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광고를 잘못하면 망하기 마련. 영화도 똑같다. 길어봐야 3분 남짓의 예고편으로 두 시간 내외의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도록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특이한 콘셉트나 형식으로 관객들을 휘둥그레 하게 하는 것도 예고편의 전략 중 하나. 최근 콘셉트를 잘 살린 <슈퍼 소닉 2> 예고편을 비롯해 독특한 콘셉트로 회자되는 영화 예고편을 만나보자.


슈퍼소닉 2

<수퍼 소닉>은 디자인 수정으로 구사일생했다.

<수퍼 소닉> 제작진은 (좋은 의미로) ‘관종’인 것 같다. 1편을 떠올려보자. 진짜 이상한 소닉 디자인으로 욕을 한바가지 먹더니, 바로 디자인을 갈아엎지 않았던가. 수정한 소닉이 얼마나 좋았으면 팬들 사이에서 ‘사실 제작진이 어그로 끌려고 그런 거 아니었을까’하는 음모론(?)마저 돌았다. 이번에 개봉할 <수퍼 소닉 2> 티저도 관종의 기운이 풀풀 난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예고편

티저 예고편은 제목부터 ‘세상에서 제일 빠른 예고편’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소닉에 걸맞은 제목인데, 막상 틀어보면 예고편은 10초 안에 후다닥 보여주고 남은 2분 20초는 로고만 걸어놓는 패기를 과시했다. 물론 다음날 진짜 예고편을 공개한다며 팬들의 분노를 사전 방지했다. 팬들이 이 예고편에 감탄한 건 10초짜리 영상 사이사이에 팬들이 알아볼 수 있는 밈(meme)을 심어놨기 때문. 너클즈 역으로 탑승한 이드리스 엘바의 그윽한 눈빛이나 가장 유명한 소닉의 팬아트 ‘싸닉’(Sanic) 등 실제 영화엔 등장할 리 없지만 소소한 웃음을 주는 장면이 역대급이다.

티저엔 너클즈를 연기한 이드리스 엘바와

싸닉의 이미지가 숨어있다. 둘 다 이 예고편에만 숨어있는 이스터에그.


터미네이터 2

이래놓고 아군으로 나올 지 누가 알았을까.

티저 예고편의 묘미는 영화의 내용이 아닌 분위기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2>의 티저는 그래서 신의 한수다. 1분 40초짜리 티저 예고편은 1편에 등장한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제작, 조립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1편을 봤다면 당연히 ‘와, 그 무시무시한 애가 또 얼마나 더 무서워졌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아시다시피 T-800은 <터미네이터 2>에선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와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의 적이 아닌 보호자로 활약한다. 지금처럼 영화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터미네이터 2> 티저 예고편은 1편의 인기 요소를 보여주되 반전 포인트는 쏙 숨긴 셈. 티저 예고편을 보고 <터미네이터 2>를 보러 갔을 관객을 상상해보라. 아마 배신감을 느꼈을지 몰라도, 그 배신감이 평생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데드풀(들)

<데드풀> 티저 예고편

티저 예고편은 영화의 콘셉트를 보여주는 거라서, 본편의 콘셉트가 확실할수록 그 향은 더 진해진다. <데드풀>도 당연히 그렇다. 첫 예고편 ‘예고편 예고’는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이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데드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울버린: 엑스맨 탄생>에서의 데드풀을 비아냥거리는 부분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심정을 대신하는 것 같다. 속편 <데드풀 2>의 티저 예고편도 심상치 않은데, 데드풀이 밥 로스처럼 그림을 가르쳐주는 콘셉트다. 그림을 그리긴 하는데, 바로 다음컷에 그림이 바뀌고, 설산을 보며 “코카인이 당긴다”는 등 데드풀다운 약빤 콘셉트가 일품이다.

밥 로스(왼쪽)을 페러디한 <데드풀 2> 티저.


오스틴 파워

어, 이건...? <스타워즈>?!

