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가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 소탕에 나섰던 1970년대 말,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흑인 형사 론 스톨워스(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백인우월주의 테러리스트 집단 KKK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부에 위장 가입해 잠입 수사를 한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그게 먹혔다. KKK가 버젓이 신입 회원 모집 광고를 신문에 게재하던 시절이었고, 마침 론은 백인 말투로 말하는 게 가능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백인들의 말투를 감쪽같이 흉내내 자기는 검둥이가 싫다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론에게, KKK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부 사람들은 깜빡 속아넘어간다. 직접 나가서 얼굴을 비춰야 하는 자리에는 백인 동료 형사인 필립 ‘플립’ 지머맨(아담 드라이버)을 대타로 내보내고 전화로는 론이 대화하는 이 기괴한 이인삼각의 잠입수사는 용케도 통했다. 심지어 다 죽어가던 KKK를 다시 부흥시킨 ‘그랜드 위저드’ 데이비드 듀크(토퍼 그레이스)조차 론을 의심하지 않았다. 저렇게 열심히 흑인을 향한 증오심을 표출하는 사람이 설마 흑인일라고.

‘설정이 너무 과하다’ 싶은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다. 1972년 열아홉의 나이로 경찰학교 사관생부터 복무를 시작한 론 스톨워스는, 1979년 지역신문에 실린 KKK 회원 모집 광고를 보고는 전화로 잠입 수사를 진행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아시아인이 싫고, 유대인이 싫고, 무엇보다 흑인이 싫다고 말한 론은 KKK의 신뢰를 얻었다. 어찌나 믿었는지, 데이비드 듀크가 직접 사인한 회원카드를 보내줄 정도였다. 9개월간의 잠입 수사는 성공적이었고, 이 놀라운 이야기는 론이 정년 퇴임한 다음 해인 2006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론 스톨워스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잠입 수사 사실을 밝히며, 그 시절 미 육군은 물론이거니와 핵무기를 통제하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도 KKK 단원이 있었노라 폭로했다. “그게 말이 돼?”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론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KKK 회원카드를 보고 서늘한 뒷목을 잡았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 만든 2018년도 영화 <블랙클랜스맨>은, 이 믿기 힘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 내내 론과 플립은 아슬아슬한 잠입 수사를 이어간다. 실제 론의 대역을 했던 백인 동료 경찰의 신원은 밝혀진 바 없지만, 영화는 론의 대역을 맡은 플립을 유대인 남성으로 설정했다. 유대인 혐오를 서슴지 않는 KKK 단원들은 플립에게 유대인이 아니냐고 물어보고, 남성기를 할례했는지 확인하려 들고, 거짓말 테스트를 하려 든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지금 나보고 유대인이라 했느냐”고 치욕스럽다는 듯한 연기를 해 보이며, 플립은 새삼 론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과 혐오를 실감한다. 론은 자신과 흑인 친구들을 향한 KKK 단원들의 증오와 범죄 계획을 듣고도 맞장구를 치면서 분노를 숨겨야 했다. KKK의 테러 계획을 저지하고 좌절시키는 론과 플립의 수사활동은 일견 통쾌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박수를 치며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저런 단체가 버젓이 신문에 회원 모집 광고를 낼 수 있었지? 어떻게 피부색을 이유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는 이들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있었지?

영화의 가장 무서운 장면은 말미에 나온다. 극 중 KKK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부를 분쇄하는 데 성공한 론은, 애인이자 인권운동가인 파트리스(로라 해리어)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긴장하고 권총을 꺼내 든다. 두 사람을 따라 창밖을 보면, 앞마당에는 여전히 십자가가 타오르고 있으며 그 주변을 둘러싼 KKK 단원들은 섬뜩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친다. “피와 땅! 피와 땅!” 아니, 이 연출은 대체 뭐지? 왜 영화가 다 끝난 자리에서 다시 KKK가 기세를 부리는 장면이 나오지? 의아해할 무렵, 영화는 픽션에서 2017년 8월의 샬롯츠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넘어간다. 일군의 백인우월주의자 집단이 남부연합 깃발과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흔들며, 횃불을 들고 한밤의 샬롯츠빌을 행진한다. “피와 땅! 피와 땅!” 극중 KKK 단원들의 외침인 줄만 알았던 그 목소리는, 사실 2017년 샬롯츠빌의 혐오집회에서 울려 퍼졌던 실제 집회 참석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실제 데이비드 듀크가 “이제 미국을 되찾을 때”라고 연설을 이어간다.

론이 KKK에 잠입 수사를 했던 1979년으로부터 38년이 흐른 2017년, 미국은 이미 첫 흑인 국방장관과 첫 흑인 대통령을 경험한 이후였다.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통해 흑인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는 일이 가능해졌고, 공공연하게 인종혐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쯤 되면 더는 역전할 리 없이 전진해왔다 싶었을 무렵,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했고 인종차별은 다시 공론의 장에서 발언권을 얻었다. KKK가, 남부연맹기가, 하켄크로이츠가, 데이비드 듀크가 다시 돌아왔다.

아니, 사실 트럼프의 집권은 중간결과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아무리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도,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정책적으로 지지를 받아도, 인종차별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미국 각지에서 경찰들은 흑인들을 과잉 진압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은 후보군을 백인들로 채웠으며, 폭스뉴스는 오바마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출생을 미국에서 한 게 아닐 것’이라는 루머를 제기했다. 각각 치안과 범죄율의 문제, 작품성의 문제,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과 표현의 자유 문제 따위로 옹호되어 은근슬쩍 넘어갔던 인종차별의 일상은 변한 게 없었다. 그랬으니, 오바마를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뽑고도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을 극복하지 못한 거겠지. 데이비드 듀크가 여전히 대중을 상대로 연설을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오바마가 재선이 아니라 3선, 4선을 했다 하더라도, 미국인의 일상이 바뀌지 않았으면 샬롯츠빌의 참극은 어김없이 벌어졌겠지.

<블랙클랜스맨>의 마지막 시퀀스를 보며 나는 불안한 기분으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역사는 전진하고 인류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유지하고 싶지만, 사회가 역진 불가능한 진보를 이루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을 뽑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일 것이다. 70년대 말 FBI의 수사를 통해 KKK를 박살내고도, 두 차례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를 뽑고도, 미국은 일상 속에 녹아든 인종차별을 극복하지 못해 다시 차별과 혐오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 한, 누구를 뽑아도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