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보기 쉬운 콘텐츠는 아니었다. 1화부터 전개가 쇼킹했고, 영상은 독특했지만 자칫 산만해 보일 때도 있었고,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라기엔 다분히 B급 감성이 난무했으며,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내용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이걸 보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무슨 80년대 특촬물을 보고 있어?
말마따나 그렇게 보인다. 캐릭터들의 액션 전투씬은 아케이드 게임을 차용해 HP 바와 데미지 이펙트를 실사 영상에 덧입히는 형태로 연출되고, 다소 잔인하거나 징그러운 액션은 카메라를 돌리는 대신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입체가 갑작스레 평면이 된다. 배우들이 입고 있는 코스튬은 우리가 익히 보던 실사화 히어로 시리즈에 비하면 지나치게 만화적이고… 솔직히 말하면 쫌, 싼티가 난다. 의도된 B급을 히어로물에서 보는 건 나름 오랜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B급스러운 외피 뒤 질문
<가디언즈 오브 저스티스>는 이야기의 배경부터 다소 만화스러운 데가 있다. 소위 '만화' 같다는 게, 개연성이나 과학적인 합리보다는 재미있을만한 SF적 설정을 따와 자유롭게 펼쳐 놓는 걸 의미한다면 딱 그 설명이 맞다. 히틀러가 부활하고,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그걸 마블러스맨이라는 희대의 외계 영웅(슈퍼맨을 본뜬)이 하루 만에 종전시킨 이후의 이야기다. 기상천외한 대체 역사 설정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급작스레 사건은 시작되고 영상은 정신없이 실사 영상과 클레이/2D 애니메이션을 종횡무진한다. 말마따나 정말 정신 사납다.
더불어 서사적인 측면에서도 딱히 친절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디언즈 오브 저스티스>가 함축하고 있는 소재들과 비유, 패러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브컬처 방면의 기본적인 지식(아케이드 게임의 규칙이라든지, 드래곤볼 애니메이션이라든지)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 DC 유니버스를 기반으로 캐릭터들과 세계관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DC 코믹스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스치는 장면들 속에서 한 번 더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이렇게까지 난해한 연출을 풀어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수작이라고 평가받아도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익숙해지기 아무래도 힘든 데가 있는 외형과는 달리, 담고 있는 메시지는 사뭇 진지하고 두텁다. 앨런 무어가 「왓치맨」을 통해 제기했던 히어로들의 존재와 위치에 대한 고민,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의 정의와 진실성에 대한 의구심, 그러므로 이 모든 의문의 근간이 되는 '히어로이면서', '인간이기도 한', 그래서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저스티스>의 시놉시스 일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기가 어렵지만, 올드하고 B급 감성으로 가득 차 혼란스럽기까지 한 외피에 비해서는 사뭇 진지하고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히어로들의 ‘정의로움’은 절대적일까? 절대적인 정의란 존재할 수 있을까? 그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희생의 당위성은 누가 적합하다 판단할 수 있나?
히어로란, 무엇인가?
슈퍼히어로물이 가장 인간적인 고민에 대해 다룰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일반인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총알조차도 히어로들의 육체와 능력 앞에서는 의미 없는 수준이지만, 정신은 '아득히 인간을 초월한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들의 외형에서 풍기는 아득한 힘의 차이만큼이나 정신적인 수준도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지 않을까 싶지만.... 히어로들은 겉보기에 강해 보일지언정 일반적인 인간들이 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로 괴로워한다. 평화를 수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며 완벽한 삶을 살아갈 것 같은 완전한 존재. 하지만 대중의 눈에 그렇게 비칠지언정(혹은, 악당의 눈에) 완전한 존재가 실재하는가?
이 질문은 무려 30여 년 전, 세기의 그래픽노블 작가인 앨런 무어가 수작 「왓치맨」을 통해 던진 바 있다.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히어로들, 범죄와 맞서 싸우는 히어로들. 하지만 그들이 늘 공명정대하고 정의로운가? 질문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누가 감시자들(Watchman)을 감시하는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히어로 시리즈인 <가디언즈 오브 저스티스>는 왓치맨이 제기한 이 질문을 다시금 던지는 동시에 조금 새로운 대답을 내놓고 있다. 그 시절보다는 좀 더 다채로운,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치게 다채로운'.
DC도, 마블도 아닌 넷플릭스의 '슈퍼 히어로'
확실히, 디즈니 플러스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히어로를 다루는 방식은 뭐랄까 독특한 구석이 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주피터스 레거시>,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제가 될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저스티스>까지 얼핏 우리가 보아 왔던 히어로물과 흡사할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분명해 보인다.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작금의 슈퍼히어로 장르에 있어서, 거대 프랜차이즈든 아니든 어떤 히어로 캐릭터 혹은 히어로 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시작하는 건 사업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흥미로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마블이나 DC의 히어로 무비와 이야기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장르 자체에 대한 애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MCU와 DC 실사화 유니버스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관객들이 그저 슈퍼히어로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마블도 DC도 아닌(말하자면, 유니버스에 포함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히어로물에 똑같은 수준의 관심을 표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MCU와 DC 실사화 프로젝트의 인기몰이 이후 다양한 콘텐츠들에서 '슈퍼 히어로'라는 소재가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졌고, 지나칠 만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꺼내거나 소위 '히어로물'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 밀착형 스토리를 꺼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 모든 이야기들은 히어로들의 정의로운 싸움과 전설의 시작이었다기보다는, 결국 '그들도 인간이었다'는 메시지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인간과 가장 동떨어진 것 같은 존재들의 절절한 인간적 면모, 혹은 불완전성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는 위로를 얻고 어떤 층위에서는 매서운 눈초리로 현실의 문제를 돌아보기도 한다.
요약하면 <가디언즈 오브 저스티스>는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가져갈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질문, 그리고 다소 불쾌할 수 있는 요소들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 차마 언급할 수 없는(엄청난 스포일러) 반전과 숨겨진 진실, 그리고 <왓치맨>과 유사한 방식으로 흘러가 결국 진실이 되어버리고야 마는 불완전한 정의까지 통틀어 본다면 이러나저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고는 할 수가 없다.
다만 DC 유니버스에 익숙한 코믹스 팬들 혹은 DC 실사화 유니버스의 관객들, 그리고 고전적인 아케이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클레이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연출 효과로 활용된 장르에 거부감이 없는 관객, 그리고 앨런 무어의 「왓치맨」이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수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볍고 헐거운, 하지만 전략적으로 짜인 형태 속 사뭇 진중한 메시지가 바로 <가디언즈 오브 저스티스>의 요지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아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