…인 줄 알았지?ㅋㅋ

충분히 발달한 패러디는 원본과 구별할 수 없다…는 농담은 <오스틴 파워> 시리즈에 적당하다. <오스틴 파워> 시리즈는 <007> 시리즈를 중심으로 1960년대 대중문화를 패러디한다. 여기서 소개할 티저 예고편은 2편 <오스틴 파워>. 저 멀리 우주에 있는 기지를 비추고, 거친 숨소리가 깔리는 건 누가 봐도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스 베이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실루엣은 바로 닥터 이블(마이크 마이어스). “왜? 다른 사람을 기대했어?”라는 도발적인 대사마저 패러디 영화답다. 이 영화가 개봉한 1999년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도 개봉 예정이었으니 노림수가 아주 적절했다. 1편에서 당한 악역이 2편에서 더 강해져 돌아온다는 클리셰를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으로 연결시킨 것도 영리하고.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얘기가 나온 김에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티저 예고편을 보자. <스타워즈> 시리즈의 티저는 그렇게 특이하지 않다. 새로 만든 영상도 아니고, 엄청 특별한 콘셉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영화 속 몇몇 장면을 짧게 이어 붙였을 뿐. 그럼에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티저 예고편은 전 세계 <스타워즈> 팬들을 영광시키기 충분했다. 그 몇 안 되는 장면이 <스타워즈>의 향수를 완벽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 이 1분 남짓 영상은 <스타워즈>의 가장 상징적인 것(스톰 트루퍼, 타투인, X-윙, 밀레니엄 팔콘)과 이번에 새로 소개할 것(BB-8, 십자형 라이트 세이버, 새로운 주인공들과 악역)을 영리하게 붙였다. 그리고 전개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은 어떤 이야기인지는 비밀로 남기되 새로운 인물에겐 궁금증을 남겼다. 떡밥의 제왕 J. J. 에이브람스답다고 할까. 시퀄 3부작의 끝은 영 안 좋았지만 이 티저 예고편만큼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지향한 ‘옛것을 새롭게’라는 모토가 잘 드러나있다.


클로버필드

J. J. 에이브람스 감독을 이야기하고 보니 또 잊을 수 없는 티저 예고편이 있다. <클로버필드>는 미지의 괴수가 나타난 도시 속 사람들의 행적을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담은 영화다. 본편 일부를 그대로 넣은 티저 예고편도 홈비디오처럼 시작해 자유의 여신상이 날아오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티저 예고편이 유독 충격적인 건 영화 제목조차 넣지 않았기 때문. 아무리 티저 예고편이 영화의 이미지나 분위기만 보여주는 것이라도 관객들에게 홍보하는 영상인데 제목을 빼먹었다니. <클로버필드>는 제목을 보여주지 않아서 호기심이 동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는 것을 노렸다. 가상의 사건을 실제 사건처럼 가장해 인기를 얻은 <블레어윗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 본편에 대한 평가는 1인칭 시점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으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티저 예고편만큼은 2000년대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티저로 할 일은 다했다.


이터널 선샤인

라쿠나 사의 광고임을 명시하고

하워드의 소개로 시작하는 <이터널 선샤인> 티저 예고편.

<이터널 선샤인>은 지난 20여년 간 최고의 로맨스 영화로 꼽힌다. 하지만 첫 티저 영상을 봤다면, 어쩌면 이 영화를 기억에 묻어뒀을지도 모르겠다. <이터널 선샤인>의 티저는 하워드(톰 윌킨슨)가 기억을 지우는 회사 라쿠나를 설명하는 장면과 영화의 일부를 담았다. 라쿠나 소개는 호기심을 자극하긴 하는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뒤에 이어지는 예고편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쓸쓸한 본편과 달리 예고편은 영국의 록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미스터 블루 스카이’를 선곡해 경쾌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 티저 예고편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당시 짐 캐리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티저 예고편은 영화의 핵심 라쿠나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와는 딴판인 유쾌함을 위장한다. 어떤 의미에선 이같은 역설적인 표현이 영화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로고마저 수상할 정도로 밝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