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절대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핏줄 같은 것 말이다. 11월 24일 왓챠에서 독점 공개한 <채플웨이트: 피의 저택>(이하 <채플웨이트>) 또한 자신의 가문과 관련된 저주와 마주하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채플웨이트>는 스티븐 킹 원작에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을 맡아 요즘처럼 추워지는 시기에도 서늘함을 안겨줄 만한 공포를 선사한다. 한편으론 으스스하고, 한편으론 마음이 먹먹해지는 <채플웨이트>를 소개한다.


고래잡이배 선장 찰스 분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들을 위해 정착할 것을 결심한다. 그가 정착하기로 한 곳은 얼마 전 사촌 스티븐 분이 죽으면서 그에게 남긴 저택 채플웨이트. 분 가문의 가정교사였던 노부인에게 스티븐 분이 딸 마르첼라의 죽음에 상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찰스는 "벌레가 오고 있다"며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정착하고 싶은 찰스와 달리 인근 마을 프리처스 코너의 사람들은 분 가문을 적대시한다. 마을에 돌고 있는 병을 분 가문의 저주라고 말하는 등 대놓고 그들을 배척하려 한다. 찰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나름의 사업을 펼치려 하지만, 이사 온 첫날부터 벽 안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고 자신 또한 환각을 보는 등 심상치 않은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 채플웨이트와 가문의 이력을 조사하던 찰스는 누군가 가족들을 감시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공포 거장 스티븐 킹의 이야기

<채플웨이트>는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을 각색했지만 소설의 스토리를 극화하면서 많은 인물들을 그리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원작의 제목 <예루살렘 롯>. 스티븐 킹을 안다면 인기작 <살렘스 롯>을 떠올릴 텐데, 그 소설보다 더 과거를 그린 프리퀄이긴 하다. 그러나 스토리가 긴밀하게 이어진 건 아니고 전체적인 정서나 소재가 겹치는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또한 원작을 각색한 내용이라 <살렘스 롯>을 전혀 모르더라도(어쩌면 모를 수록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아니라도 그의 소설 기반 영화들(<그것>, <샤이닝>, <공포의 묘지>, <미스트> 등)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채플웨이트> 또한 취향 저격일 것이다. 그 작품들을 관통하는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 무언가에 맞서야만 하는 인간이란 구도가 이번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 특히 인간의 손에 강력한 무기가 쥐어진 현대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해 공포의 대상에게 저항하는 인간의 고군분투가 드라마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점프 스케어(Jump Scare), 소위 말하는 ‘갑툭튀’는 많지 않아 일반적인 공포 영화를 무서워하는 시청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채플웨이트>는 과거로부터, 그리고 사방에서부터 찰스 분 가족을 점차 옥죄어오는 심리적인 공포가 주된 포인트다. 본인 또한 피해자에 가깝지만, 가문의 저주를 온전히 받아낼 수밖에 없는 찰스 분의 고통이 발아래 질척거리는 불쾌한 공포를 조성한다. 다만 스티븐 킹 원작답게 잔인한 묘사는 꽤 자주 있는 편. 칼로 코를 베어내거나 날붙이가 목을 관통하는 장면 등은 시청자에 따라 오히려 장벽이 될 수 있겠다. 물론 스티븐 킹의 ‘찐팬’이라면 이런 부분이야말로 두 팔 들고 환영하겠지만.


인간의 고고함까지 담아낸 애드리언 브로디의 열연

<채플웨이트>는 분 가문에 얽힌 저주가 드라마의 중심 소재이지만, 저주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드라마의 중심에 선다. 애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한 찰스 분 외에도 분 가문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자 가정교사로 들어온 레베카(에밀리 햄프셔), 병으로 아내를 잃을 위기의 대니슨 경관(휴 톰슨), 신실한 목사이지만 외도로 위기에 처한 버로스 목사(고드 랜드) 세 사람이 각자의 서사로 <채플웨이트>를 채운다. 그래서 <채플웨이트>는 단순한 공포 영화나 오컬트 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이 초월적인 힘에 어떻게 대항하는지를 그리며 때로는 절절한 멜로와 절망적인 심리 드라마까지 아우른다.

그 와중 이번 작품을 하드캐리하는 배우는 역시 애드리언 브로디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 명배우로 인정받았으나, 최근의 작품 선구안은 다소 미묘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채플웨이트>에서 브로디는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 찰스 분을 완벽하게 연기해 명배우 아우라를 과시한다. 과장을 보태자면 그가 나오는 모든 장면이 드라마 전체의 품격을 끌어올려 줄 정도의 열연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환각과 공포 속에서도 가장으로서의, 분 가문 최후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짊어진 채 불가사의한 존재에게 대항하는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는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 인간으로서의 고고함까지 완벽하게 담아낸다.


공포를 넘어 여운까지 남기는 <채플웨이트>

※ 아래 문단은 <채플웨이트>의 중요한 소재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채플웨이트>를 볼 시청자들을 위해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살렘스 롯>을 안다면 이번 작품 또한 어떤 존재가 모습을 드러낼지 짐작했을 것이다. <채플웨이트>는 분 가문의 저주가 영생을 사는 흡혈귀와 관련이 있다는 전개에 도달해 인간과 흡혈귀의 대립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흡혈귀는 극중 뱀파이어라고 말하기는 하나, 사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낭만적인 존재가 아니다. 호화롭게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하얀 피부와 잘생긴 외모로 일견 아름답게 보이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오히려 겉모습이 상당히 추레한 ‘노스페라투’스러운 흡혈귀에 가깝게 묘사되며, 막강한 힘을 얻어 인간을 지배하려는 야욕으로 가득한 추한 존재에 가깝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은 결코 죽음에 굴복하지 않는단 것이다. <채플웨이트>의 인간들은 병으로 점점 죽음이 가까워지는 현실에서 흡혈귀의 유혹을 맞닥뜨린다. 찰스 분은 그런 흡혈귀의 유혹과 사람들의 의심에 맞서 끝까지 대항하며 시청자들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화두를 결코 어렵지 않게 던진다. 전체적으로 절망적인 분위기 끝에 도달한 <채플웨이트>의 결말에는 단순히 절망과 공포만을 남겨져있지 않다. 때문에 <채플웨이트>를 단순히 공포 드라마로 분류하기엔 아쉽다. <채플웨이트> 속 캐릭터마다의 서사, 그들이 내리는 결정, 그 모든 것이 마지막 엔딩을 빚어낼 때, <채플웨이트>는 시청자들이 기대한 것 이상의 여운을 남겨줄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