을 보여주지만 노래의 음울한 멜로디 때문에 그들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폴 매카트니가 존 레넌이 전 부인 신시아를 떠나 오노 요코에게 갔을 때 그 아들 줄리안에게 건넬 위로의 말을 떠올리다가 'Hey Jude'의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를 떠올려보면 음악의 의미가 더 풍부해진다.


Look At Me

JOHN LENNON

프롤로그로부터 22년이 흐른 현재. 차스는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극단적으로 안전에 집착하고, 두 아들을 과보호 한다. 갑자기 불이 났다며 두 아들을 깨워 집을 탈출하는 시뮬레이션을 한 차스는 그 날 바로 짐을 싸서 어릴 적 살던 친가로 온다. 아무런 통보도 없이. 급한 김에 책이 쌓인 서재에 잘 곳을 마련한 그는 아버지가 편애하던 리치의 포스터를 안 보이게 돌려놓고, 아이들을 재우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금방 다시 돌아와 아이들 곁에 눕는다. 이 짤막한 신에 존 레넌의 'Look at Me'가 쓰였다. 1968년 수행을 위해 인도에 갔을 때 썼던 노래 중 하나였던 이 곡은 2년 뒤 나온 존 레넌의 첫 솔로 앨범 <John Lennon/Plastic Ono Band>에 수록됐다. 2년의 편차는 있지만 1968년에 발매된 '화이트 앨범' 속 레넌이 쓴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곡들과 유사한 접근이 묻어난다.


These Days

The Fairest Of The Seasons

NICO

테넌바움 집안의 세 남매가 모두 피를 나눈 건 아니다. 마고는 2살 때 입양됐고, 유독 아버지 로얄의 케어가 부족했다. 마고가 입양됐다는 설정은 비단 그가 외롭게 자랐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테니스 신동이었을 때도 그림만 그렸다 하면 마고를 그려서 벽면 가득 걸어놓았던 리치는 어른이 되어서 집을 떠나서도 마고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테니스 챔피언이었던 리치가 경기를 완전히 망치고 은퇴했던 것도 마고가 전날 결혼한 남편 의사 랠리(빌 머레이)와 경기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는 마고와 리치. 그 순간 니코의 'These Days'가 느릿느릿 고조되는 현악 연주가 그들의 재회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고,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에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모델 출신의 가수 니코는 해가 지나기 전 솔로 앨범 <Chelsea Girl>를 내놓았다. 앨범은 크게 벨벳 언더그라운드 멤버들이 참여한 트랙과 포크 뮤지션 잭슨 브라운이 작곡한 트랙으로 나뉘어졌는데, <로얄 테넌바움> 제작진은 후자를 선호했던 것 같다. 리치와 마고가 재회하는 순간 'These Days'가 쓰인 데 이어, 이 모든 소동이 마무리되고 난 후 등장인물의 후일담을 차근차근 들려주는 시퀀스에서도 잭슨 브라운이 쓴 <Chelse Girl>의 오프닝곡 'The Fairest Of The Seasons'가 흐른다.


Wigwam

BOB DYLAN

사랑을 확인하고 있는 또 다른 연인이 있다. 로얄이 떠나버린 집안을 홀로 이끈 어머니 에슬린(안젤리카 휴스턴)과 그의 오랜 동료 헨리(대니 글로버)다. 헨리가 다소 어설픈 방식으로 프로포즈 한 걸 후회하면서 쭈뼛쭈뼛대는 걸 보고, 에슬린이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드러낸다. 긴장한 나머지 헨리가 구덩이에 빠지고, 흙먼지를 털어주던 에슬린과 눈이 마주치자 아주 잠시 정적이 흐르고, 에슬린이 슬쩍 안경을 벗는다. 그리고 첫 키스. 웨스 앤더슨은 사랑의 환희로 가득한 이 순간에 밥 딜런의 'Wigwam'을 배치했다. 딜런의 노래들은 쾌활한 곡이더라도 늘 일정한 어둠이 감도는데, 'Wigwam'은 영화 속 장면처럼 환희 그 자체다. 딜런이 자신이 이미 발표했던 노래와 평소 영향 받았던 포크/컨트리 명곡을 커버한 노래들로 채워진 <Self Portrait>의 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다. 데뷔 이래 줄곧 만드는 앨범마다 극찬을 받았던 딜런은 <Self Portrait>로 싸늘한 반응을 마주해야 했는데, 그래도 'Wigwam'에 대한 반응은 호감이 주를 이뤘다.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

PAUL SIMON

아빠 채스는 아버지 로얄만 보면 치를 떠는데, 채스의 두 아들은 할아버지가 밉지 않은 모양이다. 채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아이들을 공략하는 로얄의 작전이 제대로 먹혔는지, 세 남자는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수영장을 뛰어다니고, 차선이 긴 횡단보도를 마구 가로지르고, 승마를 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차에 매달려 거리를 달린다. 쾌활하다 못해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이 과정들이 폴 사이먼의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와 함께 한다. 영미권 팝 신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브라질의 퍼커션을 사용해 통통 튀는 리듬을 강조했다.


Judy Is a Punk

RAMONES

60년대에 작곡된 노래들만 주로 사용했던 <로얄 테넌바움>에서 1976년 발표되어 펑크 음악의 불꽃을 쏘아올렸다고 평가 받는 라몬즈의 'Judy is a Punk'가 터져나오는 대목이 있다. 마고의 지난 22년 동안의 '사생활'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시퀀스다.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흡연을 12살 때부터 시작하고, 19살에 자마이카 뮤지션과 처음 결혼하고, 서른이 넘어서까지 세계 각지를 누비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격렬한 연애를 거쳐왔던 과거를 보여준다. 6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음악이 튀어나오는 것과 지금껏 감춰져 있던 마고의 비밀스런 과거가 폭로되듯 보여주는 것이 맞물리는 효과를 내는 사용이다.


Ruby Tuesday

THE ROLLING STONES

마고는 언제나 책을 보거나 담배를 피거나 TV를 보고 있지만 정작 마고가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롤링 스톤즈가 1967년 초 발표한 음반 <Between the Buttons>다. 프롤로그에서 어린 시절을 보여줄 때도 마고가 이 앨범을 듣고 있는 걸 보여주는 쇼트가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는데, 자살 시도를 한 리치가 집에 찾아와 마고를 만나 드디어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마고는 듣던 음악을 멈추고 <Between the Buttons>를 턴테이블에 걸어 'Ruby Tuesday'를 튼다. 리치는 그 오랜 시간 가슴에 품었던 사랑을 고백하고, 마고가 결국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과정을 수식하는 게 바로 이 곡이다. 'Ruby Tuesday'는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 싱글의 B사이드 트랙으로 처음 공개됐는데, 절절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A사이드의 곡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드문 사례를 남겼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레스토랑 체인까지 생겼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