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메인 예고편

11년 만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2005년작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이 드디어 개봉한다. 오디아르가 <예언자>(2009), <러스트 앤 본>(2012), <디판>(2015)을 거치며 몸집을 불려가는 사이,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은 오디아르의 또 다른 명작으로 손꼽히며 많은 영화 팬들에게 회자돼온 작품이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은 스물여덟의 청년 토마스 세이어(로망 뒤리스)를 따라간다. 부동산 브로커인 그는 동료들과 함께 파리의 이주민들을 내쫓으면서 생계를 꾸린다. 사람 사는 집에 쥐를 풀고, 물과 전기를 끊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집기를 때려부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야말로 황폐한 밥벌이. 어김 없이 일을 처리하고서 돌아가던 어느 날, 토마스는 우연히 차창 밖으로 살아생전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매니저를 발견한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토마스에게 어려서 피아노에 재능이 뛰어났다며 자기 연주원에 오디션을 보라고 권하고, 토마스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녹음을 듣고 음악에 대한 사랑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닫고 기뻐한다.

열정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다. 하지만 꿈을 품는 일은 녹록지 않다. 우선 토마스의 주변이 예술과 생판 거리가 멀다. 함께 이주민들을 쫓아내던 동료들의 눈에 음악에 푹 빠진 그의 모습은 그저 팔자 좋은 사치일 뿐이다. 그들은 중요한 오디션 전날 밤 몇 시간째 문을 두드리고는 토마스의 손을 더럽게 만들고 만다. 아버지는 더 난처한 골칫거리다. 노쇠한 몸을 이끌면서도 범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는 때마다 그를 만나서 구차한 모습만 보여준다. 토마스가 어머니의 매니저를 만났다고 신이 나서 얘기하자, 그는 "그 놈은 사기꾼"이라며 몰아세워 토마스의 의지에 상처를 낸다. 동료들과 아버지는 토마스가 품은 찬란한 희열에 찬물을 끼얹는다. 오프닝을 토마스의 친구가 죽어서도 자신을 맴도는 아버지의 영향에 대해 토로하는 신으로 채운 점으로 봐도, 영화 속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게 드리워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은 온전히, 예술과 범죄 사이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마음을 붙잡고자 애쓴다.

자크 오디아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경계'다. 그의 영화 속에선 대개 이주민이 등장해 서사에 영향을 미친다. 서로 다른 두 영역의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 겪는 곤경, 그리고 그 곤경을 딛고 일어서 느끼는 커다란 변화가 오디아르가 만드는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해, 모든 연출작의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고 있다) 이야기의 중추를 이룬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역시 마찬가지. 아니, 차라리 그 사이에 놓인 인물이 감당하는 혼란이 영화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범죄와 예술, 폭력과 사랑,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자와 여자. (아버지가 물려준) 범죄의 피로 물든 손으로 (어머니에게서 받은 재능을 통해) 피아노를 연주함으로써 새 삶을 지향한다. 남자의 세계에서 진창을 뒹굴던 몸은 여자의 품에서만 비로소 안식을 찾을 수 있다. 영화는 그렇게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놓고, 거기에 토마스를 떨군 채 그가 어떤 방향으로 향해가는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핑거스>의 하비 케이틀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의 로망 뒤리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은 미국영화 <핑거스>(1978)를 원작으로 한다. 갱스터인 아버지를 따라 채무자들에게 폭력을 일삼던 주인공(하비 케이틀)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로부터 얻은 피아니스트의 정체성에서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상당 부분 유사한 가운데 가장 큰 차이는. 원작에서 어머니가 정신병에 시달릴지언정 아직 살아있는 존재라면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은 어머니를 애초에 고인으로 설정한 채 시작한다는 점이다. 대신 부재하고 있는 어머니의 자리에 중국인 먀오 링(린 당 팜)을 피아노 선생님 자리에 놓으면서, 감독이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천착해온 '경계'의 문제를 강조한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이 단순히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을 넘어 더 많은 감상을 끌어낼 수 있다는 실마리다. 대개의 리메이크작과는 달리,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은 원작보다 더 잘 만든 영화의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를 장악하는 건 다름 아닌 주연 로망 뒤리스의 얼굴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러닝타임동안 뒤리스의 얼굴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떨림까지 목격할 수 있다. 전반을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롱테이크로 담아내, 얼굴과 육체에 서려 있는 감정을 선명하게 잡아내겠다는 자크 오디아르의 의지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뒤리스는 그런 감독의 열망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을 띄고 있다가도 돌연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손짓의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희열과 불안 그 사이의 복잡한 감정들을을 실어넣었다. 영화의 마지막 신, 토마스가 지어보이는 미묘한 표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P.S. 낭만적인 제목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De battre mon cœur s'est arrêté)은 프랑스의 저명한 뮤지션 자크 뒤트롱이 1966년 발표한 노래 'La fille du père Noël'의 노랫말에서 따왔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